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듣고 있다

아빠에게 답장을 쓰는 시간

by 강효진

전화 인터뷰로는 성에 안 차는 걸까. 아빠가 자꾸 메일을 보낸다.

가장 처음 보내준 메일엔 2019년 마지막으로 업데이트했던 아빠의 '이력서-19.8.12'와 아빠 인생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날짜별로 연보처럼 상세하게 기록한 이력서의 초초초 상세버전 '나의 여정' 파일이 담겨 있었다. 두 번째 메일엔 '나를 되돌아보다'라는 제목의 한글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아빠가 은퇴 후 했던 일들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을 생각나는대로 일기처럼 기록한 글이었다. 세 번째 메일에 들어있던 파일 제목은 '나를 되돌아보다 2'. 그 전에 보내주었던 '나를 되돌아보다'에서 빠뜨렸거나 뒤늦게 생각난 것들을 조금 더 보충한 글 모음이었다.

메일들은 전부 나와 전화 인터뷰를 한 다음 날, 적어도 이틀 안에 도착했다. 글마다 어찌나 꼼꼼하게 기록을 했는지, 당신의 회고록을 써보는 게 어떨까 싶어질 정도였다. 내 말을 들은 아빠는 막상 쓰려니 마음 같지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영상 통화 인터뷰를 했다. 아빠의 눈빛이나 표정을 화면으로라도 보고 싶어서. 아빠에게 퇴임하던 날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퇴임 연설을 하다가 쏟아진 아빠의 눈물에 대해서.

"내가 그랬나?"

화면 속 아빠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 양 딴청을 부렸다. 나를 바라보던 아빠의 눈은 잠시 허공을 맴돌았다. 퇴임식을 하던 날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겪었던 일들, 그 중에서 유난히 고생스러웠던 일들로, 아빠는 서서히 더 오랜 과거를 향해 기억의 노를 저었다. 시간의 물결을 거슬러가는 동안 아빠는 오히려 기운을 되찾는 것 같았다. 당연한 듯 날마다 야근을 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에 또렷한 힘이 실렸다. 기억은 어느새 아빠가 공무원 시험을 본 이후 새로운 생활을 앞둔 사회 초년생 시절로, 이내 혼자 서울살이를 하며 준비하던 재수에 실패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막막한 스무 살 시절에까지 갔다. 그 순간 아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오래 전 젊기만 했던 그날이 보이는 것처럼. 희미해진 기억이 닫힌 눈꺼풀 속에서 선명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빠의 목소리는 잠잠해져 있었다.


네 번째 메일이 도착한 건 그 다음 날이었다. 첨부된 한글 파일명은 '내가 공무원이 되다'였다. 제목을 보자마자 알았다. 전화 인터뷰를 두 시간 가까이 하고도 아빠에게 못다 한 말이 있었다는 걸, 아직 아빠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걸. 아빠의 글은 A4 용지 한 페이지가 꽉 차 있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부모님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 보겠다고 마음 먹고 시작한 일이 당시 "가장 저급하고 처우도 형편 없었던" 공무원이었다고. 정작 적은 월급이나마 받고나서는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아빠는 적고 있었다.

아빠에 대한 글을 쓴답시고 떠오르는 대로 단편적인 질문을 던지는 내게, 아빠는 당신 삶의 한 시절을 쏟아냈다. 쏟아진 시절이 강물이 되어 흘러넘쳤다. 아빠가 보내준 글을 모두 읽고도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차가운 강바람만 내 뺨을 스쳐 지나갔다.


글을 쓰지는 못하고 끄적거리던 노트만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 꽂혀 있었는지도 모를, 이제는 쓸 일 없는 오래된 노트들까지 죄다 꺼낸 게 잘못이었다. 책을 읽다가 옮겨적었던 좋은 문장들,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목록, 친구랑 시인 놀이하며 습작하던 유물 같은 시들, 심지어 예전 직장 다닐 때 적어둔 업무 관련 메모조차도 어쩜 그리 재미있던지. 중학교 때 적었던 유치한 일기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낄낄 웃음이 나왔다. 솔직하다 못해 발칙한 열다섯 살 여자애의 일기가 요즘 내가 쓰는 글보다 나아 보였다.

또 어떤 유치한 내가 숨어있나, 숨바꼭질하는 기분으로 누렇게 바랜 노트를 넘겨보는데 반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이 갈피에 끼어있었다. 파란 잉크로 적은 익숙한 만년필 글씨. 아빠가 내게 적어주었던 편지였다. 학생들에게 논술 수업을 가르치기 시작하던 때였다.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꼬박꼬박 월급 받고 저축하며 그럭저럭 다녔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난 터라 벌이도 아주 적었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 철없는 내가 듣기엔 잔소리 같은 말을 했고, 서운하다 못해 서러워진 나는 못된 성질대로 엄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그날 아빠는 나를 크게 혼냈다.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아빠는 내 책상 위에 그 편지를 남겨둔 것이었다.

이 세상 사춘기는 혼자 다 겪는 아이처럼 유별나게 굴던 10대 시절부터 아빠는 종종 내가 잠든 사이 책상 위에 편지를 적어놓고 출근하곤 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기가막히게 추락하던 날에도, 내가 엄마와의 갈등으로 온집안을 시끄럽게 하던 때에도, 수능을 보러 가던 아침에도,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던 때에도. 내가 크고 작은 삶의 굴곡들을 겪을 때마다 내 앞엔 강물처럼 파란 잉크로 써내려간 아빠의 편지가 있었다. 답장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아빠의 편지는 지칠 줄을 몰랐다. 아무리 애를 써도 쉽게 나아지지 않는 삶 앞에서 한결 같은 편지가 나는 지겨웠다.


그 많던 편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 자리를 오래 지키던 물건도 지겨워하는 주인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디론가 사라진다더니, 편지들도 내 마음을 들었던 것일까. 위로하고 염려하는 다정한 말들도 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그리고 이제서야 세월의 미세한 갈피 갈피를 떠다니던 아빠의 오래 전 편지 한 장이 푸른 강물을 거슬러 내 앞에 도착했다. 이제 답장을 쓸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목소리로, 표정으로, 메일로, 빼곡하게 채운 한글 파일로 다시 시작된 아빠의 편지들에 답장을 쓴다. 편지는 듣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한결 부드러워진 강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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