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린 남자친구를 데리고 사는 일
누구나 울적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나는 이불 속에 들어가 모든 빛을 차단한 채 몸을 웅크리고 꽁꽁 숨어 있는다. 숨이 막혀도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고 꽉 막힌 숨을 쉬며 하루 이틀 누워 있다 보면 다시 이불 밖으로 나올 힘이 생긴다. 이것이 내가 간혹 찾아오는 우울한 기분을 흘려보내는 방법이다.
어느 날 상봉이는 게임을 켰다. 나는 어떤 하루, 어떤 순간, 어떤 기억을 잊기 위해 이불 속에 들어갔는데, 상봉이는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잊기 위해 게임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한 것은 웜즈라는 지렁이 전투 게임이었다. 엔딩을 봐야 한다며 일주일 동안 게임만 하길래, '뭘 해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지렁이 게임이 끝나자 곧이어 다른 게임을 찾았다. 그는 깊고 긴 동굴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괴물 사냥꾼 게롤트가 되어 1,600시간을 살았고, 서부 개척 시대의 총잡이 아서 모건으로 800시간, 전쟁의 신 크레토스로 500시간을 살았다. 이 외에도 5년 동안 상봉이가 살 수 있는 다른 세계는 많았고, 될 수 있는 인물은 많았다.
그 사이 동굴 밖에서 친구들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 아빠가 되었다. 같은 시간 상봉이는 들어왔던 동굴 입구를 잃어버려 헤매기도 했고, 가까스로 입구를 찾아 돌아왔을 때는 동굴 밖 세상에 적응하지 못 하고 더 깊은 동굴을 찾아 들어가기도 했다. 때로는 더 이상 자신이 동굴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지 못 하고 영원히 그곳에 살 것처럼 정착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상봉이는 어디에서 뭘 하느냐고 묻는다면, 햇빛이 반쯤 드리워진 동굴 입구에서 간신히 발을 딛고 서 있다고 답할 것이다. 그가 힘들게 떼려고 하는 발걸음이 동굴 밖을 향할지, 다시 동굴 안을 향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살면서 자연스럽게 맞을 수 있는 고민을 하고, 사소한 갈등을 겪으며,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만 안고 살 수 있다면 그건 참 다행인 삶일 것이다. 내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런 다행스러운 삶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암 병동에 가면 암에 걸린 사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울증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안부 인사에 심장이 뛰는 것이, 밖으로 나가지 못 하는 것이, 밥 먹기조차 버거워지는 것이, 도저히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된다.
상봉이와 연애 초기부터 동거를 시작해 10년째 함께 살고 있는 나는 남자친구를 따라 그런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세상에 들어와 함께 지내고 있다. 어쩌다 상봉이의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내게 "곁에서 우울증을 지켜보는 너도 힘들겠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나와 제일 가까운 곳에 우울증을 두고 사는 일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그렇게 숨 막히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방 안에 앉아 같이 게임을 했고, 현실에서의 고민 대신 게임 속 세상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한 계절이 지나도록 밖에 나가지 않고 같이 집에서 노느라 바쁘기도 했고 그러다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며 벚꽃이 진 줄도 모르고 벚꽃놀이를 가기도 했다. 그래서 우울한 상봉이는 자주 행복하다고 했다. 만약 사랑도 커리어가 될 수 있다면 그런 점에서 나의 커리어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과정이 내가 예상한 것만큼 항상 쉬웠다는 건 아니다. 우리 둘 모두에게 낯설었던 우울증을 어르고 달래다 상봉이가 더 아파지기도 했고 나도 같이 아픈 날도 있었다.
이 기록은 우울증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글도, 우울증 환자를 곁에 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도 아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우울증에 걸린 남자친구를 봐 왔으면서도 우울증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상봉이는 힘든 것을 겉으로 잘 내색하지 않는 편이고, 나는 상봉이가 무슨 기분으로 사는지 늘 예측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곳에는 남자친구에게 직접 말하지 못 해 속으로 삼켰던 말들, 그럼에도 때론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내뱉어서 상처가 되었던 말들, 남자친구의 우울한 하루에 꾸깃꾸깃 잘 욱여넣었던 행복한 기억, 그렇지만 여전히 버거웠던 나의 시간들을 적고 그렸다.
가끔 상봉이는 지난 5년의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나 역시 종종 우리는 왜 이런 세계에 살고 있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우울증을 앓아서 우울증을 겪거나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상봉이가 잃어버린 5년을 얘기할 때마다 나는 그 안에 분명 남는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 아무것도 남을 것 같지 않은 모래 한 줌도 한데 모아 조심히 거르고 거르다 보면 사금 한 톨이 반짝 제 모습을 드러내듯, 허무하게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시간에도 이렇게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고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상봉이도 나도, 그리고 우울증 가까이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 지난 시간을 억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전히 억울하고 멈춰 있는 시간을 산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 또한 자연스럽게 세상을 사는 모습 중 하나라고 믿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