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일기 17]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 지금, 여기
늘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꿔왔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다단계에 빠진 적이 있다. 두 분이 가게를 하던 시절이었다. 가게 안쪽 공간은 다단계 상품 설명을 위한 화이트보드와 제품들로 점점 점유되어 갔고,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모여 어떤 설명회 같은 것을 여는 시간도 많았다. 특히 아빠는 매우 신이 나 있었다.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사라는 ‘현실’은 너무 참혹했다. 장사라는 것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님이 결국 가게를 접은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잘 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돈 안되고 힘만 드는 장사 따위 눈에 들어왔겠는가? ‘좋은 제품’을 팔아서 ‘루비’가 되고, ‘에메랄드’가 되고, ‘다이아몬드’가 되어 수 억을 벌 수 있다는데.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데. 여기가 아닌 저기, 이 시궁창이 아닌 저 황금벌판에서 살 수 있다는데.
어느 날은 가게 진열장에 기대어 놀고 있는데 아빠가 카탈로그를 들고 와 나에게 보여줬다. 카탈로그의 종이 재질은 꽤 고급이었다. 반짝거리고 두꺼운 종이에는 빨래 세제며 샴푸, 시리얼, 시계 등 도저히 종목을 종잡을 수 없는 제품들의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카탈로그를 천천히 넘기며 아빠가 말했다.
"아빠가 이제 성공해 가지고, 돈 많이 벌 거야. 돈 많이 벌면 우리 두지 이런 최고로 좋은 것만 사주고, 먹고 싶은 거 다 사주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어렸던 나는 신이 났다. 정말 곧, 조금만 기다리면 아빠가 말하는 그대로 될 것만 같았다. 인생이 이게 다 일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 가족만 이렇게 살라는 법은 없지 않겠는가? 아빠 말대로 되면 가게 뒷방이 아닌 다른 애들이 사는 집 같은 아파트나 빌라로 이사도 가고, 안테나를 붙잡지 않으면 선이 마구 겹쳐서 나오는 티브이 대신 크고 선명한 티브이로 바꿀 수 있고, 외식도 자주 하고, 한 번도 안 가본 가족 여행도 다니고, 남들처럼 차도 하나 장만하고, 엄마의 "돈 십원 한 장도 없다"는 소리나 "가게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들어온다"는 소리도 안 들어도 되겠지.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다단계는 망했고 우리 엄마 아빠도 망했다. 내가 워낙 어렸어서 자세한 사정까진 모르지만 빚도 엄청 졌을 거다. 지금까지 친인척 관계나 친구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걸로 보아 다단계로 흔히들 야기되는 인간관계 파괴까지는 가지 않았던 것 같지만.
하지만 아빠의 '한탕주의'는 계속됐다. 업종을 바꿔 식당을 시작할 때도 본인이 'ㅇㅇ동'의 식습관을 싹 바꿔버리겠다며 한껏 부풀어있었고, 중간에 메뉴를 한 번 바꿨을 때도 '이건 된다'며 자신만만했다. 아빠를 닮은 어린 나도 거기에 영향을 받았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말 언젠가는 아빠의 말처럼 될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 가족도 언젠가는, 머지않은 미래에, 아마 조만간에, 돈을 좀 벌어서 남들 같은 '정상' 수준으로 올라갈 거라고, 그래서 더 이상 밥반찬으로 김치만 올라오지 않을 거고, 친구가 같이 학원을 다니자는 데 돈이 없어서 거절하지도 않을 거고, 돈 걱정하는 엄마의 속상한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믿음을, 마음속 깊숙한 어딘가에 늘 간직하며 살았다.
이윽고 식당도 망했다. 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게를 내놓은 지 오래였지만 나가지 않아 가겟세만 까먹으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나와 오빠는 성인이 되었고, 가게를 정리한 후 아빠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취직했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다. 거기서 10여 년을 살다 작년에 상태가 훨씬 나빠진 엄마와 다시 수도권으로 올라왔다.
올해 초. 아빠가 ‘다시’ 입원했다. 건강에 큰 문제는 없던 아빠마저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 거리는 신세가 된 지는 좀 되었다. 엄마를 돌보던 아빠가 입원하게 되었으니, 돌볼 사람이 없어진 엄마를 할 수 없이 요양병원에 며칠 맡기고 보호자 자격으로 아빠 곁에 머물렀다. 보호자 침대에 멀뚱히 앉아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옛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고모들은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보내라고 난리인데 자기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엄마 친구들이 작년까지도 연락 주면서 엄마 먹을거나 돈을 보내주곤 했는데 엄마가 그만큼 좋은 사람, 좋은 친구였기 때문에 그런 거다. 나는 너희들한테 해준 거 하나도 없는데, 너희들이 이렇게 잘 커준 건 내 덕은 하나도 없고 엄마가 신경 쓰고 엄마가 잘해서 그런 거다. 가게 할 땐 장사도 안 되고 고생스러웠는데 뒤돌아보면 너희들 키우면서 엄마랑 장사하던 그때가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구나, 내 생애 제일 행복했던 시간들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좀 많이 아파서 응급실에 갔었던 터라) 자기가 죽기라도 할 것 같아서 겁이 났었는지, 갑자기 무슨 유언이라도 하듯 저런 말들을 쏟아내며, 내 앞에서 한 번도 쏟은 적 없는 눈물 콧물을 훌쩍이며 울먹이는 터에 나도 눈물 콧물을 빼느라 병상 휴지통이 젖은 휴지로 꽉 찼었더랬다. 어렸을 때는 ‘언젠가’ 우리도 ‘잘 살게 될 거’라는 아빠의 말을 믿었는데. 나이가 든 지금의 나는 ‘돌아보니 그때가 참 좋았다’는 아빠의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병세 때문에 우울해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남편이 내게 해주는 말이 있다.
“알잖아. 지금은 엄청 힘들게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걸.”
안다. 너무나 잘 안다.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아빠가 그리워하는, 자기 생애 가장 행복했었다는 오빠와 내가 어렸을 적의 시간들을. 엄마가 걸어 다니던 때를. 휠체어를 태워 함께 밖에 나가던 때를. 엄마가 그토록 좋아하는 먹을 것을 입에 넣고 씹고 삼키며 “맛있다”라고 좋아하던 때를. 섬망 증세로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뭐라도 말을 하던 그때를.
그리고 안다. 아무리 힘들고 바닥을 치는 것 같아도 지금을 그리워할 거라는 것도. 실직을 하고, 면접에는 수도 없이 떨어지고, 돈은 없고, 엄마는 또 입원해 있고, 엄마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아빠는 대장 내시경을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나를 화나게 하고, 미래는 불안하고, 아무도 나를 뽑아줄 것 같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고, 갈피를 못 잡겠고, 글은 안 써지고, 이렇게 가는 게 맞는지 헷갈리고, 나이는 들어가는 데 내 위치는 몇십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것 같고, 엄마의 끙끙댐에 밤새 잠 못 이루는 지금을.
앞으로 좋은 일이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직장을 다시 구할 수도 있고, 그게 좋은, 예를 들어 돈을 많이 주거나 안정적인, 혹은 보람을 주는 직장일 수도 있다. 돈을 많이,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넉넉하게 벌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새로운 좋은 인연이 생길 수도 있다. 글쓰기나 영화에 성과가 있을 수도 있다. 이따금 행복한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인생은, 어떤 면에서는, 매일 조금씩 나빠진다. 나는 늘 무언가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쇠퇴하기 때문이다. 매 순간 젊음을, 건강을, 시간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상실은 피할 수 없다. 인생의 어느 시기를 넘기면 얻는 것보다는 잃어가는 것이 더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 지났던 길을 되돌아보며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아빠와 함께 카탈로그를 보던 어린 시절의 나와 30년이 지난 나는 다르다. 그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꿔왔던, 조금 더 돈이 많은, 풍족한, 행복한 환경을 동경하던 나는 이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실직을 받아들이고, 불안한 미래도 받아들이고, 바닥을 쳐 가는 통장 잔고도 받아들인다. 흩어지고 사라진 인연들을 받아들인다. 실직 상태는 고용 상태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부모님의 아픈 상태가 건강한 상태가 된다거나 고령의 부모님이 다시 젊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인생의 모든 것이 ‘더 나은 미래’가 될 리도 없고 그렇게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실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아는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 시간들이, 상황들이, 언젠가는 너무나 그리워하게 될 순간들이라는 걸.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내가 언젠가 꿈꿔왔던 미래일 수 있다. 회사에 나가지 않고, 부모님 곁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하루에 4시간 이상은 글쓰기와 영화 제작에 꼬박꼬박, 잘 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나름 기를 쓰고 성실하게 쏟아붓고 있는 이런 시간. 이 시간들이 모여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을 거다. 계속 무언가를 잃어가긴 하겠지만, 괜찮을 거다. 앞으로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가는 수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