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집 구조를 설계할 수 있었다면, 다르게 했을 겁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20년도 더 지난 낡은 아파트로, 새로 짓는 아파트와는 건물의 배열 방식부터 다릅니다. 신축 아파트는 대지를 최대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멀리서 바라만 봐도 느껴집니다. 내부 구조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외관만큼이나 촘촘히, 효율적(?)으로 공간을 구분해 두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그에 비해 예전의 아파트는 건물이 대부분 일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집안은 거실이 중심이 되어, 그 양 편 혹은 한 편으로 방이 자리하는데, 하루 중 햇볕을 받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남향집을 좋은 집으로 여겼습니다(집의 방향에 대한 선호는 새 아파트도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집의 크기에 따라 방의 개수가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거실이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지요. 지금 사는 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집에 살고 있는 저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외출을 하지 않는 편이라, 하루의 동선이라 해봐야 자는 시간 말고는 내내 집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수준입니다(CCTV로 녹화한 뒤 고속으로 재생해보면 다람쥐 쳇바퀴의 ‘인간 편’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거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소파가 있기는 하지만, 바닥에 앉는 게 더 편해서 탁자 위에 온갖 저의 물건(책과 노트는 물론, 필기구에 안경이며, 머그컵, 스케치북에 이르기까지)을 늘어놓고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식구들도 그런 저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지라, 거실에 제 모습이 보이지 않기라도 하면,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며 저를 찾곤 했지요(아, 뭐 그렇다고 집이 고대광실마냥 넓은 건 아니고요).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이런 상황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실 탁자 위에 흐트러져 있는 제 물건들이 왠지 고향 잃은 방랑자처럼 보이는가 하면, 식구들이 모여 야식이라도 먹을라치면 수북이 쌓여 있던 제 것(?)들은 임시 도피처를 찾아 쓸려나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어쩐지 제가 밀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요. 한 집 사는 베프에게 책상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목수는 아니지만, 목수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한 번 시도해 보라고 부추기면서 말입니다.
재단된 원목과 공구 따위가 택배로 실려 오기 시작하고, 며칠 동안 베란다에서 ‘목공소’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책상이 완성되었습니다. 투박하지만 더없이 튼튼해 보이고 따뜻한 느낌의 원목 책상입니다. 한쪽 벽을 차지한 옷장과 침구가 전부였던 안방에 책상을 들였습니다. 베란다로 쫓겨나 있던 책장을 옆에 세우고 보니 완벽한 저만의 서재입니다. 책상 왼 편에 붉은 갓 스탠드 램프를 얹고, 거실에서의 망명 생활을 마친 물건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곤 식탁과 한 몸이었던 의자 하나를 빼내어 책상 앞에 두었습니다(어차피 식탁의자가 만석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해보기 전엔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원래 있던 말인지 모르지만,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걸... ‘나'만의 책상을 머릿속에서만 오랜 시간 넣어두고 있었던 겁니다. 살면서 갖게 된 두 번째 ‘내 책상’입니다. 만혼으로 늦은 나이에 저를 낳으신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가장 먼저 책상을 사주셨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신식 스타일로, 소재는 모르겠지만 색깔과 느낌은 아직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 후로 우리 집이 연이어 내리막길을 걷는 바람에 제 방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책상은 어느 틈엔가 없어져 버렸고요. 그리고 이제야 나만의 책상이 생겼으니, 무척 좋았습니다. 그까짓 책상 하나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물건이란 누구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두 제각각이 아닐까요. 나만의 책상이 있다는 건,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가족 안에서 느끼는 편안함 못지않게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제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망명을 끝낸 제 물건들이 책상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편안해 보입니다. 저는 그들과 아무 때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거실 탁자 앞에서 뭔가 하고 있을 때 식구들이 오가면 집중할 수가 없어서 난감했는데, 이제는 제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방문을 조용히 닫아주기까지 합니다. 이따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게 지겹지도 않냐?”며 놀리기도 합니다. 웬걸요.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제 책상이 생긴 것에 그치지 않고, 제 공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집의 쓰임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거실에 마음이 가닿았습니다. 상주(?)하던 식구가 사라지자, 거실은 말 그대로 공간(空間)이 되었습니다. 식구들이 각자 자기 방에 콕 박혀 있다가 ‘밥때’나 되어야 모이는, 차지한 크기에 비해 하는 일은 별로 없는, 비효율적인 장소로 전락한 것입니다. 온기 없이 썰렁한, 불도 잘 들지 않는 시골집 뒷방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은 모양이 바뀝니다.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거나, 비혼(非婚)인 이들은 크게 달라지는 게 없지 않을까 짐작합니다만, 아이가 생기면 그 변화가 눈에 띕니다. 아이에게 물리적 돌봄이 필요한 시기엔 집이, 특히 거실이 아이의 공간이지요. 작은 방 두 칸짜리 다세대주택에 살다 아파트로 이사한 뒤 가장 신났던 건, 아이의 보행기가 거실에서 쌩쌩 오갈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TV가 켜져 있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어린이 오락방송과 만화, 저녁뉴스에 이르도록. 거실 활황기인 셈입니다. 그러다 ‘입시’라는 말이 식구들 입에 오르내리는 시기가 되면, 가장 먼저 후퇴하는 건 TV입니다. 저는 헬리콥터 엄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목형 엄마도 아니면서, 공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며 TV 켜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니 그게 꼭 잘한 짓(?) 같진 않더라고요.
이러저러한 가족의 시간을 지나온 우리 집 거실은 지금 ‘안식년’에 들었습니다. 오랜동안 우리 가족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주던 쓰임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르는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방 책상 앞에서 고개 숙인 채 시간을 보내다 문득 거실로 나오면,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왕복 달리기를 하고, 탁자 둘레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닭다리를 차지하려 손을 뻗치는 모습이 겹칩니다. 거실은 전부 봤겠지요,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그리고 여전히 그 시간을 품고 있겠지요. 언제라도 식구들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둘러앉아 북적일 때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집 구조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맘에 안 들면 이사 가라 하지 마세요, 이사가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앗, 그러고 보니 구조 변경은 더 어려울 듯합니다만) 방을 조금 더 키우고 거실 크기는 탄력적일 수 있도록 바꿔보고 싶습니다. 벽의 위치를 바꿀 수 있다는 아파트 분양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나 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는 곳을 옮기는 일은 방석을 바꿔 앉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므로, 가변식 벽 구조의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 또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 사는 동안 얻은 ‘작은’ 내 책상 앞에서 ‘큰’ 일을 하는 걸 겁니다. 부지런히 책을 읽어 마음을 넓히고, 글을 쓰며 자신을 알아 가겠습니다. 틈틈이 붓을 들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으면서요. 덧붙여, 안식년에 든 거실을 살살 달래 가족의 시간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야겠습니다. 매일 밤, 야식을 만들까요? 아님, 거실 당번(?)이라도 정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