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너무 쉽게 겁먹지는 말자
아이를 낳는다고 출산휴가 들어간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복직을 앞두고 있네. 참 세월 빠르다. 일 중독자처럼 일하던 네가 아이를 낳는다는 게 참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말이야. 아이를 낳는다는 건 정말 축복이야. 그치? 그런데, 얼마 전 너의 페이스북에서 복직을 한 달 남기고 아이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글을 남겼어. 3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나도 참 많이 안타까웠어.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복직 전에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에서 고민을 하지
나 또한 아기를 재워놓고 밤을 새워가며 육아맘 카페에서 폭풍 검색으로 유사사례를 찾고, 비슷한 엄마들의 고민을 듣다가 날이 새곤 했으니까. 너의 마음이 안타깝게 느껴졌어. 그런데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답은 없더라. 그냥 나의 선택만 있을 뿐.
오늘 이 편지는 너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보다 혹 네가 겪을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냥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이야. 그냥 편하게 들어줬으면 좋겠어.
나는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생각했었어. 복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이가 너무 이뻤고, 3년은 엄마가 아이를 봐줘야 한다는 유행처럼 번지던 말에 내가 일하고 싶지 않은 핑계를 가져다 붙였지. 하지만, 곧바로 둘째를 임신하고 다시 육아휴직을 하면서 알았어. 나는 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때론 지치고 힘들어서 투덜대긴 했어도 일이란 나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었지.
어쩌면 육아에서 도망치기 위한 궁색한 변명이었을지도 몰라. 육아는 정말 답도 없고, 그렇다고 누가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는 것도 아니었어. 아이는 내가 만난 최고로 어려운 고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은 성장과 배움이 있어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데, 아이를 통해서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보다 일을 통해서 나를 성장시키는 것을 더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던 거야. 너무 힘들고 답답해서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며 짜증 내는 횟수도 늘고, 우울증도 깊어서 결국은 조기복직을 했지.
전업맘이냐 워킹맘이냐의 기로에서 중요한 기준점은 바로 '나'더라고.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깨닫고, 나와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을 했고, 복직을 하게 되었어. 너무 이기적인가?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진리 같아. 복직 후에 나는 아이를 좀 더 많이 사랑한다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복직 전에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사랑보다는 미안함이 더 컸다고나 할까? 왜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 걸까 수없이 고민했거든.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워킹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야. 내 동기 중에는 복직을 하지 않고 전업맘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있어. 얼마 전에 만났는데, 지금도 매우 행복해하더라고.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이 너무 소중하고 즐겁다면서. 그 친구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아이가 커서 기관에 다니게 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육아를 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았어.
여성창업지원금을 받아서 지금 다른 일을 준비 중이야. 그 친구는 그냥 늘어지는 시간이 아닌 육아를 통해 자신만의 시간으로 만들어 갔지. 워킹 맘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면 이해가 갈까? 회사에서는 억지로 정해진 규칙과 시간들을 지키게 만들지만, 전업 맘인 그 친구는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새벽 기상과 독서, 영어공부 등 스스로 경력개발을 해 나갔거든. 예상하건대 그 친구가 복직을 했더라면 아마 회사에서도 엄청 잘 나가는 인재였을 거야.
일단 복직을 결정하고 나면, 다가오는 현실이 조금 두렵긴 해. 아이 기관 적응에서부터 시터 고용, 단유 준비도 해야 하고, 혹은 양가 도움을 받을 경우 용돈을 얼마 드려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하고, 혹시 아이가 아프거나 응급사황 일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한 가지 준비할 때마다 수만 가지 걱정이 따라오더라. 원래 이런 성격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되고 나니 걱정을 사서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모든 사람의 인생이 다르듯 모든 사람의 현실은 다르고 그래서 선택도 다를 수밖에 없어. 그것을 온전히 나 혼자 결정하고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참 외롭고 두렵더라. 누가 정답 좀 알려달라고 매일 머리를 싸매고 기도했으니까.
내가 복직한 해는 겨울이었는데 특히 비 오거나 눈이 오면 출근하기가 참 싫었어. 보드랍고 꼼지락거리는 아이를 안고 있자면 따뜻한 이불속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싶은데… 엄마인 나도 출근하기 싫은데… 곤히 잠든 아이를 알람에 맞추어 깨우고, 잠이 덜 깬 아이를 차가운 공기를 헤치며 바쁘게 어린이집에 넣어주고 오는 출근길은 그냥 눈물바람이지. 거기에 아이까지 아프다면 일을 때려치우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복직을 앞둔 네가 미리 겁먹으려나? 겁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닌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을 유지해오는 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어. 때론 조직이 싫고 상사도 싫지. 출근하기 싫은 날도 있고. 하지만, 그런 것들을 겪어 넘기고 난 뒤에 오는 행복의 총량으로 봤을 때
나는 일을 해야 행복하더라고.
직장을 다닌다는 건 매달 받는 월급 이외의 또 다른 무언가가 있어.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노하우, 뜻이 잘 맞는 인간관계들, 문제 해결 능력, 일에 대한 노하우, 경력 등등 셀 수 없이 많아. 직장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깨어있는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배우는 또 다른 학교 같은 곳이야. 돈으로는 결코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지.
워킹맘의 길이 물론 쉽진 않아. 육아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일까지 병행하겠다는 것은 상당한 의지가 필요하긴 해. 하지만, 우리, 너무 쉽게 겁먹지는 말자. 세월은 가고 아이는 크니까 말이야. 흔들리는 매 순간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을 알고 있다면 조그만 흔들림은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힘든 순간에 바다 위에 부표처럼 떠다니는 마음을 잡으려면 굳은 각오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다에 늘 태풍과 풍랑이 몰아치는 것은 아니더라고. 때로는 평화로운 모습도 있고, 사랑스러운 모습도 있고,
힘든 모습도 있는 거야. 늘 힘들기만 한 인생은 없으니까. 때로는 "엄마~"하며 달려오는 사랑스러운 아이 모습 때문에 버티기도 하고, 직장에서 인정받아서 버티기도 하고 말이야.
S, 그대가 어떤 선택하건, 그 선택은 무조건 옳아. 이미 그대는 엄마니까. 엄마로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야.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고민을 밤을 새워가며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했을 거니까. 그러니 그대의 선택을 믿고 남은 휴직기간 동안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
파이팅!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