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쭉 출판사만 다니다가 프리랜서 편집자로 십수 년을 살아왔다. 갑자기 나는 진로를 간호조무사로 바꾸고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 직업을 바꾸게 된 계기는 여럿 있었다. 우선 내가 사는 곳에 출판사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점, 프리랜서 월수입이 일정치 않아 생활이 힘들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이혼 후 딸을 전남편에게 보냈기 때문에, 최대한 딸과 가까운 곳으로 가서 직장 생활을 하려면 언제 어디서든 취업이 잘되는 직종으로 바꿔야만 했다. 그래서 찾다 찾다 발견한 게 바로 간호조무사였다. 뭐, 간호조무사 취업 잘된다는 말 옛말이라는 썰이 있긴 하지만 구인구직란을 찾아보면 아직도 많아서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감정노동도 심하고 태움도 있어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건 일하기 나름이라고 느낀다. 좋은 사람들이 있는 좋은 곳으로 가고야 싶지만 그렇지 않아도 뭐, 다닐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각오는 어느 정도 했다. 힘든 일일 거라고. 맨날 천날 보던 게 글밖에 없는데 갑자기 간호조무사라니, 지인들이 놀랐다. 너가 할 수 있겠어?라는 말부터 그거 힘들다던데, 너랑 안 맞을 것 같은데...라는 걱정까지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응! 할 수 있어!'.
지난 9월 24일, 이론 수업 3주를 끝내고 10월 14일부터 본격 병원 실습에 들어갔다. 그런데 병동 간호사실 분위기가 소위 말해 개난장판이었다. 수간호사 성질은 더럽고, 다들 뻣뻣해서 스몰토크도 안 하고, 핸드폰 한 번 안 들여다보고 일만 하는 분위기. 말을 시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깐깐하고 싸가지 없게 대하는 태도, 환자들의 아우성, 피, 똥, 욕창 냄새 등등.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지만 사람이 제일 어려웠다. 수간호사가 주도하는 간호사실의 분위기는 정말 굳어 있었다. 다들 한 마디도 안 했다. 어느 날은 혈압 낮은 걸 보고하지 않고 바로 입력했다고 간호사실이 떠나가도록 혼이 나기도 했다. 아니, 입력을 했으면 자기들이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지 사람을 그렇게 잡나? 나는 그날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실습생들끼리의 분위기도 별로였다. 한 실습생이 일이 힘들다며 도중에 울면서 학원 원장한테 전화하고 응급실 팀장한테 전화해서 2주 동안 네 번이나 실습생 소집이 있었다. 분위기를 흐렸던 그 실습생은 나하고도 한번 이슈가 있었어서 난 도저히 이 병원에서 실습을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바로 그날 학원 원장에게 다른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보고하고 내리 3일을 결석했다. 돈도 안 받고 하는 실습생에게 이따위로 대우해 주는 병원은 안 봐도 비디오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실습처를 바꾸게 되었다.
옮긴 병원은 정말 좋았다. 간호사실 분위기가 일단 편했다. 다들 스몰토크도 하고, 음식도 나눠 먹고, 작은 걸 해도 고마워해 주는 사람들. 개인적으로 봤을 때 다들 좋은 사람들인 건 모르겠으나 그냥 직장 동료로서는 정말 일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밥 시간, 퇴근 시간도 정확히 지켜주었으며 내가 '실습생'이라는 위치에 있다는 걸 항상 잊지 않고 뭐든지 가르쳐 주려고 하셨다. 일은 지루하고 힘들어도 사람들 속에 왔다 갔다 하면서 움직이면 내가 뭔가 '하고 있다' 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나중에 일을 더 배워서 이곳에서 실제로 일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옮긴 병원에서 계시던 실습생 한 분은 국비에서 일반으로 전환하게 되어 이제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다. 이제 이 병원에서 실습생은 나 혼자다. 응급실 팀장님이 어제 퇴근하는데 '혼자 하는데 힘들지 않겠어요?' 하고 물어봐 주셨다. 그런 사소한 것도 고마웠다. 옮기길 잘한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더 시달리기 전에 빨리 판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엄마는 내가 옮긴다니까 한 군데서 진득하니 못한다고 그래서 일이나 하겠냐고 잔소리부터 했지만, 나는 그냥 무시했다)
나는 병동에서 일한다. 병동 환자들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툭하면 아프다고 진통제 놔달라는 환자, 몸이 이상하다고 계속 까탈스럽게 굴면서 계속 간호사실 왔다 갔다 거리면서 신경 긁는 환자, 실습생이라고 무시하는 환자(같이 계시던 실습생은 '아, 여기서 제일 하빠리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도와 달라고 보채는 간병인, 정맥 주사 놓는다고 우는 아이들, 그리고... 돌아가시는 사람들. 내가 병원을 옮기고 나서 총 다섯 분이 돌아가셨다. 기분이 이상했다. 어제까지 멀쩡히 혈압을 재고 인사까지 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던 한 분이 제일 놀라웠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서 급사하셨다고. 아무리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형색의 환자들이라고 해도 다음 날 가서 막상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안 좋다. 아, 그분... 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게 된다. 어느 날은 시신이 방치되어 있는 걸 봤다. 뻣뻣한 다리가 침상 위에 올라와 있었는데, 낡은 양말이 신겨져 있는 채로 누워 계셨다. 곧 장의사가 오고 시신을 수습해 내려갔다. 흰 천에 쌓인 시신이 카 위에서 덜덜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을 나는 묵묵히 지켜봤다. 간호사실은 그대로 돌아갔다. 사람이 몇 명씩 죽어나가도...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또 살아서 아픈 사람들을 돌보느라 간호사 선생님들은 정신이 없었다. 나도 점점 무뎌지는 것 같았다.
병동에서, 아니 병원에서 하루종일 있다 보면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는 내가 가끔 신기할 때가 있다. 아, 나 이렇게 아픈 곳 없이 건강히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비록 조울증이라는 지병 때문에 약을 먹고 조절은 하고 있지만, 신체적으로 어딘가 불구라든가 부러졌다든가 염증이 생겼다든가 하는 건 아니니까. 물리적으로 아프진 않으니까. 출근하고 퇴근까지 총 세 번 바이탈(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측정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하러 가는데, 문득 내 혈압도 궁금해서 한번 재봤더니 완전 정상이었다. 지난 주에는 주사 앰플을 까다가 손을 다쳤는데, 간호사실은 간호사실이더라. 바로 베타딘이라는 약물로 소독하고 메디폼으로 감아서 처치해 주던. 고마웠다. 중간에 기침 감기와 피부 발진으로 내과를 방문했었는데 두 번 다 엉덩이 주사를 맞았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아프니까 병원 가기도 편하다. 바이탈을 돌면서 먹을 것을 많이 선물받는데, 그중에서 가장 감동이었던 게 바로 닭강정이었다. 어떤 병동에 약사 할아버지가 입원하셨는데 대뜸 날더러 닭강정 두 박스만 주문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난 배민으로 접속해 바로 그 자리에서 시켜드렸다. 근데 간호사실로 한 박스가 들어왔다. 그 할아버지가 간호사 선생님들 드시라고 두 박스를 시킨 것이었다. 닭강정을 먹고 있는데 약사 할아버지가 간호사실로 들어오면서 '아니, 왜 배달료를 미리 냈어요, 아이구 참' 하면서 돈을 주셨다. 할아버지가 무슨 배민을 알겠는가.(웃음) 나는 돈을 받으면서 닭강정 잘 먹었어요, 할아버지~ 하고 인사했다. 닭강정 외에도 롤케이크, 떡, 옥수수, 과일, 쿠키, 건강 음료, 우유, 커피 등이 들어온다. 전에 실습하던 병원에서는 턱도 없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음식이 들어오면 선생님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앉아서 같이 나눠 먹는다. 난 왠지 그 분위기가 크리스마스 연휴 같다고 생각되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 나중에 실습을 끝내고 자격증을 딴 뒤에 실제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
어제는 혈변을 계속 누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대장내시경을 갔었다. 할머니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시면서 훌쩍거렸다. 많이 힘들죠, 아이고, 하면서 누워있는 할아버지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는 손길에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분은 진폐(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걸려 오는 폐병) 환자로 입원한 지 십몇 년이 되었는데, 최근에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고 들었다. 항상 아침에 출근하면 할아버지의 보호자인 할머니는 내게 반갑게 인사했다. 혈압을 재고 나오면 돌아오는 '수고했어요' 한마디가 힘이 되었다. 매일 웃상이던 할머니가 어제는 그렇게 풀이 죽어서 눈물을 흘리는데 마음이 굉장이 안 좋았다. 간호사실 선생님들이 수군댔다. 506호 할아버지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준비하고 계세요. 내과 과장님도 알고 계세요... 하는 말들. 잘은 모르지만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 저렇게 깨끗하고 단정한 사람들인데, 저렇게 차분하고 세상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몹쓸 병에 걸려서 십몇 년을 병원 생활하면서 고생하는 게 참으로 안타까웠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도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한다. 혈변이 멈추고 건강이 나아지셔서 활기를 되찾으셨으면 좋겠다. 사람 나고 죽는 건 하늘의 소관이라지만... 조금의 생이라도 더 허락해 주시길.
이제 조금 적응은 되었지만 여전히 실습 나가는 건 힘들고 부담스럽다. 얼른 시험 쳐서 자격증 따고 일이나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 아마 느리게 흐를 거다, 실습 내내. 지금 현재 간호조무사 실습을 하고 있거나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여, 다들 화이팅. 나이 사십에, 완전 다른 직종에 도전하는 이런 여자도 있습니다. 당연히 잘해 낼 거고요. 앞으로 수많은 환자와 의사, 간호사들을 볼 테고 또 다른 죽음도 목도하게 되겠지. 나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는 거다. 그래, 나는 간호인이다, 이제. 편집자가 아니라. 물론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즐겨 듣겠지만 내가 하는 일은 확연히 달라질 거다. 누구는 간호조무사를 3D 직종이라고 하고, 그거 할 바에야 대학에 가서 학위 딴 다음 간호사를 하는 게 낫지 하는 말들도 듣는다. 하지만 난 간호조무사에 만족하고 이 직업이 좋다. 그냥, 조울증이 있는 나도 뭔가 해볼 수 있는 도전 거리가 있다는 자체가 좋다. 열심히 해서 꼭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일을 시작하고, 딸이 있는 곳에 가서 일을 구해서 살아야지. 그래야지. 그게 내 꿈이다. 아, 내게 간호조무사 일을 추천해 준 내 좋은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친구야, 네 덕분에 나 새 길을 찾은 것 같아. 잘해 볼게.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