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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히 Apr 28. 2024

5-1. 방관자의 쓸모

 우울증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우울증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나는 그저 상봉이가 가끔 해주던 말들, 그가 짓던 표정, 그가 보낸 하루를 보며 우울증은 이런 모양이기도 하구나, 윤곽만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글이 우울증에 관한 글이면서도 정작 우울증의 정의, 증상,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어느 날 상봉이는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처음에 어떻게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당장 우울증을 이길 순 없지만 육체적인 힘듦이라도 대신해서 이겨보겠다던 그의 다짐이 생각난다. 이렇게 힘든 걸 꾹 참고 달리다 보면 언젠가 우울증도 이길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생길 거라는 소망이었다. 그래서 상봉이는 열심히 달렸다. 비가 와도 달리고 눈이 와도 달리고 땡볕 아래에서도 달렸다. 나는 매일 집에서 누워만 있거나 게임만 하던 상봉이가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일에 안도했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 아침 7시, 밤 12시, 새벽 3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 네다섯 번씩이고 뛰러 나가는 상봉이가 보였다. 그는 더 이상 수면제 말고는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뛰는 거밖에 없어서라고 했다. 그때부터는 안도감 대신 지금 그에게 밀려오고 있을 불안함, 초조함, 압박감 같은 것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정작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또 얼마나 깊이 내려앉아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누군가 칼에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게 어떤 아픔일 거라고 상상할 순 있지만 막상 얼마나 많이 아픈지는 알지 못한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어느 여름 날, 상봉이가 10km 달리기 기록을 재보겠다고 했다. 나는 응원을 한다며 자전거를 타고 그 옆을 따라 달렸다. 7km 즈음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땡볕 아래에서 웬 거구가 땀에 절여 울상의 얼굴로 혼신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나의 넘치는 숨과 에너지를 그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달리기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달리기를 마친 상봉이는 잠시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하천 앞에 혼자서 한참을 앉아 있는 그를 보며 내가 대신 짊어줄 수 없는 마음의 무게 같은 것들이 얼핏얼핏 느껴졌다.      

 살아가기에는 저마다 짊어져야 할 고유의 몫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에도 나는 이런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그걸 몰라서 ‘내가 옆에 있는데 오빠는 왜 매일 힘들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섭섭하게 했다. ‘삼시 세끼 밥을 차려주는 날 위해 상담은 빠지지 않고 가줄 순 없는 거야?’라는 투정과 심술이 볼멘소리로 터져 나오던 여러 날들을 보냈다. 그때마다 그는 ‘지금 간신히 견디고 있는 중이야’라고 대답했고 그제야 나는 '아차!'하고 말았다. 

 아차 싶은 순간이 반복되면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자세는 방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우울증을 낫게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악화시키지는 말아야지. 그후부터는 더 이상 상봉이가 왜 하루 종일 게임을 하는지 이유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집에만 있는 그가 도저히 힘들어서 같이 장을 보러 나가지 못한다는 말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우울증이니까’라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아도 그의 하루가 원래 그런 모양으로 생긴 것처럼 별나지 않게 보였다.     


 사실 방관에는 다른 이의 힘듦을 지켜봐 줄 수 있는 인내와 그가 자신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애정하는 것에 쉬운 방관은 없다. 애정할수록 그의 힘듦은 나의 힘듦이 되고, 자신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 뒤에는 혹시나 하는 염려가 자꾸만 자꾸만 따라붙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더욱 그렇다. 죽고 싶다는 그 마음까지도 인내와 믿음으로 눈 감아줘야 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도대체 방관자는 무슨 쓸모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      

 나는 우울한 상봉이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이 어느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 결코 그 생각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할 것이다. 가끔 그가 용기 내어 들려주는 말을 통해 어떻게 그 마음까지 도달했는지 헤아리다 코끝만 찌릿해질 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방관자는 쓸모가 있다. 사랑은 아무 힘이 없어, 나는 별 존재가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때 나의 작은 품으로 들어와 잠들던 110kg 상봉이의 거대한 몸뚱이를 기억한다. 그 밤이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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