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02
“여기 마을 이름들은 누가 지은 거야?"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약 부작용으로 가만히 두지 못하는 두 다리를 흔들흔들. 구겨진 종이처럼 비스듬하게 앉아있지만 얼굴만큼은 평온하다. 오빠 차를 타고 엄마 아빠가 사는 청암을 나와 산소, 예당을 거쳐 보성읍으로 가는 길이다. 오랜만이다. 엄마의 웃는 얼굴. 나는 팔을 뻗어 엄마 자리 쪽 차창을 열어줬다. 예쁜 이름에 어울리는 예당의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누가 짓긴 누가 지어. 옛날 동네 사람들이 지었겠지.”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아빠가 말했다.
“예당, 산소, 청암…. 진짜 예뻐. …. 수지야, 나 손 좀 주물러줘.”
왼손을 내 허벅지 위로 툭 던지며,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손을 잡았다.
“손이 이렇게 차서 어떡해.”
“내 손은 언제나 차. 발도 늘 시리고.”
“치….”
내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마다 엄마의 손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엄마.”
내가 말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더 꾸욱 꾸욱 눌러 내렸다. 엄마라는 말에 담긴 무게와 깊이만큼, 꾸욱, 꾸욱.
“왜.”
엄마의 되물음이 뚝, 공기 속에 묵직하게 떨어졌다.
지금이다. 지금 말해야 한다.
용기가 나지 않을 거다. 자동차 엔진 소리, 차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말소리가 묻히는 지금이 아니면. 하지만 나는 대답을 미룬다. 엄마의 손을 펼쳐 손바닥을 쓰다듬는다. 내가 이렇게 엄마 손을 만지고 있으면, 엄마의 손이 내가 하려는 말을 다 알아채 주었으면. 난 이기적이 될 거라는, 나를 위해 살 거라는, 나의 말을. 엄마의 손. 길고 예뻤던. 이제는 오그라져버린. 다 늙어버린 손. 그리고 엄마의 얼굴. 지워지지 않는 깊은 주름들이 자리한 지 오래된 엄마의 얼굴. 그 얼굴을 하고, 그 손을 하고, 엄마는 말한다. 내 인생은 고통이야. 모든 게 후회스러워. 한 번도 잘 살아 본 일이 없어. 병이 나고부터 엄마가 입에 자주 담는 말들이다. 그런 엄마가 오늘은 다른 결의 말을 한다. 예쁜 이름을 가진 보성의 마을들 덕일까. 엄마가 예쁜 말 한마디만 더 해주면 용기가 날 텐데. 바람이 참 부드럽다거나, 바다가 참 멋지다거나, 저녁에는 맛있는 걸 먹자거나….
“엄마 나…. 팔월말에 국토종단 가려고. 삼 개월 정도 걸릴 거야.”
말을 뱉었다. 엄마의 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차 안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슬쩍 앞을 봤다. 조수석에 앉은 아빠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익숙한 보성 읍내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아빠는 내 말을 들었을까.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빠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 하고 꼭 한 번을 더 묻는다. 이번에도 듣지 못했겠지. 그럼 다시 말해야 하는데. 그건 어려운 일인데.
침묵 속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모래가 잔뜩 뭍은 돌멩이 하나를 삼킨 듯 목이 칼칼하다. 침을 아무리 삼켜봤자 내가 해 버린 말을 집어삼켜버릴 순 없겠지. 어제 서울에서 보성으로 오던 버스 안에서, 버스와 함께 덜컹거리며 나를 울렁대게 했던 말.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말.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떠올려 본 아주 오래전부터, 이 말은 내 속에서 자라고 자라 자꾸만 나를 불편하게 했다. 엄마의 얼굴을 보며, 아빠의 얼굴을 보며.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약간의 설렘과 약간의 슬픔이 함께 묻어나던, 오래된 감정.
그 말. 오래되어 곪아버린 그 말이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가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서울로 올라갔을 거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밤, 그가 나를 보챘다. 이번에는 꼭 말하고 와. 지난번에도 말한다고 해 놓고 그냥 왔잖아. 이제 두 달 밖에 안 남았어. 빨리 말씀드리는 게 너희 부모님에게도 예의야. 나는 울상이 됐다. 못 하겠어. 엄마가 안된다고 하면 어떡해. 너희 엄마가 안된다고 할 이유가 뭐야? 네 나이가 서른 하나인데 엄마가 된다 안된다 하시는 것도 이상한 거 아니야? 그리고 너, 엄마가 안된다고 하면 안 갈 거야? 이미 가기로 결정을 내린 이 상황에? 그럼 나는 어쩌고?
“…. 회사는? 또 그만둬?”
엄마가 물음. 머릿속에서 따지던 그의 목소리가 잠시 잠잠해졌다.
“…. 회사가 뭐 별거야. 대단한 직장도 아닌데.”
액체처럼 무거워진 공기 속에 묵묵히 앉아, 엄마가 대꾸할 말들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절대 안 돼,라고 하면 어쩌지. 넌 무슨 애가 그렇게 속아지가 없어? 해도 해도 너무하지,라고 하면 어쩌나. 회사가 장난이야? 맨날 그렇다 다녔다 그만뒀다 하면 누가 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데? 네 남편이라는 놈은 또 뭐냐. 둘이 아주 똑같아. 생각이라는 게 없어. 애야 애. 몸만 다 컸지 애라고. 너 그렇게 가버리는 거, 도망이야.
“미쳤어….”
엄마가 말했다. 목 뒤로 시린 기운이 스쳤다. 다행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반응이라. 아니, 다행인 거 맞나. 나는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더 꼭 쥐었다. 구멍가게, 트랙터, 나무, 잡초 같은 풍경들이 차창을 스쳐갔다. 엄마도 알고 있겠지. 나는 조금 더 멀어질 거라는 거. 앞으로 점점 더 멀리, 멀리. 엄마 나 미국 가려고. 엄마 나 외국인인 이 아이랑 결혼하려고. 엄마 나 오랫동안 여행하고 오려고.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엄마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던 내가, 이번에도 나와 엄마 사이의 자잘한 끈을 몇 개 더 끊어버리고, 한 뼘 더 불쑥 멀어질 거라는 거. 이번에는 삼 개월, 다음에는 육 개월, 그렇게 멀어지다, 한때는 당신의 딸이었던 내가, ‘누군가의 딸’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자신과는 전혀 다른 결의 삶을 사는 타인이 되어버릴 거라는 거.
"아빠야. 당신 딸 국토종단 간단다."
엄마가 말을 던지고 창밖을 바라봤다. 아빠가 뒷좌석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 아빠의 눈이 반짝였다.
“뭐?”
아빠가 되물었다.
“당신 딸. 수지. 국토종단 간대.”
“국토종단? 힘들 텐데…. 그런 건 잔병 많은 아들이 가야 하는데. 아들 너도 운동 좀 해야지.”
운전석에 앉은 오빠가 아빠를 슬쩍 쳐다본다. 아빠 그게 아니라. 어려운 말이지만 다시 입에 담아본다. 아빠. 잠깐 휴가 내고 다녀온다는 게 아니라. 삼 개월 정도 다녀올 거야. 삼 개월? 아빠의 입술이 꽁하게 다물어졌다. 빛나던 눈동자에 그늘이 졌다. 공기는 여전히, 슬픈 노래처럼 묵직하다.
“…. 그래. 아빠가 있으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목덜미가 시큰하다. 차라리 욕을 퍼부어줬으면. 말로라도 매를 맞고 값을 치르게. 하지만 아빠가 그럴 리가 없지. 아픈 엄마 걱정은 말고 네 마음대로 살아. 해준 게 없어 미안해. 아빠는 실패했어. 이제 다 포기하고 엄마 건강만을 위해 살아야지. 내가 너에게 해줄 건 그거밖에 없잖아. 그런, 내가 듣고 싶은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아빠니까.
아빠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누군가 한숨을 쉬었다. 오빠인가. 아빠인가. 나는 아빠의 옆얼굴을 슬쩍 살폈다. 울긋불긋 실핏줄이 올라온 커다란 귀. 살짝 벌어진 입. 두 눈은 끔뻑거리고 있겠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할 때면 늘 그렇듯.
아빠는 솔직하지 못하다. 오빠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하는 말과 본심을 구분하는 데 익숙했다. 먹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눈을 보면 먹어보고 싶어 하는 게 보인다. 옷 신발 같은 거 필요 없는데 뭘 이런 걸 사 왔냐고 하지만 표정을 보면 내심 기뻐하고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꼭 그랬다. 나는 필요 없으니, 나는 먹고 싶지 않으니, 자식들 손주들 먹으라고 다 내어줘 버렸던 할머니 같은 아빠.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 뭘 원하는지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하는지 다 먹는지만 신경 쓰는 아빠. 할머니도 그렇게 살았고 아빠도 그렇게 사는데, 나만 이렇게 이기적으로 사는 거, 괜찮은 걸까. 아빠는 정말 내가 나 하고 싶은 대로, 엄마 걱정 없이 떠나는 걸 원할까. 아니면 숨기는 걸까. 내 딸이라는 저 아이는 어쩌면 저리 자기밖에 모르는가, 하지만 나는 할 말이 없지 않은가, 해준 게 없으니, 라는 속마음을.
따랑-.
엄마의 전화벨이 날카로운 칼처럼 정적을 훅, 뚫고 들어왔다.
“여보세요.”
이모였다. 고춧가루? 응. 다음 주에 보낸데. 어. 응. 알지 주소. 응. 보성에 수지 왔다. 아니 남편은 못 오고. 응. 여행 간대. 삼 개월. 국토종단. 엄마가 말했다.
‘뭘 가?’
수화기 너머,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행. 국토종단. 배낭 메고. 걸어 다닌다고. 엄마가 말했다.
‘뭐? 아 걔는 무슨. 여행에 미쳤다냐!’
이모의 호통이 차 안에 가득 퍼졌다. 몸이 바짝 조여왔다. 엄마가 하고 싶었던 말일 텐데. 이제 그만 좀 해! 넌 속아지도 없냐! 해도 해도 너무해!
“아니 뭐. 견문도 넓히고. 더 넓은 세계도 보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손을 주무르다 멈추고, 엄마를 슬쩍 쳐다봤다.
“아이 뭐. 멋지게 사는 거지 뭐!”
엄마의 몸이 흔들흔들. 작게 흔들리는 엄마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번졌다. 아기 주먹만 한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뜨거운 것은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