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일기 15 실직한 내가 부끄럽니?
일요일. 고모집에서 친척들이 다들 모인다고 해서 아빠를 차로 태워다 줬다. 나는 빨리 다시 돌아가 엄마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잠시 올라가 인사만 드리기로 하고 아빠와 함께 현관문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사실 그것도 하기 싫었는데 화장실에 가야 해서 '인사드리겠다'라고 예의 바른 척해봤다.) 잠시 기다리자 1층으로 거의 20년 만에 보는 사촌 언니가 나왔다. (30년 만일 수도 있다. 기억도 안 난다.)
"삼촌 오셨어요?"
언니가 나는 거들떠도 안 보고 아빠를 반갑게 맞았다. 내가 인사하니 언니가 나를 쳐다봤다.
"어머, 두지구나? 어머 진짜 오랜만에 본다!"
언니가 호들갑을 떨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사는 데는 어디냐, 남편은 뭐 하냐, 부모님 댁에는 주말마다 오는 거냐, 힘들겠다.
"직장 다닌다며."
"네? 네."
소식이 업데이트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언니가 모른다는 건 고모들이 모른다는 거고, 고모들이 모른다는 건 아빠가 말은 안 했다는 거다. 정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정할 경우 이어질 질문(퇴사 사유, 향후 계획 등), 아빠의 부끄러움, 이후 이어질 고모들의 뒷담화(쟤는 일도 안 할 거면 아빠 집에 붙어서 살림 좀 할 것이지! 쟤는 일도 안 하는데 애를 왜 안 낳는대? 등)를 굳이 감당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사실을 밝히는 걸 아빠 역시 원치 않을 것이다. 나는 가버리고 아빠 홀로 남아 고모들의 질문 폭탄과 평가, 비난 등을 감당해야 할 텐데 그건 안되지.
"어디 다녀?"
"아 저기. 서울 ㅇㅇ 쪽이요."
어떤 급의 회사에서 어떤 급의 일을 하는 지를 알고 싶어 물은 것일 테지만, 그것까지 소상히 거짓말을 하면 너무 디테일한 거짓말이 될 것이었다. 내가 어디 어디라고 말한다고 해서 언니와 고모들이 그 회사에 전화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도 아니겠지만, 나가지 않은 지 수개월이나 지난 회사를 다닌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너무 큰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바보인 척, 못 알아들은 척, 아무 지역이나 말했고 기특한 엘리베이터가 마침 10층에 도착해서 대화는 끊겼다.
아빠도 사실은 부끄러워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부모님 댁에는 요양 보호사님이 오신다. 하루에 4시간, 주 5일. 보호사님이 나와 처음 만난 건 내가 아직 백수가 되기 전이었고,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셔서 어디 어디에서 일한다고 말씀드렸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백수가 되었고 부모님 댁에 더 자주 가고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평일에도 머물렀다. 그러다 보니 보호사님도 더 자주 보게 되었지만 보호사님도 눈치가 있어서 직장에는 이제 안 나가느냐고 묻지는 않으셨다. 그러다 멀리 제주도까지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한동안 보이지 않냐 보호사님이 아빠에게 나의 행방을 물었단다.
아빠: "제주도 갔어요."
보호사님: "왜요?"
아빠: "뭐 그냥. 놀러."
아빠가 내가 면접 보러 갔다고는 끝까지 안 하더라고, 보호사님이 나에게 일러바쳤다. 나는 그 뒤로도 취직이 되지 않아 부모님 댁에 가서 평일이고 주말이고 계속 머물고 있다. 눈치가 백 단인 보호사님은 다행히 면접이 잘 안 되고 있는 거냐고 물어보지는 않으신다.
딱히 친하지 않은 지인에게 카톡이 왔다.
- 요새 바빠?
느낌이 왔다. 내가 실직한 소식을 들은 거다. 며칠 전에 만난 다른 지인에게 내가 실직했다는 사실을 알렸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소식은 다른 지인들 귀에 들어갔을 거고 동정 여론이 퍼졌을 거고 일부는 속으로 고소해하는 이도 있을 거였다. 딱히 자주 연락하지도 않고 만나는 건 더 드문 관계들이라 상관은 없다만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백수이고 한가하니까 자주 만나자고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 내가 가장 원치 않는 상황이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과거의 인연을 만나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하다 영혼이 털린 채로 집에 돌아가는 것. 막아야 한다. 사실을 말할 수 없다. 내가 백수라고 내 입으로 인정해서는 안된다.
- 응 나이가 드니 점점 바빠지네?
사실이었다. 내가 바쁜 것도 사실이고 나이가 큰 원인이 되는 온갖 이슈(ex. 부모님 돌봄, 병원 방문 등)로 점점 더 바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동창은 지지 않았다. '일'이 바쁘냐고 물었다. 나도 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로 챙길 게 많다고 넘겼다.
- 휴직하고 쉬고 있거든. 이럴 때 보고 싶었는데.
지인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렇다면 더 이실직고할 수 없었다. 네가 휴직이고 나는 실직이면 우리에게 남는 건 시간이고 그럼 결론은....
- 그래 언제 한 번 보자~
라고 영혼 없는 메시지를 보내자 지인이 언제 언제 누구랑 만날 건데 시간이 되느냐고 물었다. 하필 다 평일이었다. 역시, 아는 거다! 그때는 시간이 안된다며(사실이었다. 나는 매우 바쁜 백수다.) 아쉬움을 표하고 대충 대화를 끊었다. 미안하다... 내가 사회 부적응자라....
에피소드를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거 말고는 실직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위의 예시도 사촌언니한테 한 것만 거짓말이고 나머지는 굳이 사실을 밝히지 않은 거라 '거짓말'이라고 하기도 뭐 하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실직했다고 사실대로 말한다. 이렇게 '실직 일기'도 쓰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내 실직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 내가 왜? 내가 실직한 건 내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내가 일을 못해서도 아니고 남들이 나보다 더 일을 잘해서도 아니다. (설사 그게 실직 사유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다.) 그냥 시스템이 그지 같아서이다. 계약직, 비정규직을 양상하는 이 사회가 문제인 거다. 자본주의가 문제인 거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바쁜 자'가 강자처럼 보인다. 바쁘다는 건 '쓰이고 있다'는 의미이고 쓰이고 있다는 건 ‘쓸모 있다’는 의미일 수 있으니까. 나는 쓰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사실이 부끄럽지는 않다. 누가 안 써주면 내가 나를 쓰면 된다. 쓰이고 있지 않은 만큼 내가 나를 더 자유롭게 쓸 시간이 많아진 거다. 그렇다. 나는 자유롭고 당당한 (그리고 돈 없는) 백수다!
쓰이고 있지 않으니 쓸모없냐고? 그건 모르겠다. 그리고 좀 쓸모없으면 어때? 나는 쓸모없는 사람도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백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