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걸까?

by 이틀

자괴감이나 극단적인 생각이 별로 들지 않으면서, 우울증이 없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이런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궁금해졌다.


얼마전 있었던 일이다.

아이의 면접 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남편과 같이 면접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아침부터 긴장했고, 신분증과 필기도구를 챙겼는지 확인하고 입실시간에 늦지 않게 출발했다. 차에 타자마자 나는 핸드폰을 꺼내 네비게이션을 켰다. 어차피 그가 어디로 가는지 나에게 물어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여정은 늘 내가 목적지를 정하고, 그가 묻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필이면 출근시간대랑 겹쳐서 차가 많이 막혔다. 집을 출발해 한 10분 정도 갔을 때, 남편이 핸드폰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게 핸드폰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거래처에서, 고객에게서, 물류센터에서 연락이 올 것이기때문이다. 아이의 면접이 끝날때까지 4~5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핸드폰이 없으면 그날 일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뒷자석에서 매우 불안해 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며 아이를 진정시키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출발할 때 내가 네비게이션을 켰다면 바로 알 수 있었을텐데, 마누라가 네비를 켜서 몰랐네."

그 말을 듣고 내 입에서 순간적으로 좋지 않은 말이 튀어 나갔다.

"그럼 내 탓이란 말이야?"

남편이 당황하며, "그걸 왜 그렇게 받아들여? 그냥 잊어버렸다는 상황을 이야기 한건데?"

아이 면접 시험장으로 향하던 날이라 더는 왈가왈부 하지 않았다. 그냥 참아도 될만큼 내 감정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약의 효과인 듯 하다. 아마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한 때였더라면 면접날이고 뭐고 눈에 보이는 것 없이 날뛰었을수도 있다.


이후로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내탓이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남편의 남탓이 문제인걸까? 아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 순간에 그렇게 감정에 몰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남편의 말이 내 탓이고 말했더라도 그의 말투가 비난조가 아니었고 그냥 혼잣말 하듯이 이야기 했던 것이니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가 싸우자고 덤비는 것이 아니었으니 반응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다행히 약을 먹고 감정의 기복이 널뛰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고, 그날은 평화롭게 내려가 아이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올라올 수 있었다. 그날의 기분은 평온했다. 그러나 의문이 하나 남았다. 내가 남편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은 것은 약의 효과 때문이었다. 억지로 참은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기분과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 즉 우울증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약을 먹지 않고도 이렇게 평온한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동시에 약을 먹지 않고도 이렇게 평온한 기분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어땠을까? 감정적으로 에너지 쓸 일이 없으니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를 충실히 이루어 나갔을 것이다. 공부를 잘 했을 것이고, 대기업에 취업을 했을수도 있고, 사업을 이루어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 인생, 나 말하는 거잖아? 물론 사업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하는 것이지만, 그의 사업이 지금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건 내 역할도 있었으니까. 물론 어딘가에 대서특필할 만한 큰 매출을 일으키거나 중소기업으로 키워내진 못했지만, 사업해서 먹고 살고 있으니 충분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항상 편안한 인생은 없듯이 약을 먹지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감정의 기복은 겪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와 싸울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배신을 당할 수도 있고, 서운할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을 조각하고, 단단해지며, 자신의 인생을 그려가는 게 인간이니까.


비록 약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괜찮다. 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다행 아닌가. 이제 손목을 긋는 상상은 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맞다. 다행이다.


오늘 하루, 다행으로 사는 것. 오늘 하루, 정상인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에겐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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