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을 타고 갈지라도, 기차를 타는 건 참 묘하다. 아주 멀리 떠나는 기분이 되어버리니까. 어릴 때 경주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 기차를 탔던 기억 때문일까.
어릴 때 할머니를 만나러 경주에 가려면, 버스 타고 수원역까지 가서 기차를 오래오래 타고, 동대구역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탄 다음에, 다시 배차 간격이 엄청 긴 시골 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나 픽업트럭에 손을 흔들어 세워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물어 얻어 타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의 차를 타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 네 식구가 걸어가고 있으면 지나가는 차들이 먼저, 어디 가느냐고 묻는 일도 많았다. 그런 차도 없을 땐 어린 나에게 꽤 먼 거리를 걸었던 기억도 난다.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야 도착할 수 있었던 할머니집. 그래서인지, 근거리라도 기차를 탈 때면 먼 여행을 떠나듯 설레는 마음이 먼저 든다.
기차 탈 일이 있었다. 내가 창가 자리에 먼저 앉고, 잠시 후 젊은 여성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기차가 출발하고, 너무 새벽 일찍 일어난 나는 어느새 졸기 시작했다. 내가 졸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눈을 떠야지, 생각할수록 고개는 자꾸만 꾸벅거렸다. 떠지지 않는 눈속으로 부드럽게 몰려드는 잠이 달콤해서, 달리는 진동을 의식하다가 잠 속으로 빠져들다가, 그렇게 잠과 기차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눈을 떴는데 기차가 정차하고 있었다. 정차한 역을 안내하는 목소리를 분명 들었는데 어디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을 보니 내가 내려야 할 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도 아니고, 기차에서조차 내릴 역을 제대로 못 내리면 안되는데.
다급히 옆자리 여성에게 물었다.
"여기가 무슨 역이에요?"
여성은 안내 전광판을 확인하더니 김천역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휴, 다행히 조금 더 가야 목적지였다.
잠이 깬 나는 그제야 넋놓고 창밖 구경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차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기차는 그저 시원하게 달리기만 했다.
아니, 왜 안 멈추지? 어디까지 가는 거지? 차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기차를 잘못 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하다가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기차를 잘못 탄 게 분명해!!!
다급해진 나는, 다시 옆자리 여성에게 내 모바일 승차권을 내밀며 물었다.
"저,,, 정말 죄송한데요. 이 기차가 이 기차 맞나요?"
그 여성은 다시 차분하게 자신의 승차권을 확인하고는 맞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제서야 기상 상태 때문에 기차가 10분 정도 연착된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나중에 보니, 모바일 승차권에서 기차 위치와 연착 상황까지 다 확인할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자꾸 옆자리 여성을 귀찮게 한 거다. 미안합니다. 흑흑
대전역에 도착하자, 옆자리 여성은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자신의 짐과 가방을 싹 정리해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여성도 나와 목적지가 같은가 했더니, 내가 지나가고 나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민폐 아줌마가 편하게 나갈 수 있도록 발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친절한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나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재바르게 몸을 움직여 자리를 빠져나왔다.
기차는 참 묘한 구석이 있다. 포항에서 대전까지 달리는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길을 잃을 것만 같은 낯선 순간까지 나를 사정없이 데려갔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목적지에 내려주니까. 참으로 짧고도 너무나 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