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꿈 속을 달린 아침 (feat. 사서 선생님)

by 강효진

메시지를 본 순간, 나는 정말 0.0001초만에 정신이 나가버렸다.


"오늘 오전반 모임 안 해요?"


세상에, 나폴리 4부작 마지막 책모임의 오전 모임과 저녁 모임 시간이 어긋나 일정이 변경된 것을 깜빡한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오전 모임 있다는 걸 잊을 수 있지, 지금 사람들이 1시간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민정님은 왜 이제서야 연락을 줬지, 사람들한테 뭐라고 설명하지, 당장 집에 가서 줌 접속해야 하는데, 책상은 엉망이고, 나는 지금 도서관에 앉아 있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이 상황이, 꼭 내가 자주 꾸는 꿈 속 같았다. 약속을 깜빡했다는 걸 뒤늦게 알거나, 이미 약속시간을 함참 늦어버린 꿈. 깨닫는 순간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꿈.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쓰던 글 저장할 새도 없이 당장 노트북 코드를 뽑고, 메시지 답장할 겨를도 없이 가방을 챙겨서 도서관을 뛰쳐나갔다. 한 시간이 지났으니 모임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는 생각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아니,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게, 그 아침에 달려나가면서 저녁 모임 사람들을 떠올렸다는 거다. 저녁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민정 님이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에만 빠져서, 앞뒤 맥락없이 머릿속이 뒤범벅된 채였다. 저녁 모임을 위해 운동화를 구겨 신고서, 미친듯이 달려갔다. 바람에 벗겨진 모자를 줍는 그 짧은 순간이 10분은 지난 것만 같았다. 아무리 빨리 달리려 용을 써 봐도 내 다리는 무겁게 늘어져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숨을 헐떨이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서 폰을 열었다. 답장을 하려고.

그때 눈에 들어온 민정 님의 메시지.

"아 오전반은 다음 주구나. 저녁반 단톡반에도 같은 메시지를 올려주셔서 오전 모임도 오늘인가 했어요."


그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아니구나, 오늘 오전 모임이 아니구나. 다행이다.

바닥에 앉은 채로 민정 님에게 답장을 보냈다. 모임 까먹은 줄 알고 놀랐다고.

그러자 민정 님이 미안해했다. 정신머리 없는 나 때문이지, 민정 님이 미안해 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구겨 신었던 운동화를 바로 신고, 어디론가 달아났던 정신줄을 다시 잡고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우리 동 엘리베이터에서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짧은 사이에, 생각났다. 조금 전까지 쓰던 글! 저장할 겨를도 없이 코드를 뽑아버렸는데, 그 글은 다 날아갔을까. 짧은 한숨이 나왔다. 한글 자동저장을 믿어보자, 생각하며 도서관 입구에 들어섰다.


아까는 자동차 본닛 위에 앉아있던 얼루기 고양이가 그 사이 자리를 옮겨 햇볕을 받고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물 안에 들어서니, 미친듯이 달려 나오느라 신발장에 넣지도 못하고 벗어둔 슬리퍼가 그대로 있었다. 다시 그 슬리퍼에 그대로 두 발을 꿰어 넣고 들어갔다. 안도의 한숨은 쉬지 않고 새어나왔다.


끝간 데 모르는 이 정신 없는 상태를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나를 (아직은, 아니 영원히?) 알 리 없는 친절한 사서 선생님께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선생님은 도서관을 뛰쳐나가던 내 얼굴이 너무 안 좋아보여서 걱정했다고 하셨다. 나는 그저 내가 작은 착각을 했을 뿐이라고, 별일 아니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다행이라며 웃으셨다. 고마운 선생님.


처음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노트북을 꺼내고, 코드를 꽂았다. 여전히 팔이 후들거렸다.

노트북 화면이 켜지며 내 얼굴을 비췄다.

꿈에서 막 깨어난 기분이었다.


여유롭게 도서관으로 걸어가던 길에 보았던 얼루기.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나 혼자 멘붕 빠져서 이 난리 칠 줄은 몰랐지.


도서관에서 글쓰고 있을 때, 사서 선생님이 챙겨주신 간식. 내가 포항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된 분이 사서 선생님이라서 좋았다. 작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사서 선생님은 더 세심하게 마음을 써 주신다. 선생님 덕분에 먹은 간식이 얼마인지. 맛있는 차도 자꾸 얻어 마시고. 짧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사서 선생님의 담백함과 섬세함이 동시에 느껴져서 너무 좋았단 말이에요.


두 달 전쯤, 명절 지나고 사서 선생님이 고향에 다녀왔다며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지퍼백에 가득 들어있던 건, 울릉도 호박엿이랑 젤리들. 사서 선생님 고향이 무려 울릉도라고 했다. 어머나, 울릉도가 고향인 분을 뵙기는 처음이에요! 진짜 오랜만에 호박엿을 먹는데, 어쩜 그렇게 고소하고 달콤하던지. 이 맛에 호박엿 먹는구나, 알았다.


내가 사서 선생님에게서 호박엿 얻어먹은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그랬다.

"너도 이제 포항 사람이 되나 보다."

그 말을 자꾸 곱씹게 되었다. 나를 포항 사람이 되게,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대해주신 분이 바로 사서 선생님이구나. 그렇게나 고마운 사서 선생님이 내년에는 다른 도서관으로 가셔야 한단다. 한 도서관에서 2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고, 다른 도서관으로 발령 받는다고.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 말씀 끝에 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12월 가기 전까지 도서관에 자주 오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이 참 좋았다. 근무지가 정해지면 나에게도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나중에 선생님 만나러 놀러가야지.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은, 소장책 중에 그림책 비중이 조금 더 높은 편이다. 동네 어린이들이 이용하기 좋게 그림책 서가는 뜨끈한 온돌이 깔려있다. 거기에 살짝 올라가면 발끝부터 따뜻해진다.

정말이지 작고 소중한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이 있어서 좋다.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겨울을 건네는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