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노코도를 걷자 09
“몇 시야?”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 6시. 더스틴이 속삭였다.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알람 소리가 아니라, 이러다 얼어 죽겠다 싶은 몸이 나를 흔들어 깨운 것 같다.
“좀 잤어?”
“어제보다는 좀 잤어.”
더스틴이 일어나 앉아 양 팔로 제 몸을 감쌌다.
“이 정도면 야영 성공인 거 아니냐. 나도 네다섯 번밖에 안 깼어. 애초에 잠이 들 수 있었던 게 어디야. 그 전날 밤 타나베에서의 야영을 생각하면….”
“타나베에서 한 숨도 못 잔 다음에, 어제 온종일 산길을 걸었으니 푹 잘만도 하지.”
텐트 밖으로 나갔다. 턱뼈가 부러져라, 이가 덜덜 떨려왔다. 짙은 안개가 마을 전체를 하얗게 짓누르고 있었다.
“빨리 가자. 몸이라도 움직여야 열이 좀 나지, 진짜 얼어서 뒤져버리겠어.”
더스틴이 텐트를 꾹꾹 눌러 접으며 말했다. 배낭을 메고 마을길을 걸었다. 걷다 보니 허기가 닥쳤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타바코’ 상점으로 향했다. 깊은 어둠에 빠져있던 밤에는 그토록 영롱하게 빛나던 상점인데, 새벽안개 아래에서 다시 보니 작고 소박하다.
“어, 야. 커피숍도 있다. 열었나?”
내가 말했다. 상점 옆에는 ‘코히’라고 작게 써진 가게가 있었다. 잠시만이라도 저기 앉아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긴장되는 마음으로 가게 가까이로 다가갔다. 문을…. 열었다!
여닫이 문이 활짝 열렸다. 가게 안에 있던 온기가 가슴팍으로 마구 달려들었다. 아니, 내 가슴팍이 온기를 허겁지겁 빼앗았다고 해야 하나. 따뜻하다. 행복하다. 급작스런 온도차에 콧물이 줄줄 났다. 우리는 가운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이고 메뉴? (영어 메뉴?)”
상냥하게 웃으며 다가오시는 아주머니께 내가 물었다. 짧고 무례한 문장이지만, 나에게는 최선의 일본어로. 아주머니는 메뉴를 가져다주시는 대신 무언가를 열심히 물어봤다.
“쏘리. 노 니혼고…. (미안하지만 일본어를 못해요….)”
알아듣고 싶다. 지독히도 알아듣고 싶다. 아마, 메뉴는 없다고 말하는 거겠지. 뭘 원하냐고 묻는 거겠지.
“푸드, 푸드.”
더스틴이 말하며 손으로 뭔가 집어먹는 시늉을 했다. 아, 우동 아리마스. (우동 있어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쿠라데스까? (얼마예요?) 샴뱌꾸엔데스. (300엔.)
“에, 또….”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다마고…. 다이죠부?
“뭐라고 하시는거야?”
더스틴이 물었다.
“다마고…. 다마고…. 아, 계란! 계란이 올려져있나 봐. 다이죠부. 다이죠부!”
감동적일 만큼 따뜻하고 아늑한 온기가 도는 이 카페에 몇 분이라도 앉아있을 수 있다면 돌이라도 씹어먹을 판인데. 우동이라니. 거기에 계란까지 올라가 있다니. 완전 다이죠부데스.
“도죠.”
우동이 나왔다. 국물이 없다. 약간 실망이다. 아직 꽁꽁 얼어있는 속에 따뜻한 국물을 부으려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다시 다가와 시연을 해 보였다. 자, 우동 면발 위에 날계란과 파가 보이지? 이렇게 간장을 조금 쳐서, 자 이렇게 젓가락을 계란을 휘휘 저어! 그렇게 먹으면 돼,라고 설명하시는 성실한 몸동작. 하이! 이따다끼마스! 면발을 한 가닥 먹으니 다시 콧물이 주룩, 흘러나온다. 코를 닦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따뜻한 차 두 잔을 내주셨다.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코에서 흐르는 게 콧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겠다.
“커피도 한 잔 시키자.”
더스틴이 말했다.
“커피 먹고 싶어?”
“먹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 고마운 곳에서는 돈을 좀 써야 할 거 아니냐. 온기도 채우고, 허기도 채우고, 따뜻한 차도 내어주시고.”
오하요 고자이마스! 스르륵-. 미닫이 문이 열렸다. 잘 접은 신문을 든 노신사 한 분이 들어왔다. 오래된 친구 사이처럼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는 노신사와 주인아주머니. 또각또각, 나무 바닥을 가로질러 걸어가던 노신사가 바 자리에 앉았다. 지난 50여 년 간 매일 아침 저 자리에만 앉았을 것 같다. 노신사는 신문을 펼치고, 모닝세트를 시켰다. 노신사를 지켜보며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뜨거운 차를 후르륵 마셨다. 꽁꽁 언 속이 한층 더 풀리고, 다시금 콧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츠카츠유의 아침은 노신사에게도, 겨울 땅 위에서 노숙을 한 미련한 우리에게도, 평화롭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