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처음 울던 날

39년 5개월 동안 지겹지도 않으셨나요?

by 강효진

태생적으로 일찍 일어나야 하는 사람, 아침 잠이 없는 사람, 심지어는 아침 잠을 싫어하는 사람.

어릴 때부터 나는 아빠가 그런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토록 자주 야근을 하고 늦게까지 회식을 한 다음 날에도 아빠는 어김없이 새벽 일찍 일어났고,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 집을 나섰다. 아빠와 일하는 직장 동료들, 특히 부하 직원들이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 건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였다.

방학이라도 되면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는 엄마와 학교에 갈 필요가 없는 나와 내 동생이 모두 잠든 사이, 아빠는 혼자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을 했다.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부엌에 들어가면 아빠가 데워놓은 찌개나 국이 식어가고 있었고, 식탁 위에는 세 사람 몫의 수저가 올려져있었다. 그 옆에는 우리가 먹기 귀찮아 하는 종합 비타민이 한 알씩 놓여 있기도 했고.


수능을 보고 난 겨울, 나는 따뜻한 침대 속에 파묻혀 날이면 날마다 늦잠을 잤다. 야자 시간이면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수업과 상관 없는 소설책을 읽으며, 이어폰을 꽂고서 좋아하는 가수의 카세트 테이프를 무한 반복해서 들을지언정 아침 7시반까지 등교를 하고 밤 12시까지 학교에 갇혀 야자를 하는 생활은 너무나도 지긋지긋했다. 그 3년에 복수라도 하듯,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늦잠을 잤다. 온밤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보낸 후 밀려오는 혼곤한 아침 잠이 가장 달콤한 열아홉 살이었다. 아빠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 또한 여전히 당연했다.

내 앞에 넘치게 남아도는 시간에 대한 계획도, 곧 시작할 대학 생활에 대한 부푼 꿈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게으름으로 시간을 뭉개고 있던 어느 날. 아빠가 약수터에 함께 가자고 했다. 새벽 일찍 약수터에 다녀오면 기분이 좋은데, 이제 나랑 같이 다니고 싶다고 했다. 당시 경계성 당뇨 진단을 받았던 아빠는 잡곡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출근 전 새벽에 약수터에서 약숫물을 떠오며 생활하던 중이었다.

가기 싫었다. 한겨울 이른 새벽에 왜 약숫물을 떠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물이 정말 약수인지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더 큰 미스터리는 내가 어째서 아빠의 제안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나를 조심스레 깨우는 아빠의 손길에 억지로 일어나, 두꺼운 겨울 파카를 껴 입고 어두운 길목에 나섰다. 너무너무 추웠고, 캄캄했고, 노란 빛깔의 가로등만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외진 산자락 밑 약수터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은 커녕 길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 길을 아빠는 날마다 혼자서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온몸이 뻣뻣해지도록 웅크리고 걷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30분이나 걸었을까. 약숫물을 받고, 약수를 한 컵씩 마시고, 왔던 길을 다시 30분 가량 걸어 되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겉옷만 벗은 채 그대로 침대에 곯아떨어졌다. 그날도 나는 아빠가 출근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빠와 약수터에 가는 건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빠도 그날로 다시는 내게 약수터에 가자고 하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물은 적이 없다. 왜 하필 겨울, 그것도 가장 추운 새벽에 굳이 약숫물을 떠와야 했느냐고. 회식을 하고 과음을 한 다음 날에도 어떻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찍 일어날 수 있었느냐고.


2006년 12월 27일, 39년 5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던 퇴임식 날에도 그랬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었느냐고, 마침내 지겨운 일에서 놓여날 수 있어 속이 시원하지는 않느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아빠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퇴임 연설에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말 새마을 계장으로 일하던 시절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오래된 초가집 대신 깨끗한 양옥집이 들어서고, 논밭도 잘 정비한 농촌 마을을 새마을 홍보마을로 선정하면 외국인들이 새마을 견학을 오곤 했단다.

그날도 아빠가 담당한 새마을 홍보 마을로 견학을 오기로 한 외국 고위직 인사들을 맞이할 준비에 분주했다. 대부분의 농가가 소를 키워 먹고 살았지만, 양옥으로 개량한 덕분에 집안에 외양간을 둘 수 없게 된 그 마을 주민들은 공동 축사를 만들어 함께 소를 키웠다. 문제는 축사에서 먹고 자는 소들의 궁둥이에 당연하게 묻어있던 똥이었다.

소똥이라니, 쾌적하고 아름다운 새마을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아빠는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축사에 있는 소들의 모든 궁둥이를 일일이 닦아냈다. 아무리 따뜻한 물로 닦는다 해도 겨울이라 온기가 금세 식어 소가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며 마을 주민들은 말렸지만, 아빠는 직원들과 함께 축사의 모든 소들에 달라붙어 있는 똥의 흔적을 말끔히 씻어내고 만 것이다.

27년 전 일을 말하는 아빠의 물기 어린 목소리는 냄새나는 축사에서 손이 벌겋게 얼도록 소 궁둥이를 닦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겐 말도 안되는 일, 고생스럽기만 한 일이라 해도 아빠에게는 고맙게도 주어진 일, 그래서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가난 때문에 하고 싶던 공부는 못했지만 사람답게 살아갈 기회를 주었던 일, 어쩌면 아내나 자식보다도 당신을 더 단단히 지탱해 주었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생겼다고. 모든 계절이 다 지나가버리고, 이제서야 당신의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고 아빠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빠가 진짜 봄을 맞은 거라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오랜 시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이제는 남들이 말하듯 따박따박 들어오는 연금을 받으며 그간 배우고 싶던 서예도 배우러 다니고, 아빠의 허리 디스크를 낫게 해 주었던 수지침으로 봉사활동도 하며 가볍게 지내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아빠가 늦잠을 잤으면 했다. 누구도 배웅하지 않는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일은 이제 그만 두고, 마음껏 게으르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생각만 했다. 이제 막 눈물을 닦고 사람들을 향해 웃고 있는 아빠에게 소리내어 말하지 못했다. 내가 아빠의 속마음을 헤아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저 내 속 편한대로만 생각하고 싶어한다는 걸 들킬까 봐.


그날로부터 꼭 열이틀 후 아빠가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은퇴 후 아빠가 하게 될 여러 일들 가운데 그리 오래 지속하지 못한 일이 될 거라는 것도, 앞으로 아빠에게 어떤 계절이 펼쳐질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