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상을 뜨기 전 땅은
어둡고 딱딱하다

by 주둥이긴개

이직한다고 수차례 지인들한테, 엄마 아빠한테, 또한 여기 계신 브런치님들께 알려왔지만 이제 막바지에 이르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터져나온다. 아는 회사에 자리가 빈다길래 꼭 그곳으로 지원하고 싶었었다. 그래서 잠시 잊어놨던 파이쎤과 SQL을 땅속에서 구출해 2주동한 소생하여 포트폴리오에 물릴 수 있었다. 프로이직러들의 프로페셔널한 지적질로 얇게 저민은 이력서는 더이상 모날 것도 없이 내 고통속에서 피어나있었다.


그렇게 채용공지가 뜨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며칠이 지났더만, 공지가 나올 타이밍이라고 예고했던 그날, 생각치 못한 이슈로 한동안 이 회사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당연히 내가 가려는 자리의 채용공지는 다시 무기역으로 인터넷 뒤로 갇혀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는 길을 잃은 어린양처럼, 이 회사 저 회사로 끊임없이 배회했다. 자신을 이끌어줄 양치기를 소망하며, 내가 지나치는 이곳들이 과연 나를 받아줄까. 미지의 나는 착잡한 심경이다.


한번 떠나기로 결심한 양에게 무리의 속은 너무나 좁다. 경계선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좋은 풀을 뜯는 그맛을한번 알았다면 어찌 참겠는가? 이처럼 가능성이라는 상자를 열어버린 나는 끝내 불안감이라는 종이만 상자에 남아있었다.


갑갑한 양 무리 속에서 순응의 고개는 굴복으로 변모하였고, 그냥저냥 살 수 있는 곳이지만 나조차도 여기에 익숙해지면 안된다는걸 알기에, 자신을 놓치 않는다. 해가 떨어져 방이 어둡고, 식어버린 석고 바닥에서 발바닥에게 약속하는 딱딱함.


기회를 찾으려고 둘러보지만 껌껌하고 내딛는 발은 딱딱해서 힘들고. 공지에 물려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허나 언젠간 빛이 환하게 비추고, 누군가가 당신의 신발을 신겨주고, 궁지에서 걸어나오게 될 일이 생기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더운 날의 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