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던 것들

by 이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인생을 미리 연습할 수 있었으면 좀 멋진 인생을 살았을까? 더불어 엄마가 되는 연습을 했다면 더 좋은 엄마가 되었을까? 인생이 연극이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연습 없는 역할에 나는 늘 좌충우돌이었다. 나는 실행력 하나는 타고 났다. 호기심이 생기고, 남들이 좋다고 하면 일단 실행해 보곤 했다.


아이를 낳기 원하면서 육아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노력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 미리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회사 선배에게 물었다.


“아이 낳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글쎄…아이 잘 재우는 법?”


선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이 잘 재우는 법을 알면 편하다고 했다. 책을 하나 추천해주었고, 나는 그 책을 정독했다. 물론, 아이의 잠자기는 책대로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이 잘 재우는 법을 왜 알아야 하는지. 아이가 잠을 잠으로써 비로소 엄마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엄마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막연히 알았을 뿐, 구체적인 것은 몰랐다.


아이를 낳고 병실에 있을 때 간호사가 들어왔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제왕절개로 첫째를 낳아서 병실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때였다. 간호사가 와서 유축기를 내려놓더니 2시간마다 유축을 하라고 했다. 그래야 모유가 잘 나오고 늘어난다고 했다. 그때 시간이 9시인가 그랬다.

“네? 2시간마다 유축을 하라고요? 그럼 잠은요?”


간호사와 눈빛이 마주쳤고, 간호사는 대답대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많은 엄마들이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던가 보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 밤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초보 엄마였다. 2시간 유축해서 아이를 먹이기보다 내 잠이 먼저 걱정되었던 초보엄마였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나도 간호사처럼 희미한 미소가 지어진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많다. 두 아이 육아를 기점으로 회사에서 나의 경력도 많이 꺽였다. 그 전에는 노력하면 뭐든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회사 내 조직의 융합보다 나의 목소리를 내기 바빴다. 잘난체하기 바빴고, 내가 제일 잘나가는 줄 알았다. 한마디로 오만방자했다. 생각만으로도 부끄러운 기억들이 너무 많았다. 그 오만한 태도의 뒷면에는 나를 감추고 겉모습으로 드러내고픈 나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에게 맞추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어릴 때 자란 환경 탓 일수도 있지만, 천성적으로 거절을 잘 하지 못했다. 나보다는 ‘남’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내가 남에게 보이고픈 ‘나’만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 모습이 가짜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남들이 좋아하고 기뻐하면 그게 나인 줄 착각했다. 가난한 집의 착한 맏딸로 자란 습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줄곧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런 태도는 결혼을 해서 문제가 되었다.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했던 것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모습으로. 처음엔 사회적으로 원하는 모습과 내가 했던 코스프레가 딱 맞아떨어져 얼핏 보면 문제가 없어보였다. 문제가 있다면 나의 내면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답답했고, 우울했다. 그 시절을 정확히 짚자면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니 아이 육아가 자연스러웠을 리가 없다.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교과서적이었다. 아이를 사랑했지만, 어떻게 해야 사랑을 잘 표현하는 것인지 몰랐다.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준다고 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 엄마가 된 이후 나에게 ‘사랑’은 화두가 되었다. 남들에게는 쉬워 보이는 그 것이 내게는 너무 어려운 숙제 같은 것이었다.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웠다. 아이들을 사랑할수록 진흙탕에 빠진 기분이었다. 나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남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고 나를 깨달아가는 것이 필요했다. 물론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전혀 모르진 않았다. 나는 여행을 좋아했고, 책을 좋아했으며, 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는 잘 몰랐다. 잘하는 게 없어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도 노력하는 편이었고, 여행도 노력하는 편이었다. 자연스러움이 내겐 없었다. 노력을 하면 100점은 되지 못해도 70점은 되었다.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이야기도 곧잘 들었고, 집안에서 믿음직한 맏딸 역할도 그럭저럭 해냈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노력하면서 대부분 비슷한 성과를 거두었다. 대학교 입학, 대학원 입학, 취업, 결혼, 모든 것이 그랬다.

사랑도 노력해야 하는 것이었다. 노력하는 시점이 ‘나’부터였다. ‘나’부터 채우고 나야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관대해 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타인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은 했지만, 나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내면을 채운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지식을 채운다는 뜻으로 알았다. 사랑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내 안의 사랑은 남들로부터 채워진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인정을 받으면, 남들이 나를 사랑해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물론, 믿음만큼 인정도, 사랑도 충분하지 않았다. 남들의 사랑으로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엄마가 되고나서야 가장 잘한 일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진실이었다. 인생에 연습이 없었던 이유는 이 한마디를 몸에 새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 한마디로 정리된 문장을 깨닫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와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애초에 자연스럽게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주변을 볼 때 성숙한 부모의 사랑을 위해서는 모두 좌충우돌인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인생은 연습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는 그 시간을 짧게 경험할 수도 있고, 나처럼 오랜 시간을 경험할 수도 있다.

언젠가 내가 선배에게 했던 질문을 후배가 물어왔다.

“아이 낳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가끔 힘들 때 이 생각을 해. 엄마도 좀 살자.”


모성애는 위대하지만, 가장 큰 모성애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엄마가 행복하게 살아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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