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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Aug 24. 2020

공실(空室)

  엄마가 돌아가신 두 달이 지났다. 쓰시던 세간을 처분하고 사시던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해약 절차를 밟느라 연휴 사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에어컨이나 김치 냉장고, 가스레인지 같은 가전제품이 새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동생과 필요한 것들을 나누었다. 엄마 혼자 살림으로는 모두 과하다 싶은 크기였다. 지난겨울에 들렸을 때, 지나가듯 말씀하셨다.

 “얘, 나 죽거든 저 김치냉장고 네가 가져다 쓰렴. 너희 김치냉장고 없잖아!”

대답이랍시고 쥐어박듯 뱉어낸 말이,

 “엄마, 제발 그 ‘나 죽거든’이란 말씀 좀 그만 하세요!”

왜 그따위로 밖에 못했을까.

 “알았어, 엄마. 그럴 테니 그동안 엄마가 열심히, 깨끗하게 쓰세요.”

했더라면, 덜 서운하셨을 텐데….     

 뽀얗게 삶아 차곡차곡 개켜 넣어둔 속옷들을 비닐봉지에 담으면서,

‘이렇게 애쓰고 지내셨구나.’ 혼잣말을 했다.

우리 집 빨래 건조대에 걸린 누런 속옷을 보시며 나의 게으름을 나무라시기라도 할라치면, 

 “엄마, 나는 그런 거 할 시간에 책을 하나라도 더 읽고 싶다구요!”

하며 되받아 치곤 했다.

여전히 우리 식구들 속옷은 이따금씩 하얘지지만, 그 지청구가 그리울 줄은 몰랐다.




 화장대 위엔 작은 샘플 병들이 늘어서 있고, 제대로 된 스킨, 로션은 개봉도 안 한 새것인 채로 남아있었다. 요양원에 머물던 시간의 두께만큼 먼지가 소복했다. 침대 머리맡에 성경책과 돋보기, 태블릿이 나란하다. 돋보기를 써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교회에 하소연을 했더니, 

“이걸로 들으면 된다고 주더라!”

하시며 태블릿의 기능에 신기해하셨다. 이제 그분이 살아생전 의지하셨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 당신의 평생을 넋두리하느라 바쁘시겠지.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태는 어떤 건지, 아무 때고 책을 펼치는 나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세간들과 폐기해야 하는 것들을 나눴다. 망자의 유품은 태우던 풍속을 따르는 것이 금지되어 영정()과 신위(神位)를 스테인리스 들통에 넣어 태우는 걸로 대신했다.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하던 엄마의 장롱에 가득한 옷들을 모아 의류 수거업자에게 넘겼다. 무게로 값을 치르는데 수출 길이 막혀 단가가 싸졌다며, 그가 건넨 액수는 오천 원이었다. 벼르고 벼르다 하나 씩 장만했을 엄마의 옷들이었다. 엄마의 체취가 밴 그것들이 ‘오천 원’이 되어 손바닥 위에 얹혔다. 내 장롱의 옷들은 얼마로 남을까. TV 위에 걸려 있던 가족사진을 가져가려는지 동생에게 물었더니 동생 댁이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저희들 안방에 사돈댁 가족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걸 알고 있던 터라 좀 괘씸했다. 동생이 가져가겠다며 집어 들자 동생 댁이 마지못해 하는 걸 보곤 다시 괘씸했다. 정리는 세 시간쯤 걸렸다. 그 정도 시간이면 살던 흔적이 사라지는 거였다.      

 



 엄마는 그 집에서 십사 년을 살았다. 며느리와 맘이 맞지 않아 분가를 단행하신 거였다. 살 집을 계약하고 와서는 돈이 부족하다며 하소연을 하셨다. 여유 돈이 없어 아파트 담보 대출을 늘려 마련해 드렸다. 세간까지 채워 드리다보니 할부금 갚느라 내 살림이 한동안 팍팍했다. 그렇게 마련해드린 가재도구를 지난 한 두 해 사이 모두 새 것으로 바꾸셨고, 그것들 중 몇 가지가 이제 내게로 왔다. 인간사의 흐름을 관장(管掌)하는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지나고 나서야 눈치채게 되는.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보증금 반환 신청을 했다. 많지 않은 액수임에도 상속에 해당하는 거라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많았다. 서류를 작성하던 테이블 위에 탁상달력이 있었다. 무심코 다음 달로 넘기는데, 엄마의 생신이 있는 달이었다. 날짜가 더 크게 보였다. 날짜가 보이면 뭐하나, 이젠 생신 상을 차려 드릴 수도 없는데…. 엄마는 잡채를 좋아하셨다. 드시기 만만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잡채 자체보다 잡채 만드느라 분주한 자손들 보는 게 더 좋으셨을지도 모르겠다. 동생에게 생신 가까운 주말에 추모공원에 다녀오자 하니 그러자 한다. 


 퇴거 확인을 하던 관리소 직원은 가장 먼저 현관 도어록 비밀번호를 바꿨다. 아무 때고 식구들 모두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고 들어서던, 엄마 냄새가 폴폴 나던 집에 이젠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이제 공실 처리됐습니다. 임대보증금은 며칠 내로 입금될 겁니다.”

관리소 직원의 안내를 뒤로 들으며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장마가 끝나니 기다렸다는 듯 찜통더위가 세상을 장악한 모양이었다. 사방이 지글지글 뜨거웠다. 뙤약볕 아래 선채 동생은 담배를 피워 물고, 남편은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십사 년을 드나들던, 종종 성가셔하던 나는 새삼스레 단지 안 여기저기에 눈길을 보낸다. 이제 여기 올 일은 없겠구나. 엄마는 아는 이 하나 없던 이곳에서 생을 마무리하셨구나. 살아있는 세상 어디에도 엄마의 자리는 없다. 작은 항아리에 담겨 인적 드문 산자락, 망자(亡者)의 아파트로 옮겨 가셨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동생은 연거푸 소주잔을 비웠다. 나 역시 평소보다 많이 맥주잔을 기울였다. 그러고 싶은, 그럴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엄마와 헤어지는 일은 태어나서 한 번 밖에 할 수 없으므로, 짐작할 수 없다. 들어오는 모든 감정을 그저 끌어안을 뿐. 길 없는 벌판에 우두커니 서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망연히 앞을 바라만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몸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삼키느라 목울대가 뻑뻑했다. '슬픔은 사랑의 대가'라던데, 사랑이었나. 엄마와의 작별은 임종 때가 아니다. 사망 신고서를 쓰면서, 세간을 처분하면서, 내 공간으로 옮겨진 유품을 보면서, 반찬가게에 진열된 잡채 접시를 보면서, 삶아서 뽀얘진 속옷을 널면서, 김치냉장고 뚜껑을 열면서…. 아주 여러 번, 오랫동안, 조금씩 작별이 이어진다. 내 안에도 채울 수 없는 공실(空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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