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일기 12 실직했는데 우울하기까지 하면 슬프잖아요.
실직하기 직전에 내 인생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일은 너무 바쁘고 회사는 미쳐 돌아가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 17년 간 아프던 엄마가 훨씬 더 아파져서 응급실에 실려가 몇 날 며칠을 간병을 해야 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런 엄마를 돌보던 아빠마저 자꾸 아파서 아빠 병원도 쫓아다녀야 했다. 그런 동시에 남편과 작업하고 있는 영화를 위한 글쓰기, 미팅, 통번역, 기타 행정 처리, 온갖 구매 행위도 해야 했고 나 나름의 글쓰기도 놓을 수 없었다. 무리를 했는지 평생 아픈 적 없던 몸이 망가졌다. 퇴근하다가 진짜 너무 아파서 더 이상 못 걷고 길에서 울면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남편의 팔을 붙잡고 집에 끌려가기가 일쑤였고 현재 통증은 사라졌지만 아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댐 하나에 구멍이 나면 그걸 주먹으로 막고 있다가 다른 댐이 터지면 그걸 메꾸러 달려가는, 카드 돌려 막기 식 일상이었다. 막던 댐 중 하나는 무너져야 다른 것들이라도 지킬 수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하나가 무너졌다. 실직을 한 것이다.
뒤돌아보면 다른 게 잘못되는 것보단 나은 결론이었다. 엄마 아빠의 건강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영화나 글쓰기 작업을 그만두는 거? 절대 안 되지. 내 건강? 차라리 더 일찍 실직했다면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을 거고 후유증도 없었을 것 같다. 너무 아픈데 이를 악물고 출퇴근하다가 병만 키웠지.
물론 실직을 해서 지옥에서 벗어난 건 아니다. 구직 활동이라는 또 다른 지옥이 시작되었을 뿐....
구직활동이란 건 정말 구질구질하고 구차하고 기 빠지는, 사람 자존감을 확확 꺾는 활동이다. 내라는 서류는 왜 그렇게 많은지, 자기소개서만 요구하면 될 일이지 읽지도 않을 경력기술서, 경험기술서, 직무수행계획서 같은 건 뭘 그렇게 몇 장씩이나 쓰라는 건지, 그걸 왜 굳이 죄다 뽑아서 우편으로 내라는 건지, 그렇게 단편 소설 분량으로 양식 예쁘게 맞춰 써서 인쇄까지 해다가 우편으로 부처 줬으면 그걸로 될 일이지 뭔 필기시험에다가 발표에다가 면접까지 치르게 하는지. 우주를 구하는 용사를 뽑는 일도 아니고 고작 몇 년 쓰고 버릴 계약직 뽑으면서 뭘 그렇게 호들갑에다 갑질인지.... 어차피 안 뽑아줄 거면서!
실직 후 여덟 번의 면접을 봤고 여덟 번 다 떨어졌다. 면접을 보러 천안까지 간 적도 있고 제주도까지 간 적도 있다. 며칠 전에는 면접이 끝나고 핸드폰을 돌려받아(그렇다. 일부 면접에서는 전자 기기까지 거둔다.) 전원을 켜니 엄마가 다시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연락이 와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이 글은 간병인 침대에 앉아 엄마 침대에 노트북을 걸쳐두고 쓰고 있다.) 면접 결과는 아직 발표 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잘 안될 것 같다.(라고 며칠 전에 쓰고 방금 확인했는데 역시 안 됐다.) 사실 모든 서류를 넣을 때 거의 기대하지 않는다. 될 거라는 기대는 한 10% 정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안된다. 결과가 없으니 의미도 없다. 그런 무의미한 구직 활동을 계속해나가는 건 지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차피 안될 건데 대체 이 짓을 왜 해야 하고 있는 걸까? 포기할까? 지방 소도시에 가서 카페 알바를 할까? 자동차로 할 수 있는 배달 알바를 알아볼까? 청소일을 할까?.... 셋 다 허리 때문에 어렵겠다.
구직활동을 한두 달 정도만 좀 쉬어볼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 백만 번도 더 들지만 나랑 경력이 맞는, 자리가 괜찮은, 승산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는 공고가 뜨면 두 눈을 꾹 감고 무시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라 결국에는 또 자소서와 경력기술서를 쓰고, 우편을 보내고, 면접을 보러 전국방방곡곡으로 쏘다니기를 반복하고 마는 것이다. 이번에 일을 다시 구한다고 해도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년 후에 또 이 짓을 해야 하는데 그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지금도 어려운데? 다 때려치우고 절대(절대는 아니겠지만) 안 잘리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시험공부를 할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병원에서 일할까? 갑자기 공부를 해서 미국에서 간호사가 될까? 농사를 지을까?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AI가 거의 모든 걸 다 해주는 세상인데 일은 다 AI 보고 하라고 하고 우리는 생계를 위한 소량의 돈을 지급받으며 각자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쓰기나 연극 만들기나 노래하기나 그림 그리기, 춤추기.... 그런 것만 하고 살면 안 되는 걸까? 정말 안 되는 거야? 왜?!
아 우울해.
나는 웬만하면 우울해지지 않는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데 실직자라는 현재의 신분과 기타 등등이 야기하는 상황들이 이따금 나를 우울하게 한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정말 별거 아니고 작은 일이라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하루의 순간들을 생각해 보는 마인드 컨트롤, 혹은 정신승리를 해보기로 했다. 다음은 내가 지난 1주일 간 하루에 한 번씩 생각해 본, 정말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행복했던 일들이다.
- 면접을 말아먹고 지방 소도시의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집에서 믹스커피를 챙겨 온 것이 기억났다. 기차역 편의점에서 200미리짜리 우유를 하나 사서 타 마셨다. 맛이 기가 막혔다. 그걸 마시는 약 3분간 조금 행복했다.
- 아주 오랜만에 전 회사 동료를 만나 맛있는 걸 먹고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산책길에 너구리도 봤다.
- 엄마 병원에 있다가 옥상 정원에 나가 열 바퀴를 도는데 병원 뒤편에 널찍하게 펼쳐진 밭들과 농가, 오솔길이 보였다. 어떤 건장한 여성분이 나시티를 입고 그 오솔길을 달리고 있었다. 비 온 후 더욱 선명해진 초록색 사이로 달려가는 그분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졌다.
- 그다음 날, 잠깐 짬을 내어 그 길을 걸었다. 징검다리도 건너고, 하천도 보고, 하얗고 우아한 백로가 목에 물고기 한 마리를 담아 날아가는 것도 보고, 밭 한가운데 농막에서 파라솔 아래 쉬고 있는 노인분들도 봤다.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와 빵을 샀다. 천 원짜리 생크림 빵이 의외로 맛있었다.
- 같은 병실에 계신 노인분이 나에게 오더니 "여기 젊은 분 있네!" 하며 반가워하셨다. 누군가에게 문자로 사진을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며 나에게 도와줄 수 있느냐고 하셨다. "카톡으로는 보낼 줄 아는데 문자로 어떻게 보내는 거예요? 카톡만 자꾸 나와. 방금 통화한 사람한테 이거 이거. 이 사진을 보내야 하는데." 노인분이 변명하듯 중얼거리는 사이 문자를 보내드렸다. 노인분이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하셨다.
- 2차 실업급여가 들어왔다.
- 네 번의 시도 끝에 별다방 여름 이벤트 가방 받기에 성공했다.
- 친구 추천으로 산 선크림 겸용 메이크업 베이스가 마음에 든다. 원래 가지고 있는 파운데이션이랑 섞어서 쓰면 톤업도 되고 뜨지도 않고 피부도 좋아 보인다. 바르고 나갈 데도 없지만.
- 병원에서 글쓰기 최소 6 KMN* 단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의외로 성공하고 있다. 글에 별로 진전은 없지만.
*KMN: 번역가 김명남 님이 공유한 작업 시간 단위. 40분 동안 작업을 하고 20분 동안 쉬는 방법. 이걸 6번 하면 6 KMN이다
- 낮에 꽤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핸드폰 앱을 보니 고작 5,000보를 걸었다. 한 때는 2만보씩 걷던 난데..... 밤이 늦어 망설이다가 나가서 병원 근처를 다섯 바퀴 더 돌고 7,000보를 채웠다. 밤공기가 상쾌했다.
- 계속 고열, 미열이 있던 엄마가 오늘은 해열제 없이도 열이 한 번도 안 났다. 대신 혈압이 높아 혈압약을 써야 했지만.
- 짧은 산책을 나가거나 잠에 들려고 할 때마다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데 최근 듣고 있는 게 재밌다. 밀리의 서재에 있는 '100인의 배우 세계문학을 읽다'라는 시리즈인데 배우들이 아름다운 목소리와 분명한 발음, 매력적인 발성으로 세계 단편 문학을 읽어준다. 단편이 끝나고 시작할 때마다 나오는 인트로 음악이 너무 크고 웅장에서 잠을 확 깨워버리는 게 살짝 단점이다.
소소하게나마 행복했던 일을 떠올려보려고 하다 보니 소소하게 불행했던 일(ex. 다크 초콜릿이 할인하길래 사려고 했더니 가격을 잘못 붙여놓은 거였다든가, 옆자리에 입원한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는 할머니가 밤에 하도 소리를 질러서 밤잠을 설쳤다든가, 발·허리 보호용 슬리퍼를 신고 병원 복도를 걷다가 슬리퍼가 바닥에 붙잡혀 허리를 삐끗한 일이라든가)이 머릿속을 자꾸 비집고 들어오려고 했지만, 그런 건 꾹꾹 눌러 마음 어딘가의 저장고로 일단 보내버렸다. 너무 우울해지지 말자. 견디고 있다 보면 엄마도 퇴원하고 글도 조금씩 마무리되고 영화도 진척을 보이고 취업도 하겠지. 그중 하나가 안된다고 해도, 아니 대부분이 안된다고 해도 너무 우울해하지 말자.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냥 대차게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지 뭐 별 수 있겠나. 덤벼라 세상아. 천 원짜리 생크림 소보루빵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