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장 관리원 1
일주일에 한 번, 주차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교차로 광고를 보고 아빠가 찾아간 곳은 중심가에 위치한 주차장이었다. 낯선 길을 걷는 내내 아빠의 희끗한 머리칼을 비추던 초여름의 햇살도 2층짜리 철골 구조 주차장 안까지 따라오지는 못했다.
그늘진 내부 조그만 부스 앞에서 여기옥 씨를 처음 만났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가 단숨에 아빠를 위아래로 훑었다. 툭툭 끊어지는 까랑까랑한 부산 사투리 속에도 차가운 눈빛이 예리하게 박혀 있었다. 주차장 관리원으로 일하는 남기옥 씨는 매주 금요일이면 홀로 지내는 어머니를 만나러 부산에 간다고 했다. 아빠는 그녀가 자리를 비우는 날 근무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여기옥 씨를 만나고 나흘 후, 아빠는 주차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햇살이 잘 드는 집을 나서 어두침침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아빠는 아침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그제야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기분이 들었다. 일흔이 되었어도 일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쌓인 세월만큼 그 열망은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았다. 비록 일주일에 단 하루뿐인 출근일지라도 말이다.
그곳은 주차장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주차장이었다. 차단기가 오작동하거나, 요금 정산기나 차량 인식기에 오류가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주차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이 주차 관리원의 주된 업무였다. 처음 해 보는 일에 실수가 생길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첫 근무는 무탈하게 마쳤다. 자동화 설비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서 아빠의 수고가 필요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루치 일당을 받으며 몇 번의 금요일을 보내다 보니, 아빠는 이 일을 장기적으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전에 했던 사우나 청소에 비하면 육체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신경 쓸 필요 없이 혼자서 일한다는 것이 외롭기보다는 홀가분해서 마음에 들었다.
아빠는 여러 통의 이력서를 들고서,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경주역 주차장부터 역 인근 사설 주차장까지 일손이 필요해 보이는 대형 주차장들을 찾아다녔다. 일자리를 구한다는 아빠의 말에,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무심한 목소리로 공석이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구직자가 찾아왔을 때를 위한 매뉴얼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는 곳마다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고심하며 한 자 한 자 채워 넣은 이력서를 책상 위에 얌전히 올려두고 나올 때면, 아빠는 어쩐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매뉴얼의 다음 단계는 구직자가 돌아서는 순간 이력서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었다.
대체 근무를 한지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뿐이던 출근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관제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근무자가 하루 이틀 정도 자리를 비워도 주차장 운영에는 크게 무리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기계 덕분에 일하기가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기계 때문에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었다.
아빠는 다시 부지런히 지역 정보지를 뒤적였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노년 남성이 일자리를 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일자리를 잃은 후, 아빠는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나면 무조건 집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약수를 떠 오거나 소금강산 숲길을 혼자서 오래 걸었다. 몸만큼은 불편한 곳 없이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나날이었다.
그러나 속마음은 달랐다.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일일지라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지키고 싶었다. 아빠의 자리가 희미해질수록, 세상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반짝이던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가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모든 빛이 사라져 버리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 안에 가만히 앉은 채로 길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평생 일을 하며 스스로를 단련해 온 아빠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잊어버리는 지름길이었다.
그즈음 뜻밖에도 여기옥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기옥 씨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새로 주차장을 한 곳 더 운영할 예정인데, 아직 직원 채용 전이니 아빠가 먼저 이력서를 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까랑까랑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투박하지만 다사로운 속정이 묻어 있었다.
아빠는 이력서와 신체검사서를 들고 씩씩하게 면접을 보았다. 일주일에 한번 근무할 때 전화 면접을 보았던 지사장은, 아빠의 적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채용을 약속했다. 다만 한 달간의 설비 시범 운영이 끝난 뒤, 주차장이 정상 운영되면 아빠도 정식 출근을 할 수 있었다. 그 한 달 동안, 아빠는 기꺼이 무급으로 주차장을 돌보며 일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아빠의 새로운 일터는 넓은 부지에 농협과 마트, 농산물 공판장, 농자재 창고와 농기계 수리센터까지 자리한 곳이었다. 대형 화물차가 여유롭게 드나들 만큼 주차장 또한 무척이나 널찍했다. 공판장에 입점한 50여 개 점포 상인들의 차량이 날마다 자리를 채웠고, 이른 새벽부터 경매가 끝나는 오전 9시까지는 농산물을 실은 1톤 트럭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경매가 끝난 뒤에는 은행이나 시장을 찾는 손님들, 농자재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 수리점을 찾은 대형 농기계 들로 주차장은 종일 분주했다.
주차장을 무료 개방하는 동안, 유료로 전환되었을 때 차질이 없도록 아빠는 미리 구석구석 세심하게 살폈다. 주차장 내에서 커브를 돌거나 비가 내려 시야가 흐린 날에도 안내 표지판이 잘 보이는지 확인했다. 기계 조작에 서툰 농민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산기 사용 안내 문구가 잘 보이도록 눈높이에 맞추어 설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빠 역시 노년이었기에,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시선에 먼저 마음이 가는 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입출 차량을 인식하는 카메라의 각도였다. 기계에 오류가 많던 시절이라 날씨나 빛의 방향 하나에도 번호판 인식이 안 되어 먹통이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좁은 부스와 차량 사이를 오가며 수동으로 기계를 조작하느라 분주해졌다. 시범운영이 끝난 이후에도 적절한 각도를 찾기 위해 꽤 오랫동안 신경을 써야만 했다.
더 난감한 건 앞차에 바짝 따라붙어 들어오느라 입차 기록이 남지 않은 차량이었다. 기록이 없는 차에게 출구 앞 차단봉은 열리는 법이 없었다. 주차장에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차,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차'가 되어버린 것이다. 멈춰 선 유령차 뒤로 줄줄이 늘어선 차들이 화가 난 듯 울리는 경적 소리가 아빠 속은 더 타들어갔다. 아빠가 오작동된 기계를 확인하고 수동으로 일을 처리하는 동안, 기다리다가 못해 화가 난 운전자가 차단봉을 들이받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날도 있었다. 주차 요금을 내기 싫어 작정하고 차단봉을 치받고 가버리는 차도 있었다.
퇴근할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차단봉이 다음 날 아침 부러져 있는 것을 볼 때면, 팔 다리의 힘이 풀렸다. 기우뚱한 모양으로 바닥을 가리키는 차단봉은, 성실하게 제 몫을 다하며 살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 같은 건 이 세상에서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쭈그리고 앉아 차단봉을 살피던 아빠는 다시 힘껏 몸을 일으켰다. 세상이 몰라주는 제 몫을 오늘도 묵묵히 다하는 것. 그 무력한 행위가 세상에는 소용없을지 몰라도 아빠에겐 가장 소용있는 일, 아빠를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