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길 따라 도보여행, 삶이 참 피곤하다

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19

by 두지

지촌리 현지사 옆 공터. 밤새 딱딱하고 무거워져 버린 몸을 텐트 밖으로 꺼낸다. 양 팔을 위로 뻗어 맞잡는다. 왼쪽으로 우두득, 오른쪽으로 우두득. 핸드폰으로 오늘의 갈 길을 가늠해본다. 춘천까지 24km.


“24km면…. 오늘 닿을 수 있겠지? 춘천 말이야.”

침낭을 정리하고 있는 더스틴에게 묻는다. 가야지. 무조건 가야지. 일주일 전 걷기 시작한 후로 처음 닿는 큰 도시잖아. 가서 모텔을 잡아야지. 제대로 된 침대에 누워서 잠도 자고, 제대로 된 샤워실에서 샤워도 하고, 밥과 반찬이 차려진 식단으로 매 끼니를 먹고, 하루에 한 잔 커피도 마시고, 밤이 되면 맥주도 마시고,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에 가서, 우리도 평범함 관광객인 냥 구경도 하고, 그래야지.


“신난다…. 근데 말이야. 우리 지금까지 하루에 가장 많이 걸은 게 20km야. 그래도 할 수 있겠지? 오늘의 24km….

“가는 길은 어때? 도로야?”

“음….”

도로야. 죄다 도로. 현지사 나가면 바로 도로길인데, 거기서부터 춘천시내까지 쭈욱, 24km 내내 도로야. 스마트폰 지도를 들여다보며 내가 말했다. 뭐, 좋게 생각하자. 더스틴이 말한다. 시내가 가까우니 도로가 있는 거겠지. 도로를 걸으며 되새기자고. 이 도로를 걷다 보면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침대를, 우리의 샤워를, 우리의 맥주를!


지촌천이던 물줄기는 북한강으로 이어졌다. 도로는 북한강 물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풍경 하나는 멋진 하루다. 맑고 깨끗한 강. 눈을 들면 보이는 초록 산. 맑은 하늘. 강가 저 멀리 들어선 작고 예쁜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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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그 짐을 들고 어디까지 가요?”

38선 경계비를 지나고 나온 이름 모를 마을.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더니 말했다. 춘천이요. 춘천 이쪽 맞죠? 내가 물었다.

“응 맞아요.”

“근데…. 춘천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 도로길밖에 없나요? 도로에 차가 너무 많아서….”

“내가 알기론 그래요. 여기 이 도로가 그래. 화천이랑 양구 가는 차 때문에 차가 언제나 많이 다니는 길이예요.”


울고 싶다. 울고 싶지만 울지 말고 걸어야지. 그래야 우리의 춘천, 푸짐한 닭갈비와 시원한 맥주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닿을 수 있을 테니까. 회색 아스팔트를 보며 걷는다. 그러다 눈을 들어 강을 한 번 본다. 왼쪽으로 쌩, 차가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쌩, 쌩.


"수지! 여기 봐!”


앞으로 묵묵히 걷던 더스틴이 외쳤다. 허벅지 위에 두 손을 받힌 더스틴이 고개를 쭉 빼고 길바닥을 내려다본다. 뭔데? 또 뱀이라도 나왔어?


“어! 던킨도너츠다!”


내 입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나 왜 환호하지. 이딴 쓰레기에…. 더스틴이 입을 삐죽였다. 하얀 바탕의 컵. 그 위에 꽂혀있는 명랑한 핑크색 빨대. 우리는 쭈그리고 앉아 아스팔트 위에 버려진 컵을 한참 들여다봤다. 무슨 음료였을까? 더스틴이 물었다. 차가운 음료. 딸기 스무디 같은 거…. 아님 달콤한 모카 프라페라던가…. 톡 쏘는 레몬 맛이 나는 새파란 색의 청량음료였을 수도. 근데, 이런 쓰레기 구경도 오랜만이다. 오덕리에서는, 지촌리에서는, 이런 체인점에서 나온 쓰레기 보기 힘들었잖아. 이게 다, 춘천이 가까워졌다는 뜻인 거야.


다 마시고 버린 빈 껍데기가 아닌, 실제하는 차가운 음료를 마시기 위해 도시로 향하는 여정은 험난했다. 차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국도 위에 보행자를 위한 보도블록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걸어 다닐 수 있는 갓길은 지나치게 좁았다. 승용차, 관광버스, 화물트럭, 오토바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차들이 우리가 걷는 방향으로, 그러니까 춘천 방향으로 빠르게 빠르게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버스 온다! 조심해! 더스틴이 앞에서 외치며 갓길에 바짝 붙으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조심하라고? 어떻게? 일단 갓길 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저 멀리서 달려오던 버스가 순식간에 내 눈 앞에 당도했다. 내가 어떻게 더 해 볼 틈도 주지 않고 쌩, 하니 지나가버린다. 버스가 내뱉고 간 강한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얼굴 위로 마구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따라 심장도 어지럽게 쿵쾅거렸다. 저 멀리, 다시 버스가 온다. 이를 꾹 깨문다. 갓길 쪽으로 바짝 붙으며 혼자 중얼거린다. 더스틴, 우리 지금 뭐 하는 거니. 이게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에이씨!”


더스틴이 배낭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풀썩 주저앉았다. 오월리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정류장 왼쪽으로는 작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더스틴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오솔길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 가는데? 바싹 마른 낙엽같이 건조한 더스틴의 물음. 그냥 한 번 가보려고. 혹시 이 길로 갈 수 있나 해서. 안 이어지는 거 알면서 뭐하러 가. 아 뭔 상관인데, 내 마음이야. 나는 몸을 획 돌려 오솔길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예쁘다, 이 길. 왼쪽으로는 잔잔한 강물, 오른쪽으로는 빼곡한 나무.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좁다란 흙길. 이 길로 쭉 걷다 춘천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도 안다. 이 길은 춘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춘천에 닿기 위해서는 이런 길이 아닌, 차 많고 위험한 도로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앞으로 20km 더.


팍 절여진 배추처럼 시들하게 앉아있는 더스틴 곁으로 돌아가, 그의 옆에 주저앉는다. 눈 앞으로 도로가, 도로 너머로 나무들이 보인다. 바람에 춤추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여행 오기 전, 8월의 어느 날 밤에도 짐을 싸다가, 방바닥에 이렇게 두 손을 뒤로 받친 채 한참을 앉아있었는데. 그때 둘이 얘기했었지. 텐트는 가져간다만, 온종일 걷다 잠까지 텐트에서 자면 힘들 테니 대부분의 날은 민박에서 자자고. 끼니 대부분은 값싸고 든든한 김밥으로 해결하자고. 진짜 웃기지도 않는 생각이었다. 중간에 이틀을 쉬었던 사창리, 그리고 문 닫은 민박이 하나 있었던 지촌리에서 말고는 민박 따위 구경도 못했다. 김밥? 5분 걸으면 하나꼴로 김밥집이 나오는 건 도시가 가진 풍요다. 사람 구경도 힘든 시골길에서 누가 미쳤다고 김밥을 예쁘게 말아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야 우린 진짜 무슨….”


바보 아니냐?라고 비난의 말을 꺼내려는 나를, 더스틴의 꿈틀대는 짙은 눈썹이 힘껏 가로막는다. 가만히 두어야 한다. 저렇게 눈썹이 가운데로 한껏 모아져 있을 때는 말이다. 괜히 건드렸다가 그가 나를 건드릴 테고, 그런 그를 내가 또 건드릴 테고, 그렇게 서로를 건드리다 해질 무렵까지 언쟁을 이어 나갈 테니.


“아 씨…. 도로에서 달리라고 도로에서.”

더스틴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젓는다. 방금 지나간 회색 승용차 때문에 저러는 거다. 널찍한 도로를 두고 굳이 갓길 쪽으로 바짝 붙여 달리는 바람에, 정류장 바닥에 앉아있는 우리 발을 거의 밟고 갈 뻔했다. 하-. 더스틴의 한숨이 그의 화만큼 묵직하다.


“왜 저렇게 매너가 없어?”

으-! 더스틴이 괴이한 소리를 내며 손으로 얼굴을 마구 뭉갰다.

“우릴 못 본 걸 꺼야.”

“못 보긴 뭘 못 봐. 우리가 숨어있어 지금? 한두 대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다들 왜 저래? 사람 걷고 있는 거, 앉아있는 거 뻔히 보이는데 왜 굳이 갓길 쪽으로 바짝 붙어서 걷는데? 아니 핸들만 조금 비틀면 되는 문제잖아. 왜 저렇게 매너가 없냐고 다들?”


“아니 뭐. 차 다니라고 만든 도로 위를 걷고 있는 건 우리잖아.”

“그래서 뭐? 우리가 무슨 못할 짓 해? 고속도로 아닌 국도 걷는 건 불법 아니라며. 그리고 뭐 도로라고 차만 존재해야 해? 차가 있으면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있고, 멋 모르고 길 건너는 노루도 있고, 기름 떨어져서 갑자기 멈춰버린 차도 있고 그런 거 아냐? 같이 사는 세상이니까, 나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신경 쓰고, 배려하고, 존중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아니 배려고 존중이고 다 필요 없고 기본 매너는 좀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 몰라. 저 사람들한테 가서 말해. 왜 나한테 난리야.”

“아! 더 이상 못 참아! 안 해! 안 한다고!”


더스틴이 돌멩이를 하나 주워 강 쪽으로 내던졌다. 뭘 안 한다는 걸까. 춘천 가기를? 도로길 걷기를? 이 여행을? 나는 묻지 않는다. 대신 도로 너머 나무에 달려있는 나뭇잎에 집중한다. 살랑, 살랑, 살랑…. 100번의 살랑임까지 세어본다.


“….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도로만 주야장천 걸어야 한다면…. 그건 아니야. 정말 아니야. 그렇다면 경로를 다시 짜야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단어 하나하나에 온점을 찍듯, 더스틴이 힘주어 말했다. 스스스, 뒷골 어딘가로 스산한 무언가가 돋아나더니 얼굴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아마 새빨개져 있을 고개를 더스틴 쪽으로 획 돌렸다.


“뭘 다시 시작해?”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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