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국에서 MSC 인증 참치캔은 왜 보기 힘들까

혜영의 바다 연애 이야기

by 이혜영

마트에서 참치캔을 고르다 보면, 아주 가끔 눈에 띄는 표시가 있다. 파란색 물고기 모양, MSC라는 알파벳. ‘가끔’이라고 말한 건 이 마크가 흔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해산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서양은 물론,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아직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소비자가 묻지 않으니, 기업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인증 마크가 붙은 참치캔을 실제로 마주치는 일은 여전히 예외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이 생긴다. 왜 굳이 이 작은 로고를 붙였을까. 이건 정말 의미 있는 선택일까, 아니면 서양 시장에 맞추기 위한 장식일까.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한국에서는 아직 생활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마크는 종종 ‘압력’처럼 느껴진다.


MSC와 ASC는 각각 Marine Stewardship Council와 Aquaculture Stewardship Council의 약자다. 이름만 보면 이미 멀어진다. 하지만 이걸 조금만 생활 언어로 바꾸면, 이야기는 훨씬 단순해진다. 이 두 인증이 묻는 질문은 사실 하나다. 이 생선은, 다음 세대도 계속 먹을 수 있을까.


MSC는 자연산 수산물에 대해 묻고, ASC는 양식 수산물에 대해 묻는다. 어디서 잡았는지, 어떻게 잡았는지, 그 과정이 바다와 다른 생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지, 그리고 그 방식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지를 본다. 맛이나 품질을 보증하는 마크가 아니라, 과정과 관계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이 인증들이 유독 ‘서양 기준’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기준이 까다로워서라기보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다른 질문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로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얼마나 싸게를 물어왔다. 그 흐름 속에서는 “어디까지가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늘 뒤로 밀렸다. 그러니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인증이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바다는 국경을 모른다. 참치는 태평양 전체를 헤엄치고, 고등어는 여러 나라의 바다를 오간다. 우리가 먹는 생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글로벌한 존재였다. 다만 기준과 약속이 그 이동 속도를 이제야 따라잡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MSC와 ASC는 새로운 규칙이라기보다는, 너무 늦게 도착한 질문에 가깝다.


물론 이 인증들이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비용 부담은 분명히 존재하고, 소규모 어업이나 양식장에는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를 위한 지속가능성인가”라는 질문은 계속 필요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인증들은 바다를 도덕적으로 훈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어렵게 합의한 최소한의 약속이라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이 생선을, 앞으로도 계속 먹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바람. 그 바람을 숫자와 기준, 절차로 번역한 결과가 바로 이런 인증들이다. 한국에서 이 마크가 아직 낯설고 드문 이유는, 우리가 바다를 덜 생각해서라기보다 아직 그 질문을 습관처럼 던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인증이 붙은 생선을 고른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더 착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붙어 있지 않다고 해서 누군가 나쁜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작은 라벨 하나가, 우리가 지금 어떤 질문 앞에 서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더 많이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괜찮은가를 묻는 질문 앞에서 말이다.


나는 오늘도 바다랑 연애 중이다. 연애를 하다 보니 알게 된다. 약속이 많아져서 관계가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아무 약속도 없을 때 관계가 더 쉽게 망가진다는 것을. MSC와 ASC는 바다와 인간 사이에 이제야 생긴, 서툴지만 필요한 약속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https://www.inthenews.co.kr/mobile/article.html?no=39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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