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

by 이틀

나는 차장 승진을 4번이나 탈락했다. 과장승진은 탈락 없이 한 번에 승진을 했다. 승진이야 위로 올라갈수록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인데 4번은 조직 내에서도 많이 뒤처지는 경우였다. 차장승진을 4번이나 탈락한 이유는 평가 때문이었다. 과장승진하자마자 임신을 하려고 계획했었다. 여자들의 커리어는 임신과 출산도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장으로 승진하자마자 임신을 하면 다음 승진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나의 계획을 비웃듯 임신이 되지 않았다. 불임클리닉을 1년여 들락거리다가 포기하는 순간 첫째를 임신했다. 그때가 과장 말년이었다. 첫째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해에 차장승진 대상자였다. 당연히 승진이 되지 않았다.

육아휴직한 해에 성과가 있었을 리 만무하니까. 다음해에도 승진이 되지 않았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가장 큰 이유는 회사에서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겠지만, 승진 대상자들이 성과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문화에서 보자면 어쨌든 억울한 일이었다. 1년에 한 번 승진철이 다가오면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지금에서 보자면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승진철마다 마음 졸이며 기대를 했는지 모르겠다. 승진에서 떨어질 때마다 주위에서 위로를 해주지만, 솔직히 위로가 잘 되지 않았다.

마지막에 승진에서 탈락 했을 때는 퇴직을 심각히 고민했다.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근무도 해야 할 만큼 바빴다. 당연히 아이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출퇴근 하는 날이 많았다. 한번은 아이 현장 학습이 있는 날이었는데 김밥을 싸야 한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까먹은 적도 있다. 김밥재료는 물론이거니와 냉장고 자체가 텅텅 비어서 편의점에서 달걀을 사서 볶음밥을 해서 보낸 적도 있다. 그렇게 일했는데도 승진에서는 탈락했다. 엄마노릇도 못하면서 이게 뭔가 하는 미안함이 일어났다. 회사는 처우에 분노와 자괴감이 동시에 일어났다. 미안함과 분노가 만났을 때 사표가 떠올랐다.

시간이 흐른 후, 지금도 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워킹맘이다. 그때 사표를 내지 않았고, 사표를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나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일단 나는 그렇게도 원하던 차장 승진을 했다. 승진을 하고 보니 별거 없었다. 왜 그렇게 원했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월급이 많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호칭이 변경될 뿐이었는데 아등바등했다. 나만의 기준이 없었다. 남들은 해주고 나만 안 해주니 그것이 배 아팠던 것일까? 사실, 지금에서야 '별거 없네.'라고 말하지만, 그건 이룬 다음에나 하는 말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별거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끝까지 이룬 사람이 '별거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니까.

20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다. 광고에 나오는 멋진 여성들의 모습이 나 일줄 알았다. 멋진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고객 앞에서 멋지게 브리핑하고, 웃으며 악수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여성 리더십에 관련된 책들을 섭렵하며, 나는 미래에 그런 모습이 될 거라 상상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외모부터 말하자면 굽 낮은 단화스타일로 정착한지 오래다. 하이힐은 이제 불편해서 신지 못한다. 옷은 출산 후 빠지지 않은 뱃살을 가리기 위해 펑퍼짐한 블라우스 위주로 입는다. 일생의 과업인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해보지만 살은 잘 안 빠진다. 아이 낳고 깨달은 건 껌딱지는 아이뿐만 아니라 살도 껌딱지였다. 언젠가부터 살 빼는 것을 포기하고 살을 가리는 걸로 방향을 바꿨지.

직장에서의 내 모습도 살과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나의 일은 달랐다. 일단, 업무가 프로그램 코딩 업무라서 고객 앞에서 멋지게 브리핑 할 일은 없다. 영업이나 마케팅이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20대에 내가 그렸던 모습과는 좀 한참 멀다. 그때 그렸던 모습이 단순히 외향적인 면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상상했던 건 아마 '성공'이라는 키워드였을 것이다.

성공, 보통 우리는 '성공'했다는 말을 쓸 때 높이 올라가거나 높은 실적을 쌓았을 때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만 본다면 나는 지금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회사 임원도 아니고, 조직을 움직이는 결정권자도 아니니까. 처음엔 회사 일에 매진할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야근을 할까 봐 눈치를 본다는 것이 답답했다. 승승장구하는 남자 동기들이 부러웠고, 분노했었다. 그들의 성과를 따라잡기엔 내 주변의 환경이 너무 버거웠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간들이 있었다.

같이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제안에도 주저주저 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은 회사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도전은 성공을 바라보고 시작한다. 실패를 예상하지 않는다.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근무 환경에 선뜻 결과만을 보고 갈 수는 없었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회사에서 성공을 바라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치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었느냐가 달라졌다. 젊은 시절에는 높게 올라가는 것, 내 몸값을 높이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멀리 가는 것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으니 성공한 것 아닐까? 어쩌면 성공은 과정이고 나는 지금도 꾸준히 가고 있으니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한다. 독하게 육아와 병행을 하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높이 쌓는 성공만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통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가며, 성공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워가고 있는 중이다. 20대에 생각했던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 어쩌면 나는 광고에서 보는 화려한 마케팅에 나 자신을 이미지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에 맞는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 이미지를 중요시했던 것이다.

그 생각의 틀을 깨는 데 출산과 육아의 과정이 있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생각의 틀을 깨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만의 기준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균형 잘 맞추면서 잘 가느냐, 라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아침마다 허둥대며 아이들 준비물을 챙기고, 종종 잊는다. 늘 젖은 머리로 출근을 한다. 그래도 난 지금의 내가 좋다. 여전히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으므로.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나를 내가 사랑스럽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차장승진에서 탈락했을 때 상사가 해준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지금 승진 탈락했다고 억울해하거나 자책 하지마. 속도만 다를 뿐 어차피 부장되면 다 부장으로 만나게 되어있어. 산 정상에서 모두 만나듯이 부장에서 만나는 거지.”


그때는 그냥 농담으로만 들렸는데, 지금 보니 그렇다. 부장이라는 직함은 없어지고 책임이라는 직함으로 변경되긴 했지만, 어쨌든 승진을 먼저 했건 아니건 지금 모두 책임이라는 직책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때 상사의 말처럼 나이가 들어보니 대부분 같은 직급으로 만나게 되더라. 간혹 임원으로 승진하는 사람이 있지만, 임원의 다른 말은 ‘임시 직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지하기 힘든 자리다. 팀장님이라는 호칭도 있긴 하지만 팀장 자리에서 내려오면 다시 책임으로 호칭이 변경되기도 한다. 먼저 승승장구 하면서 팀장이 되었던 동기는 팀장 자리에서 내려오더니 퇴사를 했다. 내가 아직 일을 하고 있고, 그는 퇴사를 했다고 해서 내가 성공하고 그가 성공하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의 기준은 남에게 있지 않으니까. 승진,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 오늘 나의 삶에서 많이 웃고 떠들 수 있었다면 그것이 행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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