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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니는 게 제일 쉽다.

실직 일기 13. 회사 다니세요? 붙어있으세요.

by 두지

회사 다닐 때는 뭐가 그렇게 싫었을까?


어딘가에 매어 있다는 거 자체가 싫었던 것 같다.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생계를 위해서라지만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출퇴근 시간까지 더하면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준비하고 다녀와서 옷 갈아입고 씻는 시간까지 합치면 아침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그냥 하루 종일, 일주일의 5일을(이따금은 6일을), 일 년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를 다니는 데 소비해야 하다니. 회사에서 하는 일이 너무 즐겁고 나의 자아를 실현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더해 매일 아침 일어나 영혼을 어딘가에 쏙 빼두고 지옥철에 몸을 욱여넣는 것. 그 전날 마신 술의 숙취가 풀리지 않아 계속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것. 팀장의 멍청한 소리를 입 꾹 다물고 들어주는 것. 대체 왜 하는 건지 아무도 모르는 회의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앉아있는 것. 정말 별로인 인간들이 승승장구하는 꼴을 지켜보는 것. 괜찮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주말에 회사 전화를 받는 것. 퇴근 후 회사 전화와 카톡 연락을 받는 것. 퇴근을 했지만 회사 일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것. 내가 너무 못하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받는 것. 내가 너무 잘하는 것 같은데 망할 회사가 인정을 안 해줘서 억울한 것.


그렇게 싫고 지겨운데 왜 다녔을까? 그것도 십 년이 훌쩍 넘게 꾸역꾸역.


첫째,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재능이나 기술이 있다면, 그리고 그 수준이 밥벌이가 될 정도로 특출 나다면, 그리고 재능과 기술을 가진 그 분야가 이 사회에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분야라면 회사 따위 안 다녀도 되겠지. 사업이나 투자 수완이 뛰어나거나 나 대신 생계를 지탱해 줄 사람이 있어도 그럴 테고.


둘째, 불안해서.


예전에 김연수 작가의 글에서 이런 걸 읽은 적이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보를 제작하는 회사인가에 들어갔는데, 일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이렇게 힘들 바에는 차라리 이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내 기억에 의존한 부분이라 사실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가? 못한다. 물론 해봐야 아는 거겠지만 김연수 작가만큼 (당연히) 재능이 있지 못하고, 그래도 나에게 한 번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모든 걸 작파하고 글쓰기에 전념해 볼 만한 깡도 없다. 나에게 2년의 기회를 준다고 하면 그동안 돈을 벌지 못할 텐데 2년 정도야 모아둔 아주 작은 돈으로 연명한다고 쳐도 2년 후에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그건 굉장히 녹록지 않은 일일 것이다. 2년 간의 공백을 뭐라고 설명할 건데. 그리고 나이도...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다 불태워버리자!라는 마음으로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셋째, 회사 다니는 게 제일 쉬워서.


최근 엄마가 입원해서 병원 생활을 했다. 간병은 당연히 백수인 내가 담당했다. (백수 아닐 때도 내가 담당했지만.) 올해만 세 번째다. 우리 엄마는 콧줄 소변줄을 주렁주렁 달고 있고 깨어있는 시간도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간호간병통합 병동이었어서 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도 힘들었다. 병원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우울하고 힘 빠지고 힘이 든다. 우리 엄마 같은 환자나 간호사, 조무사분들에 비하면 뭐가 힘들겠느냐만, 분명한 건 회사 다니는 것보다는 힘들다는 거다.


내가 또 하나 아는 거. 회사 다니는 건 회사나 가게를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덜 힘들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장사를 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는 업종을 식당으로 바꿨는데 그때 정말 정말 고생을 많이 하고 장사는 장사대로 안 됐다. 장사가 안 되는 가게라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장사가 안 돼도 새벽부터 나가서 장사 준비를 해야 하고 혹시나 들어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린다고 새벽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 쉬는 날도 없다. 우리 엄마 아빠는 하루도 안 빼고 가게를 열었다. 그렇게 일해서 돌아온 건 빚과 병뿐이었다.


프리랜서 일을 한다고 하면? 회사 다니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불안할 테다. 분야와 재능과 운과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꾸준한 돈을 정기적으로 벌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 거다. 예전에 영화제에서 통역 업무를 하는 분과 알고 지낸 일이 있다. 웬만한 국내 영화제에서 유명 감독 GV 통역을 하고 해외 영화제 출장도 다니는 분이셨다. 조금 친해지고 나서 조심스레 수익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백만 원 정도라고 하셔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 백만 원이라는 것도 꾸준한 수입이 아니고 들쭉날쭉 할 거고, 일도 들어올 때 안 들어올 때가 있을 거고, 일을 한 번 거절하면 고객을 잃을까 봐 마음 편히 쉬기도 어려울 거다.





그리고 다닐만하니까 다녔다. 월급이 아무리 적을지라도 꼬박꼬박, 일정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평소에는 미친 듯이 벗어나고 싶을지라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 또한 알게 모르게 안정감을 주었을 거다. 거기에 더해 가끔 마음 맞는 동료를 만나 친구를 사귈 수도 있고, 그렇게 사귄 친구와 알찬 점심시간을 보내거나, 회의를 빙자해 수다를 떨거나, 사무용품 구매를 빙자해 외출을 하거나, 끝나고 한 잔 하며 놀 수도 있다. 이 밖에 이따금 연차를 내거나 조퇴를 낼 때 얻는 해방감, 연휴를 맞았을 때의 짜릿함, 내가 기획한 일이 성과를 냈을 때의 성취감, 몇 달 동안 준비한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의 후련함, 팀장을 욕하며 으쌰으쌰 다지는 팀워크, 회사에서 온갖 인간군상을 보고 겪으며 얻게 되는 인간에 대한 짧은 성찰, 출퇴근만 해도 달성하게 되는 하루 7,000보 이상 걷기 목표. 아, 그리고 지금 같은 찜통 더위에 제일 중요한 거.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나온다.


그래. 장점도 있으니까 다녔지. 좀 절충하면 안 될까? 주 3-4일이나 주 20시간 근무 이런 게 얼른얼른 확산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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