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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킷 곰파, 황량함 속의 환상

디스킷 곰파에서 본 누브라 밸리

by 론리포토아이
딕스킷 곰파를 뒤로 하고

레(Leh)를 출발한지 버스로 8시간 만에 도착한 디스킷(Diskit)에서 내린 현지 주민들 틈에 외국인 여행자는 나와 또 한 명, 단 둘 뿐이었다. 그녀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온 40대 여성 클라우디아 곤잘레스(Claudia Gonzalez)였다.


손님을 가득 태운 낡은 버스는 힘들게 카르둥 라(Khardung La)라는 전설의 고개(5,359m)를 넘는다. 일주일에 단 두 번 다니는 낡은 로컬버스는 아니나 다를까 고갯길 조금 못 미쳐 결국 고장이 났다. 버스는 레 방향으로 되돌아가야 했고, 가는 도중 대체 버스를 갈아 탄 후에야 비로소 스릴 넘치는 산맥을 통과할 수 있었다. 디스킷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네 시쯤이었다. 누브라 계곡 위로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 그림자는 늦은 오후의 황량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 모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이 작은 마을 디스킷에 닿을 수 있었다.


사실 나의 디스킷 방문 목적은 오직 하나, 라다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원인 디스킷 곰파였다. 몇 년 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언덕 위 곰파에서 내려다보던 누브라 밸리(Nubra valley)의 광활한 모습은 '환상적' 그 자체였다. 이번에도 나는 그 유서 깊은 곳에서 고단했던 여정을 잊고, 따뜻한 우유 짜이 한 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멀리 보이는 곰파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오르는 길이 가팔랐다. 버스 여정의 피로가 몰려왔지만, 클라우디아와 함께 지름길로 오르는 작은 길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오후 늦게 도착한 곰파는 이미 굳게 문을 닫은 뒤였다. 눈앞에서 환상적인 풍경과 명상의 시간이 좌절된 순간, 아쉬움이 밀려왔다.


곰파 아래 언덕에는 압도적인 크기의 약 32m 높이의 마이트레야 부처상(미래불상)이 우뚝 서 있다. 이 불상은 시오크 강을 건너 파키스탄 국경을 바라보며 평화와 보호를 상징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거대한 부처상은 너무 인위적이고 인도스럽게 느껴져 나의 사진적 관심과 매력은 다소 떨어졌다. 나는 문 닫힌 곰파를 아쉬워하며, 멀리서 눈에 들어오는 그 거대한 조형물 뒤에 펼쳐진 누브라 밸리를...


황량한 산맥과 아래로 흐르는 시오크 강, 사막 같은 누브라 밸리의 독특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대지 앞에서 나는 나의 존재를 잠시 잊었다. 인간 세상의 모든 번잡함과 고단함은 이 광활한 풍경 앞에 부질없었다. 비록 짜이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지는 못했지만, 이 장엄한 풍경은 나에게 넓은 세계관을 선물했고, 나의 고민과 시야를 단숨에 확장시켜 주었다.


그날의 아쉬움은 다음 날 행선지였던 투르툭(Turtuk)은 인도 북단, 파키스탄 국경 바로 옆에 위치한 신비로운 마을이다. 나는 숙소에서 마주친 클라우디아에게 투르툭을 함께 갈 의향을 물었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누브라 밸리의 작은 마을 디스킷에서 만난 두 이방인, 나와 그녀는 라다크의 국경 마을인 깊은 오지로 함께 향하게 되었다.

누브라 밸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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