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서북단에 자리하며 아라비아해와 긴 해안선을 접하고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구자라트. 동쪽은 라자스탄, 남쪽은 마하라슈트라 주와 맞닿은 이 광활한 땅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 바로 아메다바드(Ahmedabad)에 도착했다.
처음 '아메다바드'를 발음하는 데 조금 머뭇거렸지만, 현지인들은 '암다바드(Amdabad)'라 부르며 손쉽게 도시를 소개한다. 인도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라는 타이틀은 이 도시가 가진 독특하고 복합적인 매력을 짐작하게 한다. 나는 도시의 심장이 뛰는 올드시티(old city)와 재래시장(바자르, bazar) 바로 옆에 숙소를 정했다. 그곳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전통적인 공간이며, 보통 사람들의 생생한 삶이 펼쳐지는 최고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600년의 침묵, 폴(Pol)의 골목을 걷다 -
둘째 날 아침, '헤리티지 모닝 워크(Heritage Morning Walk)'에 참여해 올드시티의 비밀 통로인 '폴(Pol)'에 들어섰다. 암다바드 올드시티의 진정한 정체성은 ‘폴(Pol)’이라 불리는 독특한 주거 공동체에 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하벨리(Haveli)의 목조 장식들은 수백 년간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손때와 숨결을 머금고 있다. 그 나무의 결 사이로 빨래를 너는 여인과 차부타라(새 모이통, Chabutara)에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 폴(Pol)들은 그 시간 속을 살아 숨 쉬는 역사 그 자체이다. 겉으로 보기엔 복잡한 미로 같지만, 복잡한 대도시의 소음을 완전히 차단하고, 주민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온 이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의 세계는, 마치 겹겹이 쌓인 성벽 안의 은밀한 안식처처럼 느껴진다. 골목 안쪽의 평화로운 일상은 여전히 600년 전의 궤적을 그리며 흐르고 있었다.
생존의 박동, 바자르에 울려 퍼지는 격렬한 교향곡 -
하지만 태양이 중천을 넘어서면, 폴(Pol)의 고요함은 도시의 모든 에너지를 집약해 폭발시키는 바자르(Bazaar)의 활기에 자리를 내준다. 마넥 쵸크(Manek Chowk) 일대는 그야말로 삶과 욕망이 뒤섞인 역동적인 무대다. 릭샤, 오토바이, 짐수레가 한데 뒤엉켜 만들어내는 트래픽 잼은 마치 거대한 유기체의 춤처럼 보였다.
길 위는 노점상들이 펼쳐 놓은 원색의 폭발로 가득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찰이 나타나자마자 노점상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보따리를 순식간에 낚아채 사라지는 장면이었다. 그 유연하고 재빠른 몸짓은 우리네 옛 장터의 풍경과 닮아 있어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경적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가 스스로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리듬이자, 도시의 오후를 장식하는 격렬한 교향곡이다. 즉,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아잔(Adhan)의 쉼표, 그리고 역설적인 평화 -
혼돈이 절정에 달해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저녁 6시를 알리는 이슬람의 기도 소리 '아잔(Adhan)'이 대형 스피커를 타고 도시 전체를 덮는다. 그 순간, 시장의 소음은 성스러운 울림 뒤로 잠시 숨을 고른다.
그 찰나의 틈을 타 큰길을 벗어나 가게 그늘진 골목 모퉁이로 깊숙이 들어섰다. 불과 몇 미터 앞은 아수라장인데, 거짓말처럼 이 구석은 한적했다. 벽에 기대어 놓인 나무 벤치에는 노인들이 묵묵히 앉아 계셨다.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그분들이 수천 년 역사의 아래서 최신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은, 인도가 가진 '극과 극의 공존'을 상징하는 완벽한 프레임이었다.
사바르마티, 비폭력의 정신이 깃든 문화적 심장 -
암다바드는 근대 인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폴(Pol)을 통해 역사 속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했다면, 사바르마티 강변의 ‘사바르마티 아쉬람(Sabarmati Ashram)’은 이 도시가 가진 ‘비폭력 투쟁(Satyagraha)’의 정신적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간디가 단순하고 절제된 삶을 실천하며 인도의 독립을 계획했던 그 고요한 공간에서, 나는 이 도시의 문화적 요소뿐만 아니라, 간디가 심어 놓은 강인한 정신에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시끄러운 혼돈 속에 가장 고요한 평화가 숨어있다는 역설. 암다바드는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번잡함을 피해 들어선 골목 모퉁이, 나무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노인들의 무심한 얼굴을 마주한다. 그들의 깊게 파인 주름 사이로 방금 지나온 바자르의 소음이 희미한 배경음처럼 멀어진다. 600년의 고유한 전통을 지키는 폴(Pol)의 정적과,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반복되는 바자르의 폭발적인 에너지. 이 극명한 대비야말로 내가 인도를 여행하는 이유이자, 내가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최고의 소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