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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Aug 13. 2021

어머님은 밥하기가 싫다고 하셨지

밥 차리는것이 의무가 아닌 그들이 몹시질투 난다

남편과 , 아는 지인 이렇게 셋이서 밥을 먹으로 식당을 갔다.


"자취를 해보니 알겠어요. 엄마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혼자 살아보니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빨래, 청소, 음식까지. 그래서 끼니는 대충 때우게 돼요. 혼자 먹자고 뭔가 잘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엄마는 어떻게 그 모든 걸 했을까요?"

지인은 20대 청년이었다. 청년은 사회생활 일 년 차였고, 부모님 집이 멀어 막 자취를 시작하던 참이었다.

"아마 아이들이 있어서 할 수 있었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아,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너희들이 있었으니까 또 그냥 했다고. 그런데 제가 자취한다고 집을 나오고 나니 두 분만 사시는데, 음식 하는 게 너무 힘드시데요. 그래서 요즘 대부분 밀키트나 간편식 많이 이용하세요. 어쨌든 밥은 해 드셔야 하니까."

"아이들이 있으면 힘들어도 힘내서 하게 되는데, 둘이 남다 보면 손 놓고 싶을걸요?"

슬쩍 옆에 앉은 남편을 봤다. 남편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삼식이라는 말도, 가장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눈치가 보인다는 말도, 되돌아보면 결국은 모두 밥을 얻어먹으려고 하는데서 비롯된 것 아닐까. 만일 은퇴 후에 아내를 위해서 장을 보고 밥을 삼시세끼 차린다면 어떨까? 그런 남자라면 은퇴 후에도 환영받지 않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왜 얻어먹을 생각부터 하고, 차려주지 않을까, 눈치를 볼까, 걱정 먼저 하는 걸까.


나는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더불어 식구들 밥 차리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은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도 계속하다 보면 질리지 않나. 그럴 때, 가끔은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싶지만, 아이를 포함해 우리 집 남자들은 밥상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싶다고 말하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는 '외식' 혹은 '치킨'이 전부니까. 정갈하고 정성스레 차려진 담백한 집밥을 먹고 싶다는 말을 그들이 이해할리가 없다. 아니, 언젠가부터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게 가정의 평화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자들이 못하고 남자들만 할 수 있는 집안일의 영역도 있긴 하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다거나 집안 수리를 한다거나 등등.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밥 하기와 비교하면 빈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만약 재활용 쓰레기를 하루에 세 번 꼬박 버려야 한다거나, 집안 수리를 하루에 세 번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면 어떨까? 거기에 집안 수리의 종류를 하루에 세 번 스스로 생각해내야 한다면? 매번 다음 끼니는 무슨 메뉴로 할까 고민하듯 말이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남편과 집에 둘이 남는 상상을 가끔 한다. 흠, 나도 편하게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나도 청년의 어머님처럼 이제 더는 밥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열심히 밥을 차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남편이 밥 세끼를 차리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다. 또 다른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밥을 차리지 않았다고 나를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란 것. 그 정도 예의는 알고 있는 세대니까. 아, 가끔은 특별식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내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호기심과 어느 날 요리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하는 그런 것. 지금도 나중에도 그에게 세끼를 차리는 건 의무가 아니다. 이 사실이 몹시 질투 난다.


나의 이런 상상이 마구 물살을 타면, 이런 생각도 한다. 아이들이 독립한 어느 날, 나는 전국과 세계를 다니며 몇 달 살기를 해볼 예정이다. 물론, 혼자다. 온전히 혼자 집중하면서 집필하고 싶다. 밥하기의 의무에서 벗어나서! 나의 이런 생각을 남편이 눈치챘을까? 남편은 여전히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있다.


상상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나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힘내서 밥을 할 것이고, 여전히 가끔 밥하기 싫어서 구시렁댈 것이고, 그럼 외식으로 채우겠지. 아, 어쩌면 밥 세끼가 제공되는 실버타운이나 아파트 커뮤니티가 있는 단지에 입주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계속 변하고 있고, 고객의 니즈에 맞추어 상품은 계속 다양해지고 있으니까. 돈만 열심히 벌면 될 것이다.


식당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매출이 떨어지자 포장을 세 개 하면 한 개를 덤으로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어머님 생각이 났다.


"자기야 우리 밥 먹고, 포장 주문도 하자. 한 개 덤으로 주는 서비스래. 집에 가서 어머님 두 개, 우리 애들 두 개 먹이면 될 것 같아. 요즘 더워서 어머님도 밥 하기 싫으시대."


어머님.도.라는 말로, 나를 포함시켰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주문했고, 내 손엔 4인분의 음식이 들려 있었다. 어머님도 나도 오늘 저녁밥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일상 #밥 #여자의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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