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하는 그 걸음, 내 꿈이야”

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22

by 두지

“어?”

더스틴이 앞을 보며 외쳤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저 멀리, 아까 그 자전거가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아니 그게…. 내가…. 아까, 길을 잘 못…. 알려준 것 같아서.”

헥헥. 숨을 고르는 중간중간, 아저씨가 문장을 띄엄띄엄 이어나갔다.

“아….”

“내가 아까 모텔이 경찰서 뒤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 그랬나요.”

“근데 그게 아니야. 다시 생각해보니 해장국집 뒤야. 24시간 해장국집.”

“아…. 해장국집…. 그렇구나…. 감사해요. 일부러 다시 와서 알려주시고.”

“그래요. 잘 걸어요 그럼.”


그…. 아저씨 입에 달린 마스크가 어떤 단어를 뱉어낼 것처럼 부풀어 오르다, 이내 꺼져버렸다. 아저씨는 다시 춘천 시내 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뒷모습이다….”

멀어져 가는 아저씨의 검은 등짝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그러게. 뭔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네. 저 아저씨, 왠지 또 돌아올 것 같아.”

더스틴이 말했다. 길 다시 알려줘 봐야 나는 기억도 못 할 텐데. 내가 말했다. 맞아. 아까 너, 그 표정 또 나왔었어. 누군가 길을 설명하고 있으면 네 속의 모든 논리 구조가 스윽, 닫혀버리고 멍해지는…. 그 표정. 더스틴이 말했다.


“응…. 사실 이해 못했어. 공지천 다음에…. 해장국. 그런데 공지천 나가면 해장국집이 바로 나오는 거야? 거기까지 가는 길을 뭐라고 설명해 준 것 같은데 뭐라 그러셨더라…. 그 만 오천 원짜리 집 꼭 찾고 싶은데. 적어둘걸.”

“뭐, 거기가 아니더라도 모텔은 얼마든지 있겠지. 야, 강 멋있다. 강 위에 떠 있는 저 집들은 낚시하는 곳들인가.”

“어, 또.”

이번엔 내가 먼저 봤다.

"그 아저씨야?"

"맞는 거 같은데. 맞다. 맞지?”


맞다. 다시 다가온 아저씨가 잦은 숨을 고르며 우리 앞에 섰다.


“…. 내가 다시 생각해보니까, 자전거 타고 공지천까지 가는데 한 20분 걸리는데,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릴 거란 말이야…. 그거 너무 먼데?"

“아. 괜찮아요. 꼭 공지천까지 안 가도 돼요. 힘들면 옆길로 빠져나가 아무 데서나 숙소 잡으면 되죠. 여기도 벌써 시내인데요 뭘. 아파트 단지도 보이고.”

"그래요. 생각해보니까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알려주러 왔어.”

“감사합니다. 저희 때문에 괜히 힘들게 돌아와 주시고.”

“그래요. 열심히 해요. 근육을 잘 풀어줘야 하는 거 알죠?”

“네!”

내가 큰 소리로 답했다. 딱히 근육을 풀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아저씨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다에 만 원 건다. 더스틴이 말했다.


"만 원 따 봤자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이지.”

“아냐. 내가 만원을 따면, 그 돈은 네 간섭 없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

“따면 뭐할 건데?”

내가 물었다.

"피자 먹을 거야.”

피자? 피자가 있을까? 하긴. 큰 시내인데 뭐라고 없겠어.


“5,000원짜리 싸구려 피자 먹을 거야. 지난 일주일 간 그것만을 꿈꿨어.”

“그래? 고작 그런 걸 꿈꿨다니. 되게 불쌍하네…. 그럼 맥주도 마시자. 난 떡볶이 사 먹을래. 파티하자. 모텔 방 안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자!”

“어. 내가 이겼다. 피자는 나의 것이다.”

더스틴이 중얼거렸다. 정말이다. 아저씨가 돌아왔다.


“아니 고생하는데. 뭘 좀 주고 싶어서.”

아저씨가 복대 지퍼를 열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자…. 아저씨 손안에 청포도 사탕 두 알과 견과류 한 봉지가 담겨있다.

“아, 너무 감사합니다.”

아저씨의 선물을 덥석 받았다. 타인의 호의에 대한 거절을 모르게 된 우리다. 그 자리에서 사탕을 까서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상큼한 인공색소의 맛이 입안으로 퍼졌다. 더스틴과 나는 사탕을 입에 물고 아저씨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도 있잖아…. 나도 우리나라 끝에서 끝까지 걸어보는 게 꿈이야.”

아저씨가 말했다.

“아 그래요?”

“응 그래서 내가 그 뭐야. 지리산 둘레길. 그것도 한 코스 빼고 다 걸었어. 제주도 올레길이고 강화도 나들길이고 다 걷고….”

“그러셨구나…. 저희도 국토종단 오기 전에 연습 삼아 그 강화도 나들길 조금 걸었어요. 고작 한 코스 걷긴 했지만. 근데 그런 둘레길만 골라서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저희가 걷는 길들은, 도로 길이 많아서 좀 힘들어요.”


아저씨는 한 동안 말이 없다. 입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동그란 청포도 사탕이 이빨에 부딪히는 소리만 내 머릿속을 가득 울렸다. 아저씨의 검은 선글라스는 우리를 향해 있었지만, 더 이상 우리를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떠올려보고 있나. 커다란 배낭을 메고 국도 위를 걷는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짐 들고 오랫동안 걸으려면 힘들 텐데, 힘내요. 나도 언젠간. 언젠가는 꼭 하고 싶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겠지?”

아저씨가 말했다.

"당연하죠. 저희도 하는데요.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나는 앞 가방에서 에너지바 하나를 꺼내 아저씨에게 건넸다. 동지에게 주는 선물이다. 아이고 됐어요 됐어. 아저씨가 손을 격하게 흔들며 거절했다. 이 여행에서는 주지는 못하고 계속 받기만 한다. 그럼 여행 잘하고. 아저씨는 또다시 작별의 인사를 하고 점이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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