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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Dec 10. 2021

전 직장동료를 만났다

"책임님, 뭐하고 지내요? 우리 한번 만나요. 그냥 수다 떨고 싶어서."


전 직장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는 책임이라는 직급을 달고 퇴사했으므로 회사로 연을 맺은 인간관계에서 나는 여전히 책임님으로 불린다. 팀장 직급을 달면 팀장님일 테고, 임원이면 영원히 임원으로 불릴까. 되어보지 않은 직급이라 알 수 없지만, 가끔 전 직장동료들로부터 책임님이라고 불리면 묘한 느낌이 든다.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런 느낌이다.


전 직장동료가 퇴사한 나를 만나자고 연락하는 경우는 대부분 두 가지다. 회사 밖으로 나올 것인가(퇴직 혹은 이직)에 대한 고민이나 평가에 대한 불만. 연락한 동료는 후자였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번에 평가가 안 좋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상반기도 안 좋았고, 하반기도 안 좋았으며 그래서 종합평가가 바닥이고, 내년도 인센티브는 없는 것으로 되었다고. 위로해주었다.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 갔기 때문에. 그 동료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는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회사라는 것이 40대 중반이 넘어가면 일로만 평가받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회사에서는 기술 시험 제도를 마련했는데, 기술직과 전혀 관련 없는 업무자도 자바나 SQL 같은 기술시험을 치러야 했다. 문제는 그 기술시험을 평가에 반영하고, 연봉에 반영된다는 사실이었다. 몇 년 전부터 예고했고, 너도나도 퇴근 후, 혹은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모여서 스터디를 했다. 평가와 연봉과 연동되므로 기를 쓰고 했다. 그중에서 특출 난 사람들은 핵심인재라고 해서 엑스퍼트 이름을 붙여주고, 연봉을 높여주었다. 그녀나 나처럼 시험에 취약하고, 일개미로 성실한 사람은 절대 빛을 볼 수 없는 제도였다. 일은 적게 하고, 프로그램을 현업에서 사용하며, 공부할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시험 점수가 좋았다.


그녀가 이번에 평가를 낮게 받은 이유는 시험 점수 때문이었다. 생전 개발언어라고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공부하려니 어려울 법도 한 데다 업무가 너무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여름휴가도 쓰지 못했다고 했다. 거기에 워킹맘이면 뭐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핑계라면 핑계일 수도 있다. 어떤 동료는 주말에 친정에 아기 맡기고 도서관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데 시험을 넘어선 어떤 동기를 유발하기엔 난이도는 너무 높고, 시간은 너무 없었다.

© breakslow, 출처 Unsplash

직장동료와 차를 타고 이동해 근사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옛날이야기부터 최근의 조직변경까지, 퇴사 후의 생활과 앞으로의 미래까지,  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기술공 부하라고 닦달하고, 본인도 열심히 하던 어떤 팀장은 면직 팀장이 되었고, 속에 능구렁이 10마리는 들어앉아 있다고, 악명 높았던 어떤 임원은 매출 실적을 달성하지 못해 짐을 쌌다고. 연말이면 익숙히 벌어지는 풍경에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누군가는 회사를 떠났다.


우리는 모두 익히 알고 있었다. 우리의 미래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언젠가는 짐을 싸서 떠날 것이라는 걸. 그러면서도 기술시험에 매달리고, 낮은 평가에도 며칠 끙끙 앓다가 다시 출근을 반복한다.


서로 근황을 주고받다가 동료가 이야기했다.


"책임님, 너무 잘 살고 있다. 나는 혹시나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을까, 우리 같이 일하면 어떨까, 그런 이야기 나누게 될 줄 알았어요. 지금 너무 편안해 보여요."


"회사 밖에 나와서 알았어요. 저는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먹고 살만큼만 되면 제가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게 사는 느낌이 나요. 회사에 있을 때, 대리 과장 시절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월급이 적은 줄도 모르고 죽어라 야근하면서 일했지요. ㅎㅎ"


우리 회사는 대기업이라고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월급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신임 회장이 부임하고 1년 만에 전 사원의 연봉 테이블이 갑자기 높아졌는데(연봉협상 시기도 아닌데), 그 이유가 월급이 이렇게 적었냐고, 놀라면서 올려줬다는 후문이었다. (그 이전에 무수한 젊은 인력이 1~2년 만에 업무만 익히고 이직했다. 연봉 때문이었다.) 그렇게 월급이 작은 줄도 모르고 십몇년간 신나게 일한 바보가 우리라면서 웃었다.


지금도 뭐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여전히 바보다. 지금 남편과 같이 일하면서 내가 받는 월급은 이전 회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있다. 게다가 시간의 주인이 나다. 내가 업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으며, 회사가 커가는 재미 또한 있다.


나랑 수다 떨면서 직장동료는 기분이 좀 풀어진 것 같았다. 직장동료는 이제 직장생활을 해온 시간보다 할 시간이 적다는 것을 인지하고 본격적으로 퇴사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렇죠, 언젠가, 누구나 퇴사는 하는 거니까. 준비해야죠." 내가 응수했다.


사실 퇴사하고 보니, 회사 밖의 생활도 살만하더라. 윤태호의 만화 <미생>에 보면 회사 안은 전쟁터,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나는 사실 이 문장은 <미생> 만화의 옥에 티 같다.


나는 회사 안도 밖도 전쟁터고 지옥처럼 느껴진다. 먹고살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과 경쟁이 오가는 건 어디 가나 똑같다. 회사 안에서 편안하게 살았으면 회사 밖은 지옥처럼 느껴지겠지만, 회사 안에서도 전쟁터처럼 살았으면 회사 밖도 다를 바가 없다. 사나운 인간들도 많고, 남의 아이디어 베껴서 자기 일하는 사람도 어디 가나 있고, 내가 1등을 점유했다가도 뺏기기 쉽고, 진상 고객들도 많다. 진상 동료, 진상 상사가 있듯이.


모든 건 물 흘러가듯 흘러가고 다가오는 것 같다. 퇴사도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다가오고 그걸 물 흐르듯 받아들이려면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지금 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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