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레(Leh)의 중심과 조망
레(Leh)의 풍경은 수직적이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레 왕궁(Leh Palace)에 오르면, 도시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바로 그 발아래로, 시간이 멈춘 듯한 올드레(Old Leh)의 흙벽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 펼쳐져 있다.
그 너머, 길게 뻗은 중심 도로가 바로 활기찬 메인 바자르(Main Bazaar)다. 차량은 다니지 않는 이 넓은 보행자 도로 위로 오색찬란한 타르초(Tarcho) 깃발이 역광으로 나부끼고 있다. 메인 바자르 가운데에는 벤치들이 있어, 한낮의 뜨거움을 피해 해가 기우는 시간에 많은 사람이 앉아 담소를 나누는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이곳은 관광객과 현지인, 특히 티베트 계열의 사람들이 "줄레 줄레(Juley)"를 외치며 활발하게 교류하는 레의 심장부다.
여행자들의 숙소와 음식점이 밀집한 잔스티 로드(Zangsti Rd)와 대비되어,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간은 바로 이 메인 바자르에서 올드 레로 접어드는 초입의 좁고 조용한 골목길에 숨어 있었다.
골목 안의 작은 하꼬방(작업실) -
골목 초입, 흔히 길가 모퉁이에 자리한 '하꼬방'이 있었다. 이것은 높이가 낮고 아주 작은 공간의 초라한 사각형 상자 형태였다. 나무 혹은 철판으로 만들어진 이 상자 같은 공간은, 오직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좁다. 2019년 여름, 나는 그 작은 구멍 같은 공간 속에서 간단한 세공 작업을 하고 계시던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할아버지는 이 낮고 초라해 보이는 작은 공간 안에서 앉아서 작업을 하셨다. 하꼬방 내부에는 작은 세공 작업을 위한 각종 도구들이 벽과 바닥에 촘촘히 나열되어 있었다. 손과 집중하는 눈빛은 오랜 세월 작은 노동으로 삶을 이어온 장인의 시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의 작업 모습을 담는 나의 카메라는 세월의 흔적이 밴 손과 숙련된 눈빛, 지저분하고 고요한 작업 환경은 나에게는 좋은 소재인 셈이었다.
20 루피, 최소한의 대가
처음 할아버지는 카메라에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문득, 할아버지께서 손가락으로 벽 한쪽을 가리키셨다. 그곳을 보니 낡은 종이에 "Rs. 20/- For Photography Charges" 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반응이 없음에 그저 작업에 집중하시는 줄로만 알고 계속 셔터를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20 루피는 아주 작은 금액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금액표를 보고 할아버지의 속내를 짐작했다. 귀찮게 구는 이방인에게 대응하기보다는, 최소한의 대가를 지불하고 찍으라는 무언의 요구였을 것이다. 사진에 대한 모델료를 지불함으로써, 일종의 노동이자 예술 행위의 대가라는 것을 명확히 일깨워주신 것이지.
순간의 민망함과 깨달음.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20루피 이상의 돈을 꺼내 할아버지께 건넸다. 돈을 드린 후, 할아버지와의 사이에는 작은 이해가 생겼다. 나는 그 보답으로 여태껏 찍은 사진보다 더 많은 모습을 담았다.
나의 몸의 상체는 하꼬방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무릎을 꿇은 하체는 밖에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았으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레의 고지대 건조한 공기 속에서 그분의 삶의 조각들을 정중하게, 그러나 다소 코믹한 자세로 기록했다.
몇 개월의 아쉬움과 독신 -
그 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나의 여행이 중단되었다가, 2023년 여름, 나는 다시 레를 찾았다. 이번 여행 중에 2019년에 하꼬방 할아버지의 사진을 인화해서 직접 전달해 드리려 했다. 하지만 골목에 있었던 하꼬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잘못 찾았나, 다른 골목에 왔나 싶어 주변을 서성이다, 근처에서 실크 기념품을 파는 젊은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내가 레에 도착한 시점보다 3개월 전에 병으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겨우 몇 개월 차이로 나는 전해주려 했던 사진을 전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혹시나 가족분들에게라도 전달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할아버지께서 독신이셔서 홀로 지내셨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사진을 그 젊은 사장님의 가게에 맡기고 돌아왔다.
짧은 인연의 아쉬움 -
나는 그 젊은 사장님에게 사진을 맡긴 것을 계기로 짧은 인연이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레에서 일주일 이상 머무는 동안, 그 친구는 계속해서 "놀러 와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두 번은 괜찮았지만, 반복되는 연락은 곧 부담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 그 친구의 샵은 골목 깊숙이 위치해 있어 손님들의 발길이 잦지 않은 곳이었다. 나에게는 순수한 만남을 넘어 뭔가 구매를 기대하는 영업적인 의도가 느껴졌다. 외진 곳에서 장사를 이어가야 하는 젊은 사장님의 절박한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하면서 특별한 기념품이나 인도스러운 물건이 아니라면 물건을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의 여행 목적이 현지의 삶을 느껴보는 것이지, 쇼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소신을 굽힐 수 없었고, 그의 절실함이 나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나는 결국 그 친구의 상업적인 접근 방식에 심적인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 다음에 레를 찾았을 때도 그 근처를 지나치는 것은 피했다.
짧았던 인연은 그렇게 서로의 입장이 좁혀지지 못한 채 아쉽게 단절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에피소드 속에서 가장 깊이 남은 것은 하꼬방 할아버지에 대한 아쉬움이다. 몇 개월만 일찍 왔더라면, 또는 할아버지께서 혹여 병원에라도 누워 계셨다면 얼굴이라도 뵐 수 있었을지 모른다. 몇 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차이로 그분과의 마지막 인사를 놓쳤다는 아쉬움은, 인도를 여행하며 현지의 보통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나의 여정에서 가장 먹먹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