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초연 Jan 22. 2021

그와 결혼한 이유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마음에 대하여

친구 중 가장 빨리 결혼을 한 사람은 A다. 그녀는 25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던 중 돌연 결혼을 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어학연수를 핑계로 호주에서 열심히 인생을 낭비하던 중이었다. 당시 나는 그녀가 결혼을 하기에 너무 어리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녀가 결혼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어 만우절 장난이 아니냐며 여러 번 물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A로 말하자면,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 손에 꼽힐 만큼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고등학생 때는 물론이고 스무 살이 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단정한 단발머리, 정갈한 매무새, 어른스러운 행동, 조곤조곤한 말투까지. 심지어 공부도 곧잘 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여대에 턱, 하니 붙었고, 심지어 남들은 놀기 바쁜 스무 살 여름방학마저도 토익이니, 봉사활동이니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한 번은 알차게 사는 A에게 지나가는 말로 “넌 결혼을 할 거야?”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당시 A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글쎄, 하면 하고 말면 말고. 굳이 해야 할까? 지금은 그래.


그런 A가 결혼이라니. A의 남편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A에 대해 덧붙이자면 그녀는 나와 확실히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남자친구와 크게 다투거나, 헤어질 위기에 처하면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하던 나와 달리 그녀는 연애를 해도, 연애가 끝나도 늘 우리에게 말을 아꼈다. 뭐, 그렇게 됐어. 결과만 말하는 정도였고 이따금 그것이 서운하긴 했지만, 그 정도가 지나간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리하여 헤어진 후 그녀가 말한 그녀의 구남친 역시 그녀만큼이나 학벌이 좋았고 여러모로 단정하고 정갈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런 까닭에, 행여 그녀가 결혼을 한다면 남자는 아마 SKY나 해외대 출신이거나 전문직의 번듯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짐작도 했었다. 그러니까 A만큼이나 안정적이고 여러모로 준비가 된 사람 말이다.

- 나 S랑 결혼해.


하지만 A의 결혼 상대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비껴간 상대였다. A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이미 번듯하게 자리 잡은 누군가라는 막연한 상상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S는 SKY도 전문직도 아닐뿐더러, 우리와 동갑인 친구였다. 그런 까닭에 S는 그 당시, 이제 막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작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 중이었다. 여러모로 결혼을 하기엔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이른 25살에 결혼이라니. 나는 뜨악했다. 그리고 A에게 물었다.


- 지금 결혼을 하는 이유가 뭐야? 우린 아직 너무 어리잖아. 무엇보다 S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


나는 쉬지 않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A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A의 대답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나의 예상을 완전히 깨는 대답이었다. 항상 누군가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조건이나 외모, 마음 등 어떤 명확한 이유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 여겼는데, A는 아니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A는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맞아. S와는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그는 나에게 항상 최선이니까. 우리는 결혼하고 바로 유학을 갈 거야. 거기서 같이 대학원을 다닐 거고.


A는 늘 그렇듯 계획이 있었다. 유학을 다녀와서 결혼을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목구멍에 맴돌았지만 구태여 덧붙이진 않았다. A에게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이상의 확고한 마음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 말을 하는 A의 표정이 너무 단호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 A가 말한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문장을 곱씹어보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날의 충격과 놀라움을 기억한다.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만큼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그 까닭에 언젠가부터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했을 때,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면 나 역시 망설임 없이 결혼을 해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사람은 없었다. 여전히 외모가 괜찮아서, 조건이 괜찮아서, 취향이 비슷해서, 학벌이 좋아서, 여러모로 비슷한 사람이라서. 이런 이유들로 가까워졌던 애인이었고 그런 이유들로 멀어졌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마음으로 결혼을 한 A는 여전히 S와 잘 살고 있다. 7년이 지난 지금, A의 인스타그램을 볼 때면 ‘유학을 다녀와서 결혼을 하는 게 어떠냐’는 괜한 말을 꺼내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A에게는 꼭 그때여야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확실한 마음. 적당히 괜찮은 게 아니라, 충분히 괜찮은 마음. 가득찬 마음. 인생을 다 걸만큼의 마음. 사랑.

매거진의 이전글 꿈꾸지 않을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