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2월 1일에 벌어진 군사 쿠데타로 국제적인 관심과 함께 다시 조명되고 있는 이 나라는 왜 두 개의 이름을 가졌을까?
그 답은 복잡한 역사에서 기인한다. 정치와 한 언어에서 또 다른 언어로 문자를 옮기는 독특한 과정이 이에 영향을 미쳤다. 나라가 이름을 바꾸는 일이 흔치 않은 일은 아니다. 타이(Thailand, 태국)는 한때 시암(Siam)이었고, 스리랑카(Sri Lanka)는 실론(Ceylon) 그리고 짐바브웨(Zimbabwe)는 로디지아(Rhodesia)였다. 그렇다면 미얀마를 버마로도 불리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나라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는 지도책과 지구본에 버마라고 표시됐었다. 이는 지역민들이 그들의 나라를 구어체로 부르는 버마어 단어 ‘바마’에서 파생되었다. 하지만 많은 언어에서 그렇듯, 버마어를 말하거나 쓰는 데 정식이 따로 존재한다. 그 방식에 따라 이 나라는 ‘미얀마(Myanma)’라고 알려지고, 마지막 ‘아(a)’발음을 음성학적으로 길게 늘리기 위해 끝에 알파벳 ‘r’이 더해졌다.
1948년 나라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공식적으로 ‘버마 연합’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픈 현실은 버마가 ‘연합된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70년이 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내전을 겪어 왔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대신 물리적으로 차지한 국가의 통치 기간을 늘리는 데 군사력이 사용되어 이 같은 불안정한 정국이 지속되고 있다.
민주화 운동이 잔혹하게 짓밟힌 다음해인 1989년, 군사 정원은 국가를 ‘미얀마 연합’으로 다시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는 미얀마라는 이름이 이 나라의 다양한 인종 구성 인구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식민지 시대의 이름을 지닌 장소의 이름 역시 퇴출되었는데, 그 결과 랑군(Rangoon)은 양곤(Yangon), 파간(Pagan)은 바간(Bagan) 등등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나라의 개명은 정치적 발화점이 되었다. 유엔(United Nations)과 암네스티 인터네셔널(Amnesty International) 같은 단체들은 미얀마라는 이름을 받아들였지만, 내셔널 리그 오브 데모크라시(National League of Democracy, NLD)같은 주요 반대 단체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NLD의 리더인 아웅 산 수치(Aung San Suu Kyi) 여사는 2011년, 론리플래닛이 미얀마(버마)편 11번째 에디션 가이드북을 출판할 때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버마라는 이름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개명이 우리 사람들에게 아무런 언급도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그 반대 그룹과 연대해서 이 나라의 공식적인 이름을 버마라고 부르기로 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2015년 선거 이후, 미얀마 대신 버마를 사용하던 민주주의 지지자들의 강렬한 의지는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2016년 4월, 아웅 산 수치 여사는 외교부장관의 역할로서 몇몇 다른 국가들의 외교관들에게 이 나라를 버마 혹은 미얀마 둘 다 불러도 된다고 말했다. 비록 자신은 버마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만 외교부 장관으로서 가끔은 미얀마로도 부르겠다고 약속했다.
론리플래닛은 이 나라의 기본 이름으로 미얀마를 사용한다. 하지만 1989년 이전의 시기를 이야기할 때나 그것이 예를 들어 버마 캠페인 UK(Burma Campaign UK)같은 조직의 이름일 때는 버마도 사용한다. ‘버미즈(Burmese)’는 버마인(이 나라의 모든 국민을 칭할 때는 ‘미얀마 사람들’이라고 표기한다), 음식 혹은 언어를 칭할 때 사용한다.
사이먼 리치먼드(Simon Richmond)는 론리플래닛 미얀마(버마) 가이드북의 저자이자 큐레이터로, 2002년부터 이 나라를 광범위하게 여행해왔다.
글. 시몬 리치먼드(SIMON RICHMOND) 편집. 평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