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17
사창리에서 이틀을 쉬었다. 3만 원짜리 모텔방에 묵으며 이따금 밖으로 나가 5천 원짜리 돈가스도 먹고, 1천5백 원짜리 김밥도 사 먹고, 3천 원짜리 라떼를 마시는 사치도 부렸다. 저녁에는 2천 원짜리 컵닭강정에 맥주를 마시는 호사도 누렸다. 맨바닥에 텐트 천만 깔고 자던 터에 편편해진 등이 말랑말랑해졌을 무렵, 다시 배낭을 멨다. 오늘은 지촌천을 따라 걷는다.
지촌천은 꼬박 여덟 번을 굽으며 흐른다. 물이 굽어지는 지점마다 시구를 적은 바위가 우리를 맞이했다. 시구 하나, 시구 둘, 시구 셋. 시구를 여덟 번 천천히 읽어나가니 지촌천의 끝이다.
어서오십시오.
호반의 도시 춘천입니다.
Welcome to Chuncheon
짙은 초록색의 도로 표지판이 시의 경계를 알렸다. 춘천이다! 더스틴이 양팔을 벌리며 외쳤다. 초록색 산으로 둘러싸인 도로 한가운데. 우리는 철원을 넘어 춘천으로 들어선다.
“이제 딱 일주일 됐다. 서울 떠난 지. 중간에 쉰 날들도 있지만…. 어땠어?”
더스틴의 뒤통수에 대고 내가 물었다.
“난….”
“…. 뭐라고? …. 그쪽에 대고 말하니까 하나도 안 들려. 뒤돌아서 말해!”
“됐어. 별로 중요한 말 아니야.”
더스틴이 고개를 돌려 말하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치…. 걸은 지 일주일이다. 사람은 모든 것에 적응하기 마련이라지만, 어깨를 파고들 것처럼 내 몸을 지그시 누르는 배낭 무게에 적응할 줄은 몰랐다. 밥도 못 먹고 하염없이 걷는 데에 적응할 줄도 몰랐다. 매일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데 적응할 줄도 몰랐다.
“춘천이 ‘봄의 고향’이라는 뜻이래. 근데 그렇다고 봄이 제일 먼저 오는 곳은 아니겠지? 아무래도 남쪽에 먼저 찾아올 테니까….”
더스틴은 내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 이따금 차가 오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갓길로 피하라고 손짓할 뿐. 같이 걷고 있지만 이럴 땐 혼자 걷는 거나 다름없다. 혼자 걷고 혼자 말하고 혼자 힘들고. 혼자 힘든가? 싶으면 더 무거운 배낭을 들고 걸어가고 있는 더스틴이 눈 앞에 보인다. 우리는 혼자도 아니고 같이도 아니다. 지금이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것처럼. 8월의 끝. 춘천의 봄은 멀리 가고 없다.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춘천. 춘천에서는 따뜻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철원과 화천은 조금 추웠어. 군부대에서 군부대로 이어지는 길. 마을도, 식당도, 상점도 없는 삭막한 길이었어. 춘천으로 들어서니 나무도 더 푸른 것 같다. 군부대 대신 마을이 보인다. 춘천에서는 조금 덜 추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두색 어린잎들이 나무 위에서 살랑거렸다.
“오 민박이다….”
내가 말했다. 길 저편으로 민박 간판이 보였다. 철원에는 민박이 전혀 없더니 춘천에는 있네. 이렇게 시내랑 동떨어진 곳에도 말이야. 더스틴이 말했다.
괜한 호기심에 민박집 간판 주변을 쭈뼛거려본다. 널찍한 마당에 묶인 개 한 마리가 우리 냄새를 맡았는지 사납게 짖어댄다. 할머니 한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아 옥수수 껍질을 까고 계셨다. 마당에는 빛바랜 창호지 색깔의 껍질에 쌓인 옥수수가 작은 동산처럼 수북이 쌓여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했다. 작고 소심한 목소리로. 까만 머리를 바짝 볶아 말은 할머니의 작은 눈이 나와 더스틴을 차례로 바라봤다.
“여행하는 거요? 거기 앉어. 쉬다 가.”
할머니가 말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옥수수 껍질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일을 계속했다. 그럴까요…. 우리는 마당 한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쪼그려 앉았다. 여긴 우리 딸이여. 할머니가 말했다. 아….
“여기서 민박하시는 거예요?”
“민박은 안혀. 간판만 달려있어.”
“아…. 여기서 오래 사셨어요?”
대화를 오래 끌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 더 앉아서 쉴 수 있어.
“오래 살긴 했지. 난 원래 저기 황해도 사람이야. 거기서 피난 왔어.”
“며칠 전에 저기 철원 명월리에서 만난 할머니도 이북서 오셨다고 했는데…. 언제 피난 오셨어요?”
“육십…. 그니까. 육십사 년 정도 됐다. 스물한 살 때지 그때가. 나 혼자서 바다를 4시간 동안 헤엄쳐서 왔다.”
“네? …. 할머니가요? 바다를 어떻게 4시간 동안 헤엄쳐요?”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살아야 하니까 하지.”
“그렇구나….”
“그때는 말이야. 북에서 부자란 부자는 다 총 쏴서 죽였어. 그래서 시아버지랑 시형도 죽었지. 안 되겠다 싶어서 남편이 먼저 탈출했어. 그리고 내가 뒤따랐지.”
“아. 그럼 남편분은….”
“남에서 다시 만났어.”
“어떻게 다시 만나요?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황해도 사람이잖아. 황해도 사람끼리 모일 때가 있었어. 그때 만났어. 그때는 실향민들끼리 그랬어. 다른 지역 사람들도 그렇게 다시 만나고.”
“엄청난 이야기네요. 근데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신다.”
“뭐이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바스락바스락. 할머니와 아주머니의 손이 쉴 새 없이 옥수수 껍질을 깠다. 저걸 언제 다 까나.
“옥수수…. 많아요.”
더스틴이 말했다.
"한국말 잘허네."
“농사가 잘 됐나 봐요.”
내가 물었다.
“잘되긴 뭐이 잘돼. 올해는 다 망해버렸다. 황해도에서는 이 옥수수 없어서 못 먹는 것인데.”
“그래요?”
“거긴 다 하얀 쌀밥만 나와. …. 옥수수 이건 없어서 못 파는 것인데. 아 올해는 옥수수를 안 먹는 해라나?”
“그런 해가 있어요?”
“비도 많이 오고, 그러니까 놀러들을 안 오고. 그래서 옥수수를 살 사람이 없으니까 옥수수가 다 말라버려서 이러고 있는겨. 에이 신경질 나. 신경질 나서 내년에는 옥수수 하나도 안 심을 거야.”
“아…. 어떡해요.”
“올해는 옥수수 농사 안 하려고 했는데…. 원래는 저 시내에서 고기 장사 30년 했어. 고기 장사만 했나? 다방도 하고, 여관도 하고, 시장서 뭣도 팔도 저것도 팔고. 돈 많이 벌었지. 돈 많이 벌어서 애들 시집 장가보내고.”
“그래요?”
“나머지는 남 좋은 일 시키고 다 없어져버렸지. …. 자식들도 다 나갔으니 여기 와서 좀 쉬엄쉬엄 살라고 했는데. 어영부영하니까 죽을 나이가 다 되아뿌랐네. 히히.”
“아…. 하하….”
웃어도 되는 건가…. 망설이다 그냥 웃어버린다. 할머니 옆에 앉은 딸 아주머니도 수줍게 웃는다. 바짝 마른 옥수수 껍질처럼 건조하고 담담하게 툭툭 말해버리는, 몇 문장으로 요약된 할머니의 삶.
“거기 둘은 뭐여. 친구여? 애인이여?”
할머니가 물었다.
“부부예요.”
“그래?”
“네.”
“…. 그나저나 큰일이여. 요새는 결혼들을 안 해? 다 결혼 안 한다고 해 뿌러.”
“…. 네….”
“결혼을 해도 애들을 안 낳고. 애를 낳았다 해도 다 외국서 온 사람이랑 결혼해서 튀기를 낳아 버리고. 아니 하나같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낳아도 튀기를 낳아뿔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네? 네….”
불편한지 모르고 앉아있던 마당이 차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엉덩이를 슬금슬금 움직이다 더스틴에게 속삭였다. 그만 가자. 더스틴이 슬며시 일어나 배낭을 멨다. 할머니, 저희는 그만 가볼게요. 내가 말했다.
“가? 그려…. 원래 같았으면 옥수수 쪄 놓은 거 있어서 먹으라고 몇 개 줄 거인데. 다 말라 부러 가지고. 못줘서 미안하네."
“네? 아이, 아니에요.”
“여 이거라도 마셔라. 남은 길 잘 걷고. 잉?”
“…. 안 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할머니가 비타민 음료 두 병을 건넸다. 냉장고에서 갓 꺼냈는지 병이 차다. 민박집에서 나와 뚜껑을 따 음료를 마셨다. 시다. 달다. 시면서도 달다.
“저 할머니가, 결혼해도 애를 안 낳고, 결혼해도 외국사람이랑 해서 튀기를 낳고, 그러면 나라는 누가 지키녜.”
오탄리를 향해 걸으며 내가 말했다. 나라의 먼 미래까지 생각하시고. 시야가 넓으신 분이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가 봐. 더스틴이 대꾸했다.
“사람들은 왜 외국인을 싫어할까? 결혼한 부부가 애 안 낳는 것도 싫어하고.”
“저 할머니 말하는 거야? 내가 외국인이라고 싫어하신 것 같아서?”
“응. 그리고 우리가 애 안 낳는 것도 싫어하시고.”
“우리가 애 안 낳는걸 왜 싫어하시는지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저 할머니가 내가 외국인이어서 싫어했단 기분은 안 들어. 이렇게 음료수까지 주셨잖아.”
그건 그런데…. 여하튼 일말의 반감이 들어있는 말을 하신 건 사실이잖아. 대체 뭘까? 혈통에 대한 중시? ‘우리 것’에 대한 보호?
“너네 엄마도 나 처음 만났을 때 반감 있으셨잖아. 외국인이라서.”
더스틴이 말했다.
“우리 엄마가 뭐? 우리 엄마 너 좋아해. 너도 그랬잖아, 우리 엄마 만나면 너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고.”
“지금은 그런데. 처음에 말이야. 너네 집에 처음 가서 인사드렸을 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더니. 너네 엄마가 고개를 홱 돌려버리셨잖아. 한국말로 뭐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내가 너한테 뭐라고 하신 거냐고 물어보니까….”
“어…. 내가 눈치도 없이 그대로 통역해줬지. ‘엄마가 너 반대한대,’하고. 그 말을 그 자리에서 전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내가 엄청 기분 나쁜 티를 확 냈지.”
“그리고 분위기가 엄청 사나워졌지. 기분 나쁜 티를 그렇게 내는 넌 뭐냐고. 보통 그런 자리에서는 찍 소리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그런단 말이야…. 혼자 숨어서 울고…. 우리 엄마도 그런 걸 예상했을 거고…. 근데 우리 엄마도, 네가 외국인이라서 싫어한 건 아닐 거야. 너랑 결혼하면 내가 외국으로 나가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게 싫고. 거기다 네가 밥벌이 못하는 영화과를 나왔다고 하니….”
“그래서 이해를 한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엄마도 그 뒤로는 다정했잖아. 네가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지.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것들에 대한 반감이 있으니까.”
“아까 그 할머니가 가진 반감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더니? 나한테는 이해를 하라고 하네?”
“에이씨…. 그래. 네가 조금만 이해 해. 그래도 안되면 내가 싸워줄게.”
“네가?”
“에이씨…. 그래, 네가 직접 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