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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Aug 31. 2020

이룰 수도 있었던 달력의 꿈

어떤 식으로든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중 첫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아니야!’를 반복하며 노란색만 봐도 고개를 돌렸다. 모르는 체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이럴 수는 없다는 고개 저음에 현기증이 났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 기록단>으로 활동한 지인이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 기록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건넸다. 이 책은 아직 책장에 꽂혀있다. 나는 그 참사(慘死)를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그런 책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으므로, 읽을 수 없었다. 

     

 기록단으로 활동한 지인은 오랫동안 불면증과 소화불량, 불안과 빈혈 같은 증상으로 힘들어했다. 나는 그의 용기와 대범함에 주눅이 들어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이따금 전화 너머로 고통과 슬픔을 토로하는 목소리라도 들을라치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떨어뜨리거나 움켜쥐는 바람에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단식농성을 하는 유가족 앞에서 치킨이나 피자 따위를 늘어놓고 폭식 퍼포먼스를 하는 자들을 보며 인간이 저렇게까지 밑바닥일 수 있구나 실감했다. 작가 정혜윤은 ‘타인의 아픔을 조롱하기까지 하는 것은, 타인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도 빈약하기 짝이 없을 때 벌어진다.’고 했다.     

 

 자식을 잃는다는 건 내 몸뚱이가 사라지는 거다. 분명히 목숨은 붙어있는데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다. 냄새도 맡을 수 없고 손에 닿는 것들에게서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먹을 수도 없다. 잠들 수도 없고, 잠에서 깨어나지지도 않는다. 나는 있으되 내가 없는 상태가 돼버린다. 게다가 그 몸이 치명적인 병에 시달려 왔다거나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살 수 있었음에도 죽음을 향해가는 매 순간을 눈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방치와 무책임’의 결과라면…. 나 스스로에게 조차 설명할 수 없어 고개를 꺾은 채 땅만 보고 살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 땅은 언제 어떻게 죽음을 강요당할지 알 수 없는 지옥이었다. 2014년 봄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불쑥 나타나 요구했다. 

“부정하거나 거부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냐! 똑바로 봐!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통과해야 해!”

책을 읽다 ‘세월호 달력’에 대한 이야기를 만났다. 그 이야기가 결국 나를 책상 앞에 앉혔다. 달력엔 바다에 묻힌 이들의 생일과 그들의 ‘꿈’이 적혀 있었다. 살아 있다면 해마다 기쁘게 맞이하게 될 날이었고, 이 땅에 피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해 줄 꿈들이었다.      

 


                                                                            :

                                                                           

 1월 17일. 사람들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ADHD밴드 리더 박수현 

    

 3월 1일. 아버지의 휴대폰에 ‘내 심장’이라고 저장된 4대 독자, 작사 작곡을 잘하는 남현철    

 

 5월 5일. 약자가 배려받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관이 되길 소망하는 홍종영     


 7월 1일. 조향사가 되어 첫 번째 향수는 언니를 위해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해맑게 잘 웃는 배향매    

 

 7월 4일. 우리 애기들 살려야 해요. 마지막까지 학생들 생각을 먼저 한 전수영 선생님


 7월 22일.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할아버지 할머니 드시라고 붕어빵을 사 들고 오는 눈이 맑고 예쁜 박정슬

     

 7월 25일. 아버지께 물려받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카메라 감독을 꿈꾸는 한고운    

 

 8월 22일.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좋아서 구두 디자이너가 되길 소망한 박예슬  

   

 8월 25일. 모든 생명이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수의학과에 가고 싶은 장혜원


 9월 23일. 덩치가 큰데도 애교가 많아 아버지와 같이 사우나에 가서 등을 밀어주는 나강민

     

 10월 6일. 아버지의 전부,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으로 아버지 친구 분들께 삼겹살을 대접한 효녀 김소연  

     

 10월 15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시작한 일은 언제나 끝까지 열심히 하는 아이, 뮤지컬 배우가 꿈인 유예은     

 10월 29일. 어머니와 밤새 속닥속닥 수다 떠는 딸, 중국어를 좋아해서 중국어 번역 일을 하는 것이 꿈인 황지현                                                                                      :

                                                                                        



  나는 ‘부정(否定)’이라기 보단 ‘직시(直視)’를 거부하는 태도였다. 그 해 4월 이후의 봄은 이전의 봄과 같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랬다. ‘세’ 자만 들어도 먹던 밥이 목에 걸리고, 겨울바람을 마주한 듯 눈이 시렸다. 배낭 지퍼 고리에 리본을 달고 다니면서도 광화문에 세워진 분향소엔 가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될지 무서웠다. 살만한 세상, 가진 것과 상관없이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도록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지금은 내 앞가림에 급급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걸 실토해야 하므로. 퇴색한 인생보다 더 끔찍한 건 ‘가치’를 잃은 삶을 이어가고 있는 ‘나’를 보는 일이었다.

 

 달력에 적힌 내용을 옮기며 다시 그들의 꿈을 읽는다. 몸을 죽이는 것 못지않게 지독한 건 ‘꿈’을 죽이는 일이다. 우리는 그들의 ‘꿈’을 죽였다. 누군가의 ‘심장’을 떼어내 버렸다. 죽인 자들의 무리엔 나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 그 또렷한 사실을 마주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날의 참사(慘死)는 참사(慘事)였고, 참사(慘史)가 되었다. 화인(火印)이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상처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세상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게 되었으므로 할 일이 생겼다. 꿈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 그들은 돌아올 수 없지만 나에게 가치 있는 삶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알려 줬다. 또 다른 향매와 정슬, 소현이와 지현이의 꿈이 열리는 세상. 먼저, 책장 앞으로 다가가 노란 리본 책을 꺼내야겠지. 꿈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겠… 지. 언제쯤 이 ‘울컥’이 잦아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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