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익숙한 진동: 나의 '옴' 그리고 그들의 믿음 -
나는 믿음은 있지만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저 평범하게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몸과 마음을 돌본다. 이것이 곧 나의 수행이자 신념이다.
하지만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서든 힌두교의 깊은 신앙심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숙소 주변의 힌두 사당에서 울려 퍼지는 힌두 만트라, 그중에서도 ‘옴(Om)’ 암송 소리는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힌두교인이 아니지만, 그 소리를 아주 좋아한다.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옴', '옴'을 읍조리면 그 진동이 온몸에 퍼져나가고, 또 마음은 평안해진다. 이는 나만의 명상 방식이며, 낯선 곳에서 찾는 평온이다.
이렇듯 인도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힌두교의 신념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부터 왕실의 역사에까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나는 라자스탄 자이푸르의 시티 팰리스(City Palace)에서 그 거대한 믿음의 실체를 목격했다.
갠지스, 4천 리터의 신성 -
시티 팰리스의 디완 이 카스(Diwan-i-Khas), 왕의 개인 접견실 한가운데에 사람 키만 한 거대한 은 항아리(Silver Urns) 2개가 서 있다.
이 항아리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였던 자이푸르의 왕, 마하라자 사와이 마도 싱 2세(Maharaja Sawai Madho Singh II)의 확고한 신념이 담겨져 있다.
1902년, 마하라자가 영국의 에드워드 7세 국왕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으로 향했을 때다. 그는 이국 땅의 물을 마시는 것이 종교적 믿음에 위배되고, 카스트의 신성함을 잃게 될까 우려하였다고 한다. 즉, 힌두교도에게 성스러운 강인 갠지스 강(Ganga)의 물이 아닌 다른 물을 마시는 것은 큰 죄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초대형 은 항아리를 제작했고, 갠지스 강물을 가득 담아 수개월의 유럽 여행 내내 이를 마시거나 정화 의식에 사용했다고 한다. 상상해 보라. 마하라자의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 때문에 런던까지 대동된 거대한 갠지스 물병이라니!
세계 기록에 새겨진 장인의 혼 -
이 항아리는 높이가 약 1.6미터에 달하고, 무게는 약 345kg이며, 약 4,000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순수한 은을 용접하지 않고, 단 하나의 은 조각(단일 은제품)을 녹여서 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당대 최고의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항아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은제품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
마하라자는 왕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힌두교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구 반대편까지 성스러운 물을 가지고 가야 했다. 은 항아리는 왕실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들의 일상과 종교적 믿음이 얼마나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는지 웅변한다.
우리가 '옴' 암송 소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듯, 힌두인들의 삶에는 이처럼 강력하고 오래도록 이어져 온 신념이 있다. 이 거대한 은 항아리는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가장 흥미롭고 역사적인 문화 유물로 남아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