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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Aug 20. 2020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거나

-「문학하는 마음」-김필균 /<제철소>中 박준 인터뷰를 읽고

 지하철을 타려고 도착정보를 알리는 게시판을 보니 열차 도착까지는 아직 두어 정거장이 남아 있었다. 개찰구 옆 ‘스마트도서관’ 부스를 대충 훑어보다 책 제목에 시선이 멈췄다(책에서 제목의 중요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저자는 낯설었지만(알고 보니 많은 일을 한 분이더군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지갑을 열어 돈을 내고 사는 것도 아니고 빌리는 것이니 아님 말고 하는 심정으로 대출 버튼을 눌러 집어 든 책이었다. 책의 첫인상은 시선을 사로잡는 표지 디자인이 아니었다. 출판사 역시 ‘이런 데도 있었군!’하는 정도. 하긴 요즘 얼마나 많은 출판사가 있는지는 아마 국회도서관 사서라도 정확한 숫자를 모르지 않을까. 하지만 웬 걸! 집으로 돌아와 앉은자리에서 모두 읽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스펙터클 하다거나, 심금을 울리는 전개가 펼쳐지는 내용은 아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나눈 인터뷰집이다. 인터뷰한 인물은 모두 11명이었지만, 낯익은 이름은 두 명 정도... ‘문학하는’ 자리에서 각자의 영역을 지닌 작가들이다(한 명은 일간지 문학부 기자지만, 책을 읽고 관련된 일을 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 역시 ‘문학하는’ 사람이다). 

 


 옷이나 화장품을 사고 나면 돈을 ‘써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할 때가 종종 있지만, 책을 산 뒤에는 마치 적금이라도 가입한 것 같다. 집 안 여기저기 책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함께 사는 식구들에겐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저렇게 책을 많이 읽는데 왜 아직 작가가 아닌 거지?’ 싶은 시선을  느끼는 때도 더러 있다.

 

 내게 책은 ‘옷’이다. 항상 몸과 닿아 있는. 어떤 옷을 입을지는 결정할 수 있지만 입지 않을 수는 없다. 잠을 잘 때조차도(아! 샤워할 때만 빼고). 내게 책은 ‘동굴’이다. 분주한 일상이 지속되는 걸 견디는 힘이 약한 체질이라, 연이어 사람들을 만나거나, 관공서나 대형마트를 찾은 횟수가 일주일에 몇 차례만 되어도 몸보다 마음이 고단해지는데, 이때 최상의 휴식은 책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내게 책은 ‘카운슬러’다. 세상 나이가 적은 건 아니지만, 나이가 있다고 세상사에 익숙해지는 건 아니어서, 여전히 나는 수시로 흔들리고, 실수하며, 영리하게(?) 사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책을 펼친다. 장르가 소설인지, 산문인지, 아니면 역사서나, 과학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안에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때론 분발하게 하는 카운슬러가 있다.

  


「문학하는 마음」은 카운슬러가 필요한 시기에 만난 책이다. 인터뷰이들 모두 과거는 힘들었고, 현재 역시 언제까지나 보장되어 있지는 않은 데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문학을 하고’ 있다. 그 ‘문학’은 종이 위에 인쇄된 활자의 형태로, 또는 무형(연극 같은)의 결과물로 드러나기도 하며,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기사로 펼쳐지기도 한다. ‘문학’의 영역에 대해 나는 얼마나 좁은 시야였는가. 아니다, 인터뷰이의 ‘문학하는’ 분야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게 아니라, 그 각각을 별개로 여겼다. 소설가와 시인, 평론가와 시나리오 작가를. 

  


 책을 읽고 나니 인터뷰이들은 역시 ‘넘사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 비해(비교의 끝은 언제나 참담한 주눅일진대) 온 집 안을 어지럽혀 가며 읽어대는 나의 독서량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이었고, 언어에 대한 바늘 끝 같은 예리함과 그 바늘 끝조차 끊임없이 갈고 다듬는 그들의 집요함은 내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문학으로 ‘먹고 산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문학(책이라 불러도 무관하다)과 무척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한 걸 수도 있겠다는 의심과 함께,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창피했다. 좋아하고 자주 접하면 가까운 사이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인간관계에서도 자신이 느끼는 상대와의 거리가 상대가 느끼는 나와의 거리와 항상 같지는 않은 법이다. 그러니, 책에 대한 나의 애정도 따지고 보면 짝사랑에 불과하다는 현실인식을 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글짓기를 하게 되면 주제나 제목이 주어지곤 했다. 평소에 익숙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생활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아서 원고지 몇 장 이상이라는 조건이 붙기라도 하면 무척 곤혹스러웠다. 첫 장이야 글의 제목과 학년, 반, 이름 따위를 양식에 따라 써넣으면 절반 정도를 채울 수 있으니 괜찮았지만, 세 장 째가 되면 그때부터는 머리를 쥐어짜게 된다. 더 이상 쓸 얘기가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산문 대신 시를 택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몇 단어만 나열해 제출하면 되었으니까. 당연한 결과겠지만, 채워야 하는 원고지 양의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써 내려간 대여섯 줄의 글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아니다,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 하나는 지금 알려진 시인이자 평론가다. 그렇지만 그가 당시에 뛰어난 글쓰기 실력을 발휘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고 싶은 얘기를 그럴싸하게 몇 줄로 줄일 자신이 없었으므로, 글짓기를 할 때마다 중언부언할지언정 ‘시’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시에 대한 내 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거창(?)해졌다. 말하자면, 300쪽 분량의 이야기를 세 줄로 압축하는 시인은 ‘언어의 마스터’라는 식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압축된 세 줄 보다 엉덩이가 저릿해지도록 앉아 300쪽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수 백 쪽 분량의 이야기를 불과 몇 줄로 표현한 시인의 속 이야기를 가늠해보거나, 그 세계로 빨려 들어가기가 버거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시집 한 권이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박준 시인의「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다. 서점에서 시집 한 권(한 편이 아니라)을 에세이 읽듯 다 읽은 건 처음이었다. ‘도대체 누구지? 내가 만난 적이 있는 작간가? 내가 만난 작가라고는 르포 쓰는 동창이 전분데? 뭐지, 이 사람? 우리 집에 cctv라도 달았나?, 아님, 내 휴대폰을 도청 하나?’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시를 이렇게도 쓰는구나!’하는 안도감 비슷한 느낌이 들면서 그동안 지니고 있던 시와의 거리감(물론, 내가 멋대로 그어둔 거지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엄청난 ‘시 충격’을 줬던 시인과의 인터뷰가 이 책에 실려 있었다. 예상보다 앳돼 보이는 사진 속 시인의 모습이 의외였다. 시인이라 하면 무릇, 저 세상 텐션을 뿜 뿜 내뿜으며 구름이라도 잡을 것 같은 분위기를 지녔을 거라 미리 그려두고 있었나 보다. 충격적인 건 또 있었다(이렇게 연거푸 충격을 받고도 내 몸은 산산조각 나지 않았다). ‘나는 뭐지?’였다. 살아온 시간의 길이가 삶의 깊이와 비례하지 않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 젊은 청년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저토록 깊은 사유와 관찰을 하며 삶에 대한 통찰에 이르고자 하는 동안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나는 뭘 하고 있던 거지 하는, 자괴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끄러움 이상의,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내 얄팍한 지적 허영이 여지없이 드러났지만 숨을 곳이 없었다(숨으면 되긴 하고?!). 




  “(중략)... 그런데 시는 그렇지 않잖아요. 시인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때의 시간은 하루에 몇 시간이다, 하고 정해진 물리적인 것보다는 일상 안에서 틈을 내는 정서적인 것에 가까우니까. 물론 저도 가끔(회사에 사표를 내고 싶을 때마다) 적게 벌고 적게 소비하더라도 글만 쓰면서 살까? 하는 상상을 해요.(웃음) 그런데 사실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저는 직관이나 상상력이 그리 발달하지 못한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무엇에 대해 사유하거나 쓰려면 삶이 주는 자극과 경험이 선행되어야 해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혼자 쓰라고 하면 저는 못 써요. 아마 이것은 제가 쓰는 글의 보편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쓴 글은 읽어주시는 대부분의 독자들과 비슷한 양식의 삶을 살아야지요. 아침저녁으로는 출퇴근길에 시달리고 월요일을 싫어하는 대신 금요일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저는 삶의 비루를 계속 느끼면서, 계속 시를 쓸 것 같아요.     

 

제 산문집 제목을 가져오면… 쓴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쓴다고 해서 내 주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현실이 바뀌는 것은 전혀 아닌데, 그래도 쓰면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바뀌는 것 같아요. 왜 여전히 쓰고 있느냐 생각하면, 외부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내부에서 외부를 보는 시각이 바뀌기 때문인 거죠. 그게 쓰는 행위의  첫 번째 목적일 테고요. 대중적으로 잘 되지 않아도, 예술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펼치지 않아도 이 첫 번째 목적만 이루는 게 어디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시인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었어도 결국에는 문학 비슷한 걸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삶이어도 첫 번째 목적은 이루어지는 거죠. 쓰는 사람의 정체성으로 세상을 볼 때 조금 다른 것들이 있을 테고.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학하는 마음」中 시인 박준의 인터뷰에서     

 



 알고 지내던 선생님께서, 제자들이 너나없이 대학 진학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모습에 슬픈 표정으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얘들아, 모두 대학을 가야 하는 건 아니란다. 세상에 온통 대학생만 있다면, 그게 좋은 세상이겠니? 여러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서로 어우러져야 멋진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되는 거야!” 그분은 너무 이상적인(?) 말씀만 하셔서인지 학교 관리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셨다. 당신 스스로 평교사이길 원하기도 했지만.  

 


 책에서 인터뷰한 분야 이외에도 문학에는 더 많은 영역이 있다(있을 것이다). 모두 시인이 될 필요는 없지만, ‘시적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모두 소설가가 될 수는 없지만, ‘자기만의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한글 프로그램에 입력된 글을 ‘출판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고, 문학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구상’을 하려는 마음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온 집안에 책을 늘어놓고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 내가 쉼 없이 단 번에 책을 읽어내려 간 건 혹시 독자로서 만나는 문학이 아닌, 문학 ‘하는’ 그 안을 기웃거리고 싶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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