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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Aug 10. 2020

반성문

-말끔해진 화단 앞에서

   며칠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웬일로 해가 쨍하다.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데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위에 시달릴까. 일하고 있는 건물에 다다르자 사방에 풀 향기가 그득하다. 인부들이 화단 정리를 하고 있다. 땀으로 흠뻑 젖다 못해 허옇게 소금 얼룩이 진 등이 보인다. 흐린 날 놔두고 하필이면 이렇게 해가 내리쬐는 날을 골랐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덥겠다.’ 혼잣말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잊고 있다가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새참 시간인가 보다. 층계참 그늘을 빌려 앉아 빵과 우유를 손에 들고 있다. 이 더운 날 뻑뻑한 빵이 목으로 넘어가겠나 싶어, 보는 내가 목이 멘다.      



  “열심히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게 된다!”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 목청을 돋우며 한 말이다. 무슨 대단한 인생의 이치라도 설파하는 듯 단언했다. 제도 교육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거친 세상으로 내던져져 팍팍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악담이었다. 생의 새순 같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뙤약볕과 비바람을 견뎌야 하는 노동은 보잘것없다는, 교만이 내뱉은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주춧돌이 뭔지도 모르고 발밑의 폭신한 잔디를 가꾼 손엔 관심이 없었다.      

 


  내 허튼 얘기를 듣던 학생들 중에는 열악한 조건의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가족을 둔 아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있었을 거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된 노동도 불사하는 부모가 흘리는 땀의 가치를 내가 깔아뭉갰다. 알량한 내 학력이 대단한 특권이라도 되는 듯 굴었다. 나의 노동은 숭고하고, 다른 이의 노동은 과욕이거나 비천하다고 노동의 가치에 계급을 매긴 것이다. 셔츠에 땀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화단을 손질하던 그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아들이다. 일을 마치면, 고달픈 하루를 달래기 위해 소주잔을 기울일지 모른다. 복숭아 한 봉지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곤 조촐한 저녁 밥상을 맞을 지도. 그의 소중한 하루를 지내는 거다.      

 



  일은 분야에 따라 요구되는 자격이 다르다. 일의 종류에 따른 자격일 뿐, 그것이 종사하는 노동자의 가치를 규정하는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 사회는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가치를 규정한다. 노동 시간, 노동 강도, 숙련도, 전문성, 대체 가능성 등이 보수로 드러난다. 여기에 오랫동안 축적된 사회적 관습과 편견이 추가된다. 그 편견이 노동자에게 씌워진다. 몸을 써서 하는 일을 하찮게 여긴 역사가 길다. 물력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세상의 주도권을 움켜쥐고 노동 시스템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농부의 땀이 없다면 입 안으로 쌀 한 톨 들어가지 못함을 알면서, 백정의 피로 물든 손 덕분에 고깃점을 먹으면서, 노동자의 생존을 쥐락펴락 했다.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생계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일상이 ‘돈 벌기’로 채워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일(來日)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조차 아슬아슬하다. 아니, 지금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사선(死線)에서 흔들리며 버티고 있다.       

 


  대형 물류창고에서 여러 차례 큰 사고가 있었다.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였다. 내일을 보장받기 위해 뛰어든 하루벌이가 내일을 앗아갔다. 미디어에선 같은 보도를 반복한다. 

“물류 쪽은 하청, 일용, 특수고용 등 고용구조가 파편화되어 있어 안전조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원청이 안전조치, 보건조치에 대해 직접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

“영국의 ‘기업 살인법’을 모델로 한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은 대형사고 시 경영 책임자와 기업을 처벌하는 법이다. 이제껏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도 사고를 낸 작업자(만약 살아있다면)와 현장 관리자, 부서 책임자 정도에게만 책임을 물었다. 처벌 수위 역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대부분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처벌한다.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법정 형량은 5년 이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이다). 사고 현장에서 물러나 책임까지 지지 않는 경영자가 안전조치와 사고 후 관리 규정에 무슨 신경을 쓰겠는가. 비슷한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고용구조가 파편화’되어 있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일터에 소속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안심하고 일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말을 어렵게 표현한 거다. 그때그때 필요한 노동을 일회용으로 쓰고 버린다는 말이다. 자신이 일회용임을 아는 노동자가 어떤 마음을 지니고 그 일을 해 낼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현장은 살벌할 거다. 빨리 일을 끝내고 돈 받고 다른 일하러 가야 한다. 일주일 후에는 다른 현장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는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중간에 휴지기가 필요한 작업이라 해서 쉬는 동안 임금을 주는 회사는 없다. 오히려 이틀 분량의 일을 하루에 마치도록 주문한다. 여태 별 일 없었으니 밀어붙이라며 작업 공정을 재촉한다. 자본가들의 잇속과 노동자에 대한 경시에서 생겨난 불안한 노동조건-부실 공사, 안전장치 미설치, 작업규정 무시, 사고 시 대처 매뉴얼 부재 등-을 바꾸어야 한다.     

 


  인간이 자랑하는 모든 성과는 육체노동으로 이루어진다. 빼어난 설계를 한다고 저절로 건물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거푸집을 지어 시멘트를 붓거나 타일을 붙이는 일, 계획을 실물이 되게 만드는 건 인간의 땀이다. 전(全) 자동화되었다고 기술한국을 뽐내는 자동차 제조 공정도 마지막에 완전 여부를 가리는 건 인간의 눈과 손이다. 노동을 떠난, 그것도 육체노동을 떠난 삶은 없다. 모두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노동의 가치에 계급을 매기고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의 대가가 노동자의 가치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원론적인 이 말에 대놓고 반박을 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교묘하고 치밀하게 차별이 이루어진다. 내가 가진 것이 나의 가치를 나타내도록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세뇌시키기, 무언가를 더 소유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는 노동시장에 뛰어들게 하기, 가진 것이 적은 이들에게 주변부적 삶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기, 좌절시켜 판단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기… 끝도 없다. 결국엔 소유 능력으로 사람의 등급을 매긴다. 여전히 신분제 사회다.        

  


  우리는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니는 것조차 기를 써야 하는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생계 이상의 것을 그리워하면 ‘사치’로 치부되는 것이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란 자조 섞인 표현은 노동에 대한 가치는 물론, 존재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보도블록을 깔거나, 물류창고 상하차 일은 고된 만큼 존중받아야 한다. 위험한 일은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고 보수가 후해야 한다. 편한 일이 좋은 일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이웃과 사회에 기여하는 일에 대한 평가절하 태도를 바꿔야 한다. 사흘만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도시 전체가 쓰레기통이 된다. 그림자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노동을 인정받는다는 건 자신을 인정받는 것과 같다. 삶이 견딜 만 해 지는 것이다. 즐겁기까지 하면 더 바랄 게 없다.     




   이제야 마음으로 용서를 구한다. 인간의 존엄이니, 노동의 숭고함이니 하며 마치 내 생각인 듯 떠들어 온 것들이 모두 활자로만 얻어들은 죽은 개념이었다. 뇌의 어디쯤에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하다 싶을 때 꺼내 그럴듯하게 나를 포장하는 장신구에 지나지 않았다. 땀 흘리며 온 몸으로 가족과 세상을 지탱하는 부모를 둔 학생 앞에 허영에 가득 차 무례했던 걸 진심으로 사과한다. 지금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아가 있을 그때의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내가 틀렸다고, 잘못 알려줬다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세상을 지탱한다고.     


  쭈그려 앉아 땀으로 얼룩진 등을 모으고 화단을 손질하던 인부들이 일을 끝내고 돌아간 모양이다. 풀 냄새에 그들의 땀 냄새가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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