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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Aug 18. 2021

빨래는 누가 갤 것인가

지난 연휴, 우리 집엔 3일째 마른빨래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유는 아무도 빨래를 개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연휴 내내 당일치기로 나들이를 했기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기도 했다. 가족들은 집에와서 쉬기 바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들이에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아침을 차리는 내내 빨래는 거실에 저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빨래를 피해 다녔다. TV를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게임을 할 때도. 


빨래를 건너 다니며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아.무.도 빨래를 개지 않았다.


나는 이미 연휴기간 내내 밥하기와 설거지만으로도 지쳐서 빨래를 개기까지 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마감해야 할 글을 시작도 못한 상황이었다. 마음이 무거워 책상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널브러져 있는 빨래보다 마감하지 못한 글이 더 급했다. 


그럼 마른빨래를 저렇게 거실에 놓은 사람은 누굴까. 


남편이다.


남편은 베란다에서 무언가를 해야 했다. 정확하게는 베란다의 빨래걸이가 필요했다. 여름내 했던 물놀이 용품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우리 집은 물놀이 용품이 꽤나 많은 편이다. 스킨다이빙을 즐기는 남편 덕에 수경과 스노클링 세트, 잠수 슈트, 구명조끼, 오리발 등 한 짐이다. 남편은 이걸 씻어서 말리느라 베란다 빨래걸이가 필요했고, 며칠 전에 널어놓은 빨래가 마른 것을 확인하고 걷은 것이다. 그럼 빨래를 개는 마무리까지 하면 얼마나 좋을까. 빨래 개는 건 자신의 일이 아닌 양 저렇게 거실에 널어놓았다.


이전 같으면 싸웠을 텐데. 이젠 싸우는 것도 귀찮았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것도 귀찮았다. 빨래를 개는 것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더 많았으니까. 그것들을 처리하다 보니 빨래를 갤 힘도, 싸울 힘도 내겐 남아있지 않았다.


집안일은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이기는 법. 나도 빨래를 건너 다니며 내 할 일을 했다.


언제까지 거실에 널브러져 있을까 지켜보니 정확하게 토요일부터 월요일 저녁까지,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빨랫감이 구겨진 건 이미 포기고, 이걸 어쩔까 하다가 결국 월요일 저녁에 아이들을 불렀다. (이 시점에서 내가 졌다. 남편 엉덩이가 내 엉덩이보다 두 배쯤 더 무거운 것 같다.)


"각자 자기 옷은 자기가 개서 정리해."


에둘러 아이들을 이용한 것이 미안하지만, 결혼생활 15년간 싸워도 변하지 않는 남편과 다시 싸우느니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더 빠르다는 판단이었다. 내 목소리와 아이들의 움직임을 보고 그제야 남편이 주섬주섬 아이들과 같이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15년간 싸우고 화해하면서 그가 바뀐 건 딱 거기까지다. 도.와.주.기.


내가 빨래를 널면 같이 해주고, 내가 빨래를 개면 같이 개어준다. 내가 요리하면 밥상 차리는 걸 도와주고, 내가 설거지를 하면 반찬과 식탁을 정리한다. 


물론 그가 하는 집안일도 정해져 있긴 하다. 매주 버리는 재활용 쓰레기와 가끔 하는 화장실 청소, 가끔 하는 집안 대청소. 대청소에 관해서는 내 엉덩이가 그의 엉덩이보다 무겁다. 


야박하게 딱 절반은 아니더라도, 누가 더 집안일을 많이 하는가 따져 보다 보면 조금 억울해진다.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는 그제 널어놓은 빨래가 보기 좋게 말라가고 있다. 이건 또 누가 개려나.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엉덩이 무게를 조금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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