낯설고 두렵지만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우주. 평범한 우주여행가가 우주호텔에 머문 가상 여행기를 담았다.
우주호텔은 우주정거장 높이와 비슷한 지상 400km에 위치한다. 최대 승객 7명(승무원 1~2명, 여행자 4~5명)을 태운 우주선이 일주일 간격으로 우주호텔에 간다. 우주호텔에서 수용 가능한 최대 인원은 30명. 남위 50도와 북위 50도를 오가며 빠른 속도로 하루에 15.6회 지구를 도는 우주호텔 전망 창에서는 지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석양을 하루에 열여섯 번가량 볼 수는 있다.
사람들은 흔히 우주를 다른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우주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부터 펼쳐져 있다.” 처음에는 갸웃했던 말이 우주에 와보니 이해가 된다. 우리가 떠나온 지상도 우주에 속한다. 다만 이곳이 조금 높을 뿐이다. 작은 창 밖으로 수평선과 하늘이 교차하면서 온통 칠흑 같은 어둠뿐이더니, 차츰 옅은 대기를 가르며 별빛이 펼쳐졌다. 까마득한 저 아래에는 구름이 방울솜처럼 떠 있다.
지구를 몇 바퀴 돌고 나서야 저 멀리 작은 점이 보이며 십자 모양의 우주호텔이 윤곽을 드러냈다. 가벼운 진동과 함께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호텔에 발 디디기 전부터 속이 메슥거렸다. 여기는 지상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쯤? 몇 시간 전까지 청명한 10월의 햇살 아래 서 있었으나, 이곳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30cm 두께의 벽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음’이 버티고 있다. 이곳에서 과연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호텔에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상당히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같이 온 일행 1명이 내 머리 위로 둥둥 떠올라 허우적거렸던 것이다. ‘몸이 왜 이러지? 내가 거꾸로야, 저 사람이 거꾸로야?’ 벽에 붙은 시계를 발견하고서야 위아래를 분간할 수 있었다. 몸이 자꾸 둥둥 떠다니는 탓에 뭐라도 잡을 게 필요했다. 중력이 없으니 여행가방도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간단한 체크인을 기다리며 함께 온 일행을 둘러보니 무중력 때문인지 다들 얼굴이 찐빵같이 부었고, 머리칼은 물속에 떠다니듯 출렁거렸다. ‘중력을 처음 벗어난 이 모습에 적응해야겠지.’
어디가 바닥인지 알지만, 처음 며칠은 위아래 맞춰서 다니기가 쉽지 않다. 서 있고 싶은데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곡예하듯 허공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려 발을 디뎌도 몸이 다시 솟구치기 일쑤. 몸을 자유자재로 나눌 수 있는 비결은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에 있다. 호텔 곳곳이 벨크로로 도배돼 있었다. 벽에 ‘걸린’ 물건들은 ‘붙은’ 것들이다. 바닥뿐 아니라 벽도 온통 벨크로 천지다. 밴드를 발바닥에 붙이고 벽에 발을 내디뎠다. 접착력 덕분에 제자리에 멈춰 설 수 있었고, 힘을 살짝 주면 쉽게 떨어졌다.
이번 여행은 한 달짜리다. 우주호텔은 보통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체류하지만, 최대 두 달까지 투숙할 수 있다. 오가는 교통비가 비싸서 차라리 숙박비는 가볍게 여겨진다. 그런데 왜 두 달 넘게 머물지는 않는 걸까? 우주비행사들은 1년 넘게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유는 입맛에 있다. 우주에 두 달 이상 머물면 식욕을 잃게 된다고. 먹기 전에 물을 부어야 하는 건조식품만 먹어서 소화불량에 걸린 걸까?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리 다양한 메뉴로 식단을 바꿔도 소용없단다. 처음에는 멀미가, 나중에는 식욕부진이 우리를 괴롭힌다.
물이 부족한 우주에 있는 호텔에는 ‘세탁 금지’라는 규정이 있다. 그러니 여분의 옷을 최대한 챙겨 가야 한다. 물이 귀한 탓에 공기 중에서 물을 뽑아내려고 하루 종일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윙윙거린다. 살짝 건조한 편이니 보습제도 수시로 발라야 한다. 미스트를 뿌리면 편할 텐데 ‘스프레이 제품 사용 불가’다. 미스트를 뿌렸다가는 작은 물안개가 되어 어디론가 떠다니다가 기계를 망가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화장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분가루가 날리면 큰일이라 허가된 종류만 가져올 수 있다. ‘세수는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은 안 해도 된다. 물 대신 티슈가 널려 있다.
매일 아침 일과는 호텔 곳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주호텔은 정말 좁다. 길쭉한 구조물 두 개를 십자로 겹쳐놨는데, 끝에서 끝까지 길이가 30m에 폭이 7m다. 가운데에 통로가 있고, 둥글게 펼쳐진 공간에 여러 시설물이 늘어서 있다. 좁은 호텔을 산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닥을 벗어나는 것. 통로를 지날 때 한번 거꾸로 서봤다. 그 다음에는 옆으로도 서보고.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같은 공간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는 그동안 중력에 갇혀 지냈던 건 아닐까. 위, 옆, 대각선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전혀 달랐다. 같은 공간이지만 또 다른 차원처럼 느껴졌다.
지금 우주호텔은 뉴욕 상공을 지나 대서양에 접어들었다. 캐나다 동부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잠시 뒤 차가운 북극해 근처를 지나게 될 것이다. 80분이면 세계 일주를 마칠 수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 사이로 길게 늘어선 고리 모양의 산호초들이 옅은 청록색을 띠고 있다. “저기 몰디브네!” 또다시 바다가 펼쳐졌고 10분 뒤 호주가 나타났다. 지구를 바라볼 때 육지가 보이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다. 전체 면적의 30%가 채 안 되니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외계인이 지구를 관찰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오! 이 별은 온통 물로 뒤덮인 행성이네”라고.
여행을 다녀오면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로 맛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주호텔 식당의 풍경은 한마디로 ‘인스턴트 음식의 향연’이다. 식당에는 조리 공간이 따로 없다. 수십 가지 음식이 담긴 팩과 파우치, 캔뿐. 수분을 빼고 동결건조한 음식이 대부분이다. 벽에 달린 가위를 잡아당겨 팩을 자른다. 젤리를 짜내듯 조심스레 물을 붓고 가열기에 넣는다. 연신 캔을 따서 자석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빵을 꺼내 토스터에 굽고, 포장된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우주에서는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는다.
먹고 나서는 운동도 필수다. 호텔에 머무는 모든 사람은 매일 하루 2시간씩 운동을 해야 한다. 사람이 우주에 오래 머물면 근육량이 줄면서 뼛속 칼슘도 같이 빠져나가는데, 골밀도가 떨어지면 골다공증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우주호텔에 대한 가장 큰 로망은 석양이 아닐까. 해가 질 때면 지구 표면 주변이 극단적으로 변한다. 무지갯빛이 층층이 펼쳐지고, 선명한 진홍색과 연갈색, 노란색이 뒤섞이다가 연푸른 파스텔 톤으로 물든다. 공기가 없어 빛이 산란하지 않기에 모든 색은 본모습 그대로 드러난다.
우주에서 보는 은하수는 마치 빛구름처럼 활짝 피어오른다. 별들은 반짝이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조용히 빛난다.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심창섭은 우주과학 전문 작가다. 우주여행을 다룬 <중앙일보>의 디지털 스페셜 ‘우주라이킷, 은하수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에 국내 유수의 전문가를 제치고 해외 유명 석학과 함께 이름이 올랐다. 가상의 우주여행기를 담아낸 도서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지구를 떠났거든요>를 출간했다(해당 도서에서 본문 내용 발췌).
미국 우주개발업체인 오리온 스팬이 조립식 우주호텔인 오로라 스테이션에서 11박 12일 동안 숙박할 수 있는 상품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22년까지 길이 13m, 폭 4m 크기의 우주호텔 건설을 마칠 예정이라고. 승무원 2명, 승객 4명이 함께 숙박하는 이 상품은 무중력 체험, 남극과 북극 오로라 구경, 식량 재배 등의 실험에도 참여할 수 있다. 가격은 1인당 약 950만 달러(약 101억 원). orionspan.com
리처드 브랜슨이 2004년 설립한 버진 갤럭틱. 유인우주선 스페이스십투(SapceShipTwo, 6인승)를 타고 준궤도 지점까지 올라가 약 5분간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코스를 선보인다. 시험비행에 참여한 훈련 담당 교관의 말에 따르면, 얼음 수정이 창문 밖에 떠다녔고 칠흑 같은 우주에서 밝고 선명한 지구의 아름다운 곡선이 보였다고 한다. 현재 700여 명이 여행 대기 신청 중이다. 가격은 1인당 약 25만 달러(한화 약 3억 원). virgingalactic.com
일론 머스크가 2002년 설립한 미국의 민간 우주개발업체인 스페이스X. 우주 수송 비용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화성 이민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2008년 액체연료 로켓 ‘팰컨 1(Falcon 1)’을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렸다. 이들이 2023년 차세대 재사용 로켓인 ‘빅 팰컨’을 타고 사상 최초로 5일간 달을 여행하는 상품을 론칭한다. 왕복 거리 약 76만4,000km다. spacex.com
제프 베이조스가 2000년 설립한 민간 우주 기업인 블루 오리진에서 출시한 상품이다. 우주선 뉴 셰퍼드(New Shepherd, 6인승)를 타고 100km를 날아올라 준궤도에 진입, 몇 분간 무중력 상태에서 푸른 지구를 내려다보고 지구로 돌아오는 코스다. 가격은 1인당 약 20만~30만 달러(한화 2억2,600만~3억4,000만 원)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blueorigin.com
글.심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