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장을 18년이나 다녔다. 이렇게 오래 다닐 줄 몰랐다. 신입사원 시절 1년만 버티자고 했던 것이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시간을 지났다. 처음부터 18년을 이 회사에 다녀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19년인데, 가끔 바보 같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처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앞의 10년은 일을 익히느라 정신없었고, 뒤의 8년은 워킹맘으로 사느라 정신없었다.
일을 중간에 그만두지 못할만큼 미치도록 일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싫은 것도 아니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죽도록 출근하기 싫은 날도 있었고, 짜릿할 만큼 성취감도 있었다. 우는 아이 때문에 나도 울면서 출근한 적도 많았다.
인생은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즐거웠던 시간이 있으면 힘든 시간들도 있었다. 대체로 즐거우려고 노력했고, 행복하려고 노력했으나 운명의 파도는 늘 기대이상으로 나를 힘들게 하거나 좌절하게 했다. 그 고비마다 나는 왜 일을 그만두지 못했을까? 아이러니한건 어쩌면 그 고비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못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왜 지금까지 일을 했냐고 물어보면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생계’였다. 자아실현이고 뭐고, 일단 돈부터 벌어야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도 적성 같은 건 따지지 않았다. 월급이 밀리지 않을 만큼 규모가 있어야 했고, 평균 이상의 연봉을 주는 곳, 기술이 쌓여 잘 잘리지 않을 곳을 찾았다. 나에게 가난은 벗어나고 싶은 현실이었고 공포였다. 어느 정도 배고픔을 벗어났을 때 결혼을 했다. 양가 도움은 전혀 받지 않았다. 양가 모두 받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둘이 열심히 벌었지만, 월급쟁이 삶이 그저 그렇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돈을 좀 더 벌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사업을 생각했다. 근로소득 이외에 다른 소득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생산자의 삶을 살고 싶었다. 몇 권의 책과 젊은 야망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누구나 사업이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었는데, 책속의 성공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세상이 우리 부부를 비웃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없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사업도 직장생활처럼 처음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걸, 직장과 달리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좌충우돌이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부부는 인생의 많은 파도를 넘어야 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상처받은 일도 많았고, 이혼 이야기가 오갈만큼 심각한 부부위기도 겪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 둘 여건이 아니었다. 육아냐 회사냐 고민할 틈이 없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아이들 기저귀 값도 마련할 수 없었으니까. 힘들어도 그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생계’였기 때문이었다.
자아발견도 좋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좋은데, 절대적 빈곤이 눈앞에 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이들까지 있는 경우는 절박하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 살아남아야 열정도 찾고, 좋아하는 일도 찾는 것 아니겠는가.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삶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 그건 축복이다. 그렇게 그 시기를 폭풍처럼 지나왔다.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매 순간 버티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훌쩍 커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어둠의 터널도 끝은 있었다. 남편 사업이 대박 났을까? 남편 사업이 대박이 나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책 속의 영광과 성공이야기는 여전히 남의 이야기였다. 내 스토리가 아니었다. 지금도 남편은 여전히 달리는 중이다. 나는 아직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 그럼 달라진 건 뭐가 있을까? 일다 아이가 컸다. 이전보다 육아는 수월해졌다. 빚을 어느 정도 갚았다. 외곽이지만 우리 4식구 편히 지낼만한 집도 마련했다. 남편은 열심히 사업을 키우고 있다. 실패하지 않았으니 성공을 위한 중간쯤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목표가 있으니 언젠간 될 거라 믿으면서.
아이들이 크는 동안 나도 성장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는 불도저였다.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직진하는 스타일이었다. 주변 동료들과 불협화음도 많았다. 다른 사람을 이해할 틈이 없었다. 나밖에 몰랐다. 그때 내 별명이 ‘싸움닭’이었다. 회의만 하러 가면 싸우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엄마가 되고나서 앞만 보고 달릴 수가 없었다. 복직한 후 몇 년간은 한없이 초라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기였다. 일과 육아사이를 오가느라 전전긍긍하는 것도 잠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내해야 했다.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하니 평가는 좋지 않았고, 좋지 않은 평가는 승진누락으로 이어졌다. 경력 10년차면 대부분 일의 능력은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누군가는 조직에서 평가를 낮게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 막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여자들이 타깃이 된다. 아니, 아이를 낳으라고 하더니, 뭐가 이따위인지 분노했다. 여러 번 승진누락이 되니까 분노조차 일지 않고, 그냥 체념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복기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 경험에 나쁜 일만은 없다. 나에게 그 체념하는 시기는 나쁘지만은 않았다. 엄마가 되기 이전에 세상을 머리로만 살았다면 엄마가 되고나서는 세상을 가슴으로 보게 되었다. 이전엔 성과와 결과위주로 사회생활을 했다면,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과정에도 집중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니 주변이 보였다. 공감을 하고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말이 비로소 들리고 조율과 협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알게 되었다. 배려도 배웠다. 한마디로 사람 된 것이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람! 만일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그 시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낼 동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키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있겠지만, 일은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일을 좋아한다. 근면함과 일을 대하는 태도,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아마도 일을 찾아서 또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고민하고 방황한다. 하지만, 그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은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간에 한 가지 분야라도 깊이 파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일의 의미는 일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일을 하고 있을 때에만 찾을 수 있다. 깊이 팔 때 필요한 몸에 새겨진 것이 태도라는 것이고, 그 태도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훌륭한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