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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Dec 29. 2020

정신의 샤워 시간

나에게 새벽시간은 정신적인 샤워의 시간이다. 정신도 몸과 같이 샤워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저녁에 샤워를 하고 누군가는 출근 전에 샤워를 하듯이 정신의 샤워시간도 각자 사람마다 다를 텐데, 나의 경우는 새벽시간이 가장 좋다. 20년간의 직장생활로 저녁에는 다음날의 출근을 생각하느라,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하는 반면, 새벽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다.


정신을 샤워한다고 해서 무언가 거창하게 명상을 하거나 생각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그냥 뇌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다. 잠시 문제로부터 떠나서 즐거운 생각만 하고, 즐거운 상상만 하고, 즐거운 일만 한다. 책을 보고, 때로는 영화를 보고, 때로는 쇼핑을 한다.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 있기도 한다. 스스로 타임머신을 타는 것이다. 


이렇게 새벽시간을 챙기는 이유는, 이렇게 정신적인 샤워시간을 끝내야 아이들에게 좀 더 너그러운 엄마가 되고, 남편에게 너그러운 아내가 되기 때문이다. 몸을 씻지 않고 며칠씩 지내면 몸에서 냄새가 나고, 그 냄새로 짜증이 나고, 냄새가 나면 사람들이 피하듯, 정신을 씻어내지 않고 며칠씩 지내면 내 정신에서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 냄새는 아이들이 귀신같이 먼저 맡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뒤돌아서면 내가 그동안 새벽 기상을 못했구나 하는 자각이 든다. 그 짜증과 자각의 깨달음은 새벽 기상을 놓쳤느냐 아니냐의 차이와 대부분 일치한다. 


새벽을 좀 더 생산성 있게 보낼 수도 있겠으나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에겐 멍 때리는 시간은 필수다. 


코로나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장을 보는 것도 대부분 배달을 시키니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살이 찌는 것은 일단 예외로 하고라도, 일주일 넘게 이렇게 집에 있으면 보통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곤 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짜증을 내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면서 잘 지낸단 말이지. 아이들 숙제를 챙기고, 밥을 챙기며, 집 청소와 설거지 등등을 했는데, 짜증 한번 나지 않은 것을 보고, '어? 나 전업주부 체질이었어? 체질이 바뀌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을 했더니 최근 나의 새벽 기상이 꽤나 꾸준한 편이었고, 책을 많이 읽었으며, 때때로 보고 싶은 영화를 보았더라. '아, 이런 인생도 괜찮은걸?'이라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고, 그건 꾸준한 새벽시간을 통해서 얻은 성찰이었다.


새벽시간의 비움이 없었다면 긴긴 코로나로 인한 집콕 생활에 염증이 났을 수도...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이 우울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젠 샤워를 마칠 시간이다. 깨끗한 정신으로 오늘 하루를 또 시작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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