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금요일은 비몽사몽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00-22

by 두지

오늘의 금요일은 비몽사몽이다. 오늘은 원래 즐겁고 반가운 금요일이 되었어야 하는 날이다. 친구 집에서 오랜만에 셋이 모이기로 한 날이니까. 이틀 전 친구 하나가 발이 다쳤다고 연락이 와서 약속을 파했는데, 오늘을 겪고 나서 집에 이렇게 누워있으니 역시 오늘은 날이 아니었나 보다 싶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두피와 목이 근질근질했다. 건조한가. 아침에 덜 씻었나. 살짝살짝 긁었다. 채팅으로 남편에게 온몸이 가렵다고 불평했다. 그러고 있는데 느낌이 안 좋다. 보통의 가려움이 아니다. 목 아래를 쓱 만져보니 오돌토돌하다. 화장실에 가서 셔츠를 벗어봤다. 어깨에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런.


아주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 일단 일을 했다. 아니 일을 한 건 아니고 평가 시즌이라 ‘자기 평가’라는 걸 썼다. 일 년 동안 내가 한 일을 쓰고 얼마나 잘했고 왜 어떻게 잘 했다는 건지 쓰는 이상한 평가다.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들여대 가며 자세히 썼다. 평가서만 보면 지구를 구한 사람 같다. 물론 내가 아무리 잘 써봐야 평가는 이미 팀장의 마음속에 있겠지. 몸이 가려우니 제대로 머리가 안 돌아가면서도, 가려움증이 뭔가 사람을 마구 재촉해대는 느낌 같기도 해서 어쨌든 빨리는 썼다. 병원에 가기 위해 오후 5시에 회사를 나와 가까운 내과로 갔다. 병원은 2년 전 두드러기 때문에 찾았던 내과를 연상시켰다. (2년 전에도 두드러기가 났다. 나는 두드러기가 자주 나는 편인 것 같다.) 작은 실내. 두 명의 여자 간호사. 한 명의 남자 의사. 의사는 모니터 앞에 앉아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어봤다. 두드러기가 나서요. 두드러기가 자주 나는 편인가요? 글쎄. 다섯 번 이상 났나요? …. 평생이요? 네, 뭐 지금까지. 뭐 세네 번 난 것 같네요, 식중독 걸리면 두드러기가 나요. 그건 식중독이 아니에요. 구토하고 그래야 식중독이지. 주사 한 방 놔드려요? 아니 약만 먹을래요. 뭐 이런 대화를 했다. 약 2분 간의 대화 동안 의사는 나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모니터만 주구장창 바라봤다. 2년 전에도 그랬다. (같은 병원이 아니다) 의사들은 왜 사람을 옆에 두고 모니터만 보며 이야기를 할까. 언뜻 보면 나를 너무 좋아해서 수줍어서 쳐다도 못 보는 남자의 모습인데, 내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았으니 그럴 리는 없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해서 약을 지으며 약사에게 물었다. 술 먹어도 되냐고. 술을 먹으려면 아예 오늘은 약을 먹지 말란다. 간지러워서 병원에 온 건데 그럴 수 있나. 약을 먹고 술은 안 먹었다. 일본 라면을 먹으러 갔는데 기어코 500 한 잔을 시킨다. 나쁜 놈.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 위층으로 올라와(다락이 있다) 누워 이 글을 쓴다. 약사가 약이 좀 졸릴 거라고 했다. 오늘은 빨리 자겠지. 남편 놈은 아래층에서 새로 산 야채 커터기로 야채를 갈며 지 먹을 멋들어진 안주를 만들고 있다. (기어코 와인을 한 병 샀다) 아, 술병 나겠네. 술 먹고 싶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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