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10
한 숨도 못 잤다.
더스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몸을 반대 방향으로 고쳐 눕더니 한숨을 푹 쉰다. 그래, 너라고 잘 잤겠니. 장난감 칼처럼 무딘 나도 못 잤는데, 미식가의 혀처럼 민감한 네가 어떻게. 더스틴이 다시 몸을 바로 하고 눕는다. 수달처럼 두 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텐트 천에 달린 오렌지색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두 눈을 꿈뻑꿈뻑. 그의 눈빛에 그가 겪었을 지난밤이 묻어났다. 딱딱한 바닥에 몸을 뒤척이다, 야외에서 잠을 잔다는 것을 불안해하다, 앞으로의 잠자리를 걱정하다, 이 여행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급기야는 이 세계와 우주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걱정했겠지. 그러다 떠오르는 해와 함께 점점 뚜렷해지는 텐트의 네온색을 바라보며 지금처럼 한숨을 쉬었겠지.
“더스틴, 추워."
“응, 춥다. 내장까지 추워.”
“우린 어쩌자고 이 손바닥 두 개만 한 스포츠 타월 하나만 덮고 잔 거야? 침낭이 두 개 있으면 두 개 다 써야지 왜 하나만 바닥에 깔고 잔 거야?”
“그건 마치, 젊은 사람이 늙어서 몸 고생할 거 생각 안 하고 운동을 조금도 하지 않는 거와 비슷한 거지. 어제 오후에는 기온이 딱 좋았잖아. 밤이 되면 기온도 낮아지고, 잠이 들면 체온이 내려간다는 기본 상식은 싹 잊어버렸지.”
“왜 그런 걸 겪어봐야지만 깨달아? 바보야 우린? 난 팔 저려가지고 한 스무 번은 깼어. 한쪽 팔 베고 자다가 팔이 정말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짜릿해서 벌떡 일어나고, 다시 잠들었다가 또 팔 때문에 깨고…. 6시다. 일어나자. 더 자고 싶은데, 이렇게 차고 불편한 곳에서는 더 자고 싶지 않다.”
샤워실로 가 고양이 세수를 하고 돌아왔다. 밥을 먹어야지. 내가 말했다. 응, 그래야지. 더스틴이 배낭을 뒤적였다. 어제 동송에서 산거. 그거 먹자. 닭가슴살 캔이랑 강낭콩 통조림. 더스틴이 말했다. 캠핑용 냄비에 닭가슴살과 강낭콩 통조림을 들이붓고 끓였다. 통조림째 날로 먹는 것과 끓여 먹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어디 한 입. …. 우리는 서로를 보며 껄껄껄 웃었다.
“너무 맛없어서 웃음이 나. 웃음이 나는 코믹한 맛이야.”
내가 말했다.
“다 망했네? 허허…. 나 사실, 텐트에서 자는 거에 대한 로망이 좀 있었거든. 텐트 안에 쏙, 들어가서 자면 뭔가 아늑한 느낌일 줄 알았어.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캠핑용 버너에 밥 해 먹고 그런 거…. 재밌을 줄 알았는데. 재밌는 게 아니라 웃기다. 네 말이 맞아. 웃기는 잠이고 웃기는 맛이야 진짜….”
“이 여행…. 재미있는 여행이 아닐 거야…. 주말에 공원 나들이 나와서 걸어 다니다 삼겹살 구워 먹는 그런 재밌는 여행이 아닐 거라고…. 너무 불편하거나 힘들거나 맛이 없어서 웃길지는 몰라도….”
“어쩔 수 없지. 이미 시작됐는데. 그리고 뭐, 재밌기만 한 것보단 좋잖아. 우리, 고생 좋아하잖아.”
어제 배를 곯으며 걸었던 걸 생각하며 냄비를 싹싹 비웠다. 커피도 마시자. 더스틴이 말했다. 각각 20.5kg, 12.5kg이 나가는 배낭 안에 커피라고 없을 리 없다. 마트에서 천 원 주고 산 캠핑용 커피 티백. 접이식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따랐다. 태블릿 PC로 전자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운 후 상쾌하게(?) 맞이한 아침, 휴대용 컵에 따라 마시는 커피. 맛은…. 커피 향이 살짝 스치는 뜨거운 물?
텐트를 정리하고 배낭을 쌌다. 다시 길을 나선다. 입안에 맴도는 통조림과 티백 커피의 맛 때문에 다시 웃음이 났다. 오늘 들릴 가게에서는 또 어떤 엉뚱한 음식을 사려나.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더스틴이 내 손에서 물통을 낚아챘다. 물통 바닥엔 한 모금도 아닌 두 방울 정도가 되는 물이 남아있다. 아니, 묻어있다고 해야 하나. 하얀 햇살이 투명한 플라스틱 물통과, 그 안에 뭍은 물방울들을 꿰뚫고 지나고 있었다. 눈썹을 팍, 구긴 채 빈 물통과 내 얼굴을 번갈아가며 노려보고 있는 더스틴의 얼굴은 마치 ‘고통’을 표현하는 추상 화가의 작품 같다.
“무슨 소리야! 딱 한 방울 마셨어!”
내 말에 더스틴이 씩씩대더니 물통을 뒤집어 제 입에 털어냈다. 물이 잘 안 나오는지 물통 바닥을 손으로 툭툭 친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복잡하다. 한심하다. 걷는 여행을 하면서 물 하나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우리가.
다시 걷는다. 양 발에 쇳덩이라도 달린 듯 발걸음이 무겁다. 배낭에는 온 세상이 들어있는 것 같다. 온 세상이 내 두 어깨를 무자비하게 짓누른다. 배낭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의 배낭. 여행에서의 생존과 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만 추출해 넣은 압축품들의 합. …. 내 배낭 안의 물건들은 과연 온종일 걸으며 들고 다닐 가치가 있는 필수 불가결한 물건들의 압축품인가? ‘꼭 가지고 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물건들이 배낭 안에서 배꼽을 붙잡고 자지러지게 웃으며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다. 쓰잘데기 없는 물건들 하나하나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침판. 대한민국 전도. 휴대용 스피커. 알레르기 치료제. 근육통 파스….
“야, 우리 이딴 거 다 왜 들고 다니는 건데? …. 야! 내 말 안 듣냐! 지금 내 배낭이랑 네 배낭 안에 든 물건들을 좀 생각해보라고!”
땀에 실컷 젖은 더스틴의 목덜미. 벌써 햇살에 그을렸는지 살이 벌겋다. 그가 목을 살짝 들고는 나를 돌아봤다. 우리는 장흥리의 어디쯤, 도로길을 걷고 있다.
“나침판? 나침판이 대체 왜 필요한데? 동서남북이 어느 쪽인지 왜 알아야 하지? 그냥 길 따라 걸으면 되는 거잖아. 모르면 스마트폰 지도 보면 되고.”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해서 챙겨 온 거잖아.”
더스틴의 시뻘건 목 위로 그의 짜증 어린 표정이 붉게 번져 들었다.
“위급 상황? 그 위급 상황 조금만 더 대비했다간 내 어깨가 위급해지겠다. 대한민국 전도? 측량 비율이 너무 커서 아무 쓸모도 없는데 부피만 크고…. 휴대용 스피커는 왜 가져왔어? 호루라기는 왜? 알레르기 치료제? 우리가 무슨 첩첩산중 오지를 몇 날 며칠 걸을 것도 아닌데, 알레르기 치료제가 필요하면 시내 약국에서 사면되는 거 아닌가? 파스도 가져왔지 참. 근육통을 걱정할 게 아니라 애초에 근육이 덜 아프도록 짐을 덜 들고 와야지. 우리한테 필요한 건 이딴 게 아니라고. 필요한 건 물이라고 물!”
더스틴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한참 바라봤다. 뭐?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들고 온 나침판이나 한 번쯤 쳐다보시지 그래. 더스틴이 고개를 돌리더니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가버렸다. 아니, 저벅저벅이 아닌가. 발걸음이 이상하다. 원래 만화 영화 캐릭터처럼 이상하게 걷는 놈이지만 뭔가 더 이상하다. 탭댄스 첫 수업을 듣는 사람처럼 어색하고 위태로운 발걸음이랄까.
“왜 발을 그렇게 하고 걸어? 심심해?”
급기야는 양 발 안쪽을 번쩍 들고 발 모서리로만 뒤뚱뒤뚱 걷는 더스틴에 대고 내가 물었다.
“야 너는…. 내가 심심해서 이러고 걷겠냐!”
“그럼 뭔데.”
“물집 잡혔어.”
“뭐? …. 아프겠네…. 근데 웃기다. 생각해봐. 알레르기 치료제, 파스, 모기약, 감기약, 설사약. 온갖 게 다 있는데 물집 치료에 필요한 약은 없잖아. 걷기 여행을 한다는 사람들이. 하하!”
더스틴이 나를 슥, 돌아보더니 다시 뒤뚱뒤뚱, 펭귄처럼 걸음을 옮겼다. 아파? 내가 물었다. 아프지 그럼. 그가 입술을 앙, 다물었다. 얼마나 아파? 어떻게 아파?
“어떤 느낌이냐면. 발이 땅에 닿잖아. 그럼 물집도 땅에 닿지. 근데 그걸 땅에 디뎌야 어떻게든 한 발이라도 걸을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집을 땅에 디디는데, 그러면 마치…. 물집 안에 자그마한 바늘 삼백 개가 들어있는 느낌이 들어. 발이 땅에 닿으면 바늘 삼백 개가 내 발바닥을 동시에 찔러대는 거지. 그럼 뭐랄까…. 벼락 맞은 기분이랄까. 온몸에 전기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랄까.”
온몸을 바늘 삼백 개로 찔리고 있는 사람 치고는 얼굴이 평온하고 말도 침착하다. 스무 발자국 정도 더 걸었을 무렵. 더스틴이 길가에 멈춰 섰다.
“뭐하려고?”
“쪼리로 갈아 신으려고.”
“진짜?”
“어. 내 배낭에서 쪼리 좀 꺼내 줘.”
나는 더스틴 배낭 겉 주머니에 꽂혀 있는 쪼리를 꺼내 땅바닥에 내던졌다. 더스틴이 트레킹화를 벗었다. 고개를 숙이더니 양쪽 발에서 양말을 벗겨낸다. 그러더니 양말을 트레킹화에 구겨 넣고 양 손으로 집어 고개를 든다. 다시 올라온 그의 얼굴이 벌겋다.
"쪼리 신으면 더 아프지 않겠어? 등산화랑 양말을 신어야 그나마 쿠션감이 있지."
"더 아프라고 신는 거야. 물집과 신발, 신발과 도로 사이 간격을 최소화해서 물집이 가능한 한 땅에 더 많이 디디도록 하려고. 트레킹화를 신었을 때는 바늘 삼백 개가 발에 꽂히는 느낌이었다면, 쪼리를 신으면 한 천 개쯤 꽂히는 느낌일 거 아냐. 그렇게 계속 아파야 해. 그래야 익숙해지지. 익숙해지면 아픔에 무뎌질 테고.”
“…. 난 네가 이상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소리를 할 땐 정말…. 좀 살짝 말이지. 또라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스틴이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갔다. 걸을수록 앞으로 굽어져 가는 그의 등허리. 한 발 두 발 내밀 때마다 펄쩍펄쩍 뛰는, 등산화를 쥔 두 손. 뒤에서 지켜보는 내 등짝이 다 짜릿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