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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Aug 31. 2020

여행의 이유, 일상의 이유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


꿈을 꾸었다.


자취방이었다. 작은 방에 짐을 차곡차곡 쌓았던 탓에 여행짐을 찾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의 설레임에 이것저것 챙겨넣었다. 가방이 부족했다. 작은 가방, 보조가방 모조리 총 동원했다. 양쪽 손에 다 들었다. 이쪽 손에도, 저쪽 손에도. 손이 모자라 목에도 걸었다. 목에 보조가방 하나가 덜렁거렸다. 그런데 걸을 수 없었다. 짐이 너무 많았다. 친구가 옆에서 말했다.


“짐을 내려놓고 가.”

“아냐,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뺄 것이 없어.”

“그럼 여행은 못가.”

“아냐, 난 가고 싶단 말이야!”


진땀을 빼며 꿈에서 깼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다. 집을 싫어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욕망을 여행으로 채웠다. 현실도피였고,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다. 나에게 자유는 여행을 통해서만 그 존재감을 내미는 친구였다. 늦게 일어나도 괜찮은 자유,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자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사랑했다. 외국인이라는 위치는 이방인으로 외로움이기도 하지만, 그 나라의 규제와 틀에 박히지 않아도 되는 회색 지대에 잠시 놓이는 것. 그 깍쟁이같은 자유스러움을 사랑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짐을 정리하다보면 입지도 않은 옷들도 있었고, 사용하지 않은 물품들도 있었다. 나는 왜 그것들을 꾸역꾸역 넣어갔을까.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혹시’라는 단서를 달며 많은 짐들을 싸고 또 쌌다. 자유는 원했지만, 불안했다. 자유는 사랑했지만, 불안은 내쫓고 싶었다. 여행은 일정대로 완벽해야 했으며, 여행의 자유는 내가 계획된 범위 내에서만 누리는 사치이어야 했다. 자유로운 여행이었지만 셀프 패키지 여행이기도 했다. 나는 늘 그렇게 한쪽발은 안전한 현실세계에, 한쪽발은 자유로운 여행에 디디고 서서 나름의 완벽한 여행계획을 세우곤 했다.


완벽한 여행계획 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과 같이 여행하면서부터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늘 완벽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의 계획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지나가던 동네의 놀이터였으며, 게임가게 앞의 뽑기 기계였고, 배고플 때 배를 채워주는 식당뿐이었다. 당연히! 엄마가 심사숙고 끝에 검색한 맛집따위는 관심없고, 지금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면 그냥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여행 세계를 철저히 무너뜨리며 현실과 불안에 발을 디디고 있는 나를 성큼 여행속으로 집어 넣었다.


처음엔 그 불안을 받아들이기 싫어 거부했다.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밥을 먹다가 시간이 되었다며 늦게 먹는 아이들을 재촉하다 먹는 걸 포기하고 다시 길을 나선 적도 있다. 우리에겐 다음 여정이 빼곡이 있었다. 왜냐하면 패키지 여행이었으니까! 엄마가 치밀하고 완벽하게 계획한 자유 패키지여행!


나의 완벽한 자유 패키지 여행을 포기해버린 것은 베이징이었다. 베이징에서 아이를 잃어버렸었다. 아이는 5살이었고, 당연히 중국말은 하나도 할 줄 몰랐다. 박물관을 서둘러 구경하고 나가려던 참에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분명 1분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었는데! 박물관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한 5분쯤, 지나서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박물관에 없다!’ 그럼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인데, 박물관 밖은 넓은 시장통이었다. 정신없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밖으로 나갔다. 물론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창피한 것도 모르고 미친여자처럼 울며불며 아이를 찾아다녔다. 남편은 방송을 해줄 수 있는지 박물관에 다시 들어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한 낮의 기온이 40도 였는데, 땀과 눈물은 범벅되어 아이 이름을 부르며 길거리를 헤매다녔다. 느낌으로 한 몇 시간 지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오더니 중국어로 뭐라뭐라 손가락을 가르켰다. 손가락 끝을 쫓아가보니 중국 경찰관이 아이를 안고 오고 있었다. 지옥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이와 부둥켜안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아이도 땀범벅 울음범벅, 나도 땀범벅 울음범벅. 밀가루 반죽처럼 그대로 주저 앉아 그냥 둘다 울었다.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아 중국 경찰관에게 울음섞인 목소리로 땡큐만 계속 말했다.


아이도 나도 울면서 시장통을 어찌나 헤매다녔던지 나중에 아이 손을 잡고 걸어나오는데 시장안의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보며 박수쳐주거나 웃어주었다. 중국어는 잘 모르지만 느낌으로 알았다. ‘찾아서 다행이에요!’ 그 시장 거리에서 그날 우리는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울보로!


당연히! 그날 오후 일정은 모두 취소했다, 숙소로 돌아왔다. 대중교통을 탈 힘도 없어서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돌아와 샤워후에 아이도 나도 탈진되어 그냥 침대에 누워 한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 누워있는 아이를 보니 이게 꿈인가 싶어서 다시 눈물이 났다. 잃어버렸으면 어쩔뻔했나. 조그만 손과 새근새근 잠든 숨소리가 마치 꿈결 같아서,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확인해보니 아이를 잃어버렸던 순간은 20~30분이었는데 나에겐 2~3시간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찾았는지 경위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중에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울면서 여기저기 엄마를 찾았다고 한다. 아마 그 넓디넓은 시장통에서 미친년처럼 울며불며 하는 한 여자와, 울고 있는 아이의 매칭은 그렇게 울음으로 찾아졌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나는 여행을 할 때 세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항공권과 숙박만 예약하고, 가고 싶은 곳을 몇 군데만 찜해놓는다. 그리고 하루에 한 곳만 정하고, 남으면 근처를 배회한다. 패키지처럼 많은 곳을 가고 많은 사진을 담기보다 느긋한 시간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우리 다음엔 어디가지?”

“시간이 안될 것 같은데?”

“그럼 가지 말까?”

“그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몇시간 비행기 타고 날아갔는데 거기도 못가보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행은 보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니까. 누린다는 행위를 알게 된 이후,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행을 통한 자유의 갈망보다 현재 이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찾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보드라운 손, 맛있게 먹는 입. 그 모든 행위들에 자유는 이미 존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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