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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Oct 26. 2020

식물학자 신혜우가 식물을 탐험하는 이유

새로운 식물의 발견과 종 분류가 사명인 식물학자에게 탐험은 삶의 필수 요소다. 이를 위해 식물학자 신혜우는 거머리가 득시글거리는 열대우림으로, 괭이갈매기 떼의 배설물이 비처럼 쏟아지는 독도로 향한다. 여행의 목적이 맛집과 인증 사진이 아니라면, 그녀는 무엇을 보고 느낄까?







식물학자 신혜우의 식물 세밀화 전시 <씨앗, 식물학자 발견하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식물원 씨앗박물관. 식물표본 앞에 서 있는 신혜우. ⓒ신혜우

식물채집 여행은 관광 목적의 여행과 준비부터 다르죠? 

식물채집을 준비하면서 해충 방어책을 세워요. 사실 큰 동물은 먼저 공격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괜찮아요. 경계해야 하는 대상은 오히려 작은 동물이죠. 그중 열대지방의 거머리가 가장 무서운데요, 특히 흙에 사는 실처럼 얇은 거머리는 등산화도 뚫고 들어올 만큼 위협적이에요. 발을 잘못 디디면 100마리 정도가 바글바글 들고 일어난다니까요. 스타킹 같은 소재의 토시를 입어도 결국 물리고 말죠. 

생각보다 하드코어하군요. 

온대 지역은 라임병을 일으키는 진드기가 위험해서 퇴치제를 꼭 챙겨 다녀요. 채집 과정에서 틈틈이 등산복을 터는 건 필수죠. 선배들은 큰 독사나 야생 코끼리를 만나기도 했다는데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었대요. 동물이 위험한 곳이라면 러시아 캄차카반도 정도였어요. 곰이 사람보다 많아서 무장한 현지인과 동행했는데 해충만큼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네요. 

짐은 어떻게 꾸리나요? 

기본적으로 소일 나이프(soil knife)라는 채집용 삽과 나무 자를 때 쓰는 전정가위, 신문지를 챙겨요. 신문지는 채집한 식물을 눌러서 말릴 때 쓰죠. 또 식물학자들은 모두 사용하는 도구인 야책(野冊)을 챙겨요. 식물을 누르는 데 필요하거든요. 그 외에는 DNA 샘플 넣는 병과 GPS가 있고, 복장은 등산객과 같아요. 


구글맵은 무용지물이겠죠? 

휴대폰이 안 되는 곳을 주로 가다 보니 GPS는 필수예요. 그런데 오차 범위가 10~20m여서 벼랑에 떨어질 뻔한 적도 있어요.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검은별고사리를 채집 중인 신혜우. ⓒ신혜우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아침 8시에 산에 오르기 시작해 저녁 6시쯤 하산해요. 특정 종만 찾을 때도 있지만 하루에 100종 가량 채집하죠. 표본 수집을 목적으로 3개씩 담으니 하루에 약 300개를 채집합니다. 채집 순서대로 식물을 비닐에 넣어 번호를 매기고 자생지를 기록하기 위해 GPS에 위치를 찍어두죠. 숙소에서는 신문지 한 장 한 장 사이에 식물을 넣고 야책에 묶어 건조합니다. 한국에서는 건조기에 말리지만 외국에서는 신문지를 계속 갈아줘야 해요. 날이 갈수록 개수가 늘어나다 보니 수면 시간이 점점 줄어 돌아올 때는 비행기에 거의 실려서 돌아와요. 

해변 같은 곳에 가도 발만 담그고 오는 경우가 많겠네요? 
대부분 발도 못 담가요. 대학원생 때는 캄보디아의 시아누크빌이라는 유명한 해변에 간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등산복 입고 해변 식물만 채집하다 왔죠. 관광객들은 비키니 입고 누워 있는데 말이죠. 해변 식물은 내륙 식물과 달라서 채집을 안 할 수 없어요. 


놀러 가서 자신도 모르게 식물만 들여볼 때도 있죠? 

네. 하하. 일종의 품앗이인데, 아는 분이 연구하는 식물을 발견하면 갖다 드려요. 

식물채집을 위해 다닌 곳 중 기억에 남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백두산이 인상적이었어요. 연세가 있는 식물학자분들은 남파 코스가 그렇게 좋다고 하시는데, 그쪽은 가기 어려워요. 중국과 북한의 경계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거든요. 가다가 북한군을 만날 수도 있대요. 저는 북파, 서파 코스로 백두산을 가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더라고요. 특히 노호배에서 만난 담자리꽃나무가 기억에 남습니다. 알프스산맥이나 러시아 캄차카반도에 갔을 때도 담자리꽃나무를 발견했거든요. 빙하기 때 넓게 번졌다가 다시 추운 고지대에만 남은 거죠. 식물 진화 연구에 대한 시각이 확장되는 느낌이었어요. 다윈은 여행하며 비슷한 종이 여기저기 있는 걸 보고 진화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어요. 





신혜우가 지난해 완성한 검은별고사리 세밀화. ⓒ신혜우

식물학적으로 방문 가치가 있는 국내 여행지는 어디일까요? 

울릉도요. 섬기린초, 섬백리향, 섬나무딸기 등 ‘섬’이 붙는 대부분의 종은 울릉도 특산 종이에요. 섬나무딸기의 경우 다른 딸기와 달리 가시가 없어요. 천적이 없었다는 뜻이죠. 그래서 울릉도가 빙하기에도 육지와 연결된 적이 없다는 연구도 있어요. 낮은 키로 자라는 분홍색 꽃인 섬백리향 군락지도 장관이죠. 

가기 어려운 곳만 다니다 보면 고생스러운 순간도 많겠어요. 

처음 독도에 갔을 때 배에서 본 풍경이 잊히지 않아요. 작은 배를 타고 두 시간 넘게 갔는데, 한 사람이 구토를 시작하니 나중에 배 안의 모든 사람이 구토를 했어요. 풍랑이 심하게 몰아치면 섬의 모든 식물이 죽기도 해서 허탕친 적도 있죠. 서도에 유일한 민가가 있는데, 파도가 한 날에는 1층으로 파도가 들이닥칩니다. 동료 연구원들은 파도 때문에 사나흘씩 갇혀 있다가 식량이 떨어져서 고생한 적도 있어요. 


식물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 몇 년은 걸린다면서요? 

생애 주기를 따라 그리다 보니 식물표본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돼요. 게다가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데 국내 멸종 위기 식물인 검은별고사리는 포자낭의 세포수가 확신이 안 서더라고요. 세포가 투명해서 현미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고 어리어리하게 보여요. 미국 스미소니언 환경연구센터에 가기 전에 시작해서 1년 넘게 보고 작년에 한국 와서 완성했습니다. 많은 샘플을 살펴보고 가장 평균적인 모습을 그리긴 했지만, 참고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그런 아쉬움이 또 다른 탐험에 나서는 동력이 되겠군요. 

네. 최대한 많이 다녀야겠다고 생각해요. 몇 달 전 지도 교수님께서 30년 교직 생활을 마치고 평생 이어온 연구를 발표하셨어요. 그간 채집해온 곳들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전 세계를 다 다니셨더라고요. ‘저렇게 전 세계를 다니면 진화의 방향을 깨달을 수 있겠다!’ 생각했죠. 





국내 멸종 위기 식물인 검은별고사리. ⓒ신혜우

식물학자로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 

아프리카 동쪽 섬 마다가스카르요. 열대지방의 생물 다양성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에요. 예전에 캄보디아에서 어떤 분류군인지 예측조차 어려운 꽃을 본 적이 있어요. 각 그룹의 공통적 특징으로 분류군을 예측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난초과 꽃은 꽃잎이 6개고, 암술과 수술이 합쳐진 게 공통적인 특징이에요. 그런데 그런 그룹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는 식물이 보이더라고요. 꽃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골풀과나 사초과처럼 보였는데, 화려하고 큰 꽃이 핀 거예요. 그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웠는지 진달래 가지에 장미가 핀 꿈까지 꿨죠. 알고 보니 국내에 없는 분류군이더라고요.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제가 본 적 없는, 모르는 식물은 다 보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해요. 어떻게 식물을 들여다보는 일이 여행의 동기가 되는 걸까요? 

사람들은 우리 자신,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에만 관심이 많아요. 저는 대부분의 학문이 인간을 위한 학문이라 생각해요. 원예학 같은 학문도 인간의 입장에서 식물을 이용하는 것이죠. 그래도 식물을 그리고 연구하는 동안만큼은 그 식물의 입장이 되는 것 같아요. 섬기린초도, 호모사피엔스도 다 하나의 종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전 바이러스 유행도 지구의 복수라고 보지 않아요. 환경오염도 하나의 원인이겠지만 진화 과정 중에 나타나는 현상 아닐까요? 호모사피엔스도 다른 종처럼 멸종할 수 있어요.




글. 김성화 사진. 신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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