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고 싶다.
이탈리아에 가서 거리를 마구 걷다 아무 카페나 들어가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싶다. 젊은 유럽 청년들이 바글대는 태국 해변가에 누워 쏟아져 들어왔다 허무하게 빠지기를 반복하는 파도를 구경하고 싶다. 일본에 가서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스시-오코노미아끼-꼬치구이-야끼소바 등으로 잇고 이어지는 6차 술 먹방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할 수 없지. 그런 것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해외에 갈 수 없다면 국내를 여행하면 된다. 관광지에 갈 수 없다면 관광지가 아닌 곳을 가면 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갈 수 없다면 잘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곳을 가면 된다. 가서 뭐하냐고? 걸어라. 그리고 술을 마셔라.
남편 D와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주말이면 집 근처를 걷고, 집 근처가 지루해지면 옆 동네까지 걷고, 그것도 시시해지면 구를 넘어, 이따금은 시를 넘어 걷고….
여행을 좋아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여행을 가서 하는 것도 별다를 것 없는, 걷기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걷고, 국내 여행에서도 무지하게 걷고. 틈만 나면 서울과 서울 근교를 걸어 다녔고, 몇 년 전에는 철원에서 부산까지 걷는 국토종단을 했다. 국토종단의 기억은 머릿속에 인덱스 사전처럼 남아있다. 이번 주말에는 여기, 다음 휴가 때는 저기…. 이런 식으로 적절한 여행지를 조금씩 꺼내먹을 수 있다.
주말에 침대에서 빈둥빈둥 누워있다가, 어디 놀러 가 가볼까…. 하고 느지막이 일어나 갈 수 있는 여행지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오늘 생각난 곳은 춘천. 춘천은 좋은 곳이다. 교통편도 좋고, 시내도 있고, 소양강과 북한강도 있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지면 걷기 좋은 곳이 널려있다.
의암호 나들길
춘천에는 ‘봄내길’이라는 도보 코스가 있다. 그중 4코스 의암호 나들길은 소양강을 따라 이어진, 잘 닦인 도보길이자 자전거 코스다.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해, 춘천역과 공지천을 지나가는 길.
자전거 도로로 닦아놓은 길이라 오르막 내리막이 정말 한 군데도 없이, 쭉 평지다. 옆으로는 소양강이 확 트여 있어 한가롭고 평화롭게 걷기 좋다. 잔잔한 소양강도 구경하고,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도 구경하면서 거닐다 보면, 공지천이라는 곳이 나온다. 공지천까지만 걸어도 좋고, 더 걷고 싶다면 안내 표지판을 따라 쭉 걸어 무릉공원까지 걸어도 좋겠다.
실레이야기길
경춘선을 타고 춘천을 향해 가다 보면 김유정역이라는 곳이 있다. 김유정 문학촌이 있는 곳이다. 춘천도 좋지만 조금 더 들어간 김유정역도 나름 한적하고 깔끔한 매력이 있다.
김유정역에서 내려서 마을로 들어가면 실레이야기길이라는 길이 나온다. 김유정 문학촌을 에둘러 돌아가는 길이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 깊숙한 곳으로 폐가도 몇 개 나오는데, 비 오는 날에 걸으면 으슥 으슥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D와 내가 갔을 때가 그랬다.) 군데군데 메밀꽃도 피어있는 소박하고 예쁜 마을이다.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김유정 문학촌도 한 번 들러봤다가, 카페에 들러봐도 좋겠다. 이 동네에는 새로운 카페가 많은데, 맥주를 파는 카페도 있긴 있다. 하지만 카페에서 마시는 맥주란 330ml 꼬마병에 6~7천 원 하는 고가 메뉴이기 때문에…. 한 병 정도 마시며 쉬다가, 전철을 타고 춘천으로 가서 술을 마시는 것도 좋겠다.
산더덕 숯불닭갈비
춘천에 왔다면 춘천식 닭갈비를 먹는 것도 좋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숯불에 구워주는 매콤한 닭갈비를 맛볼 수 있는 이곳이다. 원래 맵지만 더 맵게 먹고 싶으면 양념을 더 발라달라고 하면 된다. 숯불향 가득 담긴 매콤한 닭갈비에 맥주와 소주를 각 1병씩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하루가 완성된다.
진아하우스
소양강에서 춘천 시내 쪽으로 걷다 보면 어디선가 고소한 바비큐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가 보면 노란 간판이 보일 것이다. 가게의 이름은 ‘진아하우스’. 춘천에 미군 기지가 있을 때 생겼던 집인 것 같은데, 살짝 이국적이면서도 한국스러운 독특한 노포의 매력이 가득하다. 들어가면 문 바로 옆에서 햄버거 패티를 굽고 계시는 사장님을 볼 수 있다. 주요 메뉴는 햄버거. 햄버거 단품은 4천 원. 패티에 계란을 입혀 좀 더 고소한 맛이 난다. 햄버거 외에도 김치볶음밥, 감자튀김, 골뱅이무침 등 있을 건 다 있다. 주류는 소주와 맥주. 햄버거에 맥주 1병을 한 후 김치볶음밥에 소주 1병을 하면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