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가 되기보다 노력하는 엄마가 되어 볼게
저녁 퇴근시간, 밤 10시가 되어서 사무실을 나섰다. 아침에 큰 아이에게 약간 미열이 있는 것이 걸려 일찍 퇴근하려 했는데, 오후에 급한 일이 생겨서 결국은 또 10시를 넘기고 말았다. 복직 초기에는 아이가 아프면 몸은 회사에 있지만 마음은 아이에게 온통 쏠리더니,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바쁜 일이 먼저 눈에 보인다. 일과 개인의 삶에 선택에 있어서 직장인은 늘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도 나는 미열이 걱정되는 아이와 바쁜 일 사이에서 결국은 또 일을 선택했다. 아이는 시어머님이 봐주시니까, 아빠가 있으니까, 나는 좀 늦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둘째를 낳으면서 시댁 합가를 했다. 시댁은 내 직장과 2시간 거리였다. 남적은 개인사업을 하는지라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로웠고, 시댁 근처에 사무실을 얻었다. 많은 고민 끝에 시댁 합가를 결정했고, 나만 희생한다면 아이들은 훨씬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과 육아 사이에서 내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다. 집에 도착하니 불은 모두 꺼져있는 상태였다. 거실에 들어서는데 어둠 속에서 어머님이 둘째를 안 아재 우면서 앉아계셨다.
"어머님 안에서 안 주무시고 뭐하세요?"
"oo(큰아이)이가 잠을 안 자겠다고 버티고 생떼 쓰다가 지 동생 깨워서 아빠한테 엉덩이 몇 대 맞고 울면서 잠들었다."
어머님 말투에는 그냥 저녁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알림보다는'애가 그렇게 기다리는데 왜 이렇게 늦니!!!' 하는 짜증 섞인 감정이 배어 있었다.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몸도 너무 피곤했고, 아이가 아빠한테 맞았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어머님이 아무리 말씀하신 들 내가 집에 일찍 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냥 그 길로 욕실로 들어가서 씻고 나와서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주륵...흘려 버리고 말았다. 몇 시간 조금 일찍 와서 아이와 함께 잠들어 주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일까?
남편도 아이 엉덩이 몇 대 때린 것이 내내 속상해서 잠들지 못하고 못하고 있었다. 남편의 말로는 어제저녁 늦게나마 내가 들어오는 걸 본 큰 아이가 오늘도 엄마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잠을 안 자려고 했다고 한다. 엄마 기다렸다가 엄마와 같이 잔다고 했단다. 남편도 일을 끝내고 와서 피곤했고, 아이는 떼쓰고, 그러다가 결국은 엉덩이 몇 대 맞고서는 울면서 잠이 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아주 소소한 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엄마라는 자격이 있을까... 한 참을 생각했다. 아이의 손을 꼭~ 잡자 아이가 뒤척이다 눈을 뜬다.
"엄마..."
"응... 엄마야... 코~자자"
아이는 다시 눈을 감는다. 내손을 꼭~ 잡고 다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 옆에 누워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베갯잇이 축축해졌다.
둘째를 낳고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 일에 좀 집중하려고 했는데, 나는 또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김난도 선생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했다. 과연 천 번을 흔들리면 어른도 되고, 훌륭한 엄마도 될 수 있을까? 천 번을 흔들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되고, 나의 아이는 또 얼마나 많은 상처와 외로움을 견뎌야 할까?
내가 '아~ 이제 엄마 노릇해야지...'라고 했을 때 이미 아이는 엄마가 필요 없는 아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대답 없는 질문만 잔뜩 생각하다가 스르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하루가 또 지나갔다.
다음 날, 아직 어제의 속상함이 가시지 않은 채 출근길에 나섰다. 여느 때처럼 만원 지하철을 타고, 꾸벅꾸벅 졸면서 큰 출근길의 물결을 따라 나도 합류했다. 모두 한 방향으로 가는 데, 나의 마음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다니는 생계형 워킹맘이기 때문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이유가 좀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혹은 자기계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맞벌이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맞벌이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어서 꾸역꾸역 다니는 것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결론은 나는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 그제도, 어제도 흔들렸고, 어쩌면 오늘도 흔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회사를 다녀야 하고, 또 엄마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울면서 잠들었지만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에 출근해서 모닝미팅을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평범한 듯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오늘이 또 시작된다. 좋은 직장인도, 좋은 엄마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 아니던가. 그냥 오늘을 노력하면서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흔들려도 결국 가야 하는 길에 대한 나의 삶의 자세가 아닐까...
속으로 다짐해본다. 좋은 엄마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노력하는 엄마는 되어보자고... '오늘만은 정말 6시에 칼퇴근할 테다. 오늘만은 아이와 함께 잠들어 볼 테다'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