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아서 운이 좋지 않아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두렵고 무서웠다. 운이 좋으면 그만한 대가가 따를까 봐 두려웠고 운이 나쁘면 얼마나 나쁠지를 몰라서 무서웠다. 그럴 때마다 징크스가 생겼고, 나만 아는 행운의 징표들을 여럿 만들었다. 오른손으로 형광등을 켰으면 다음에는 왼손으로 형광등을 켰고, 모든 일이 순조로워 보였던 누군가가 준 자신의 증명사진을 꽤 오랫동안 문고리 가방에 걸어두기도 했다. 내 손길이 닿은 우리집 곳곳에 내가 부여한 역할들을 잘해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묻었다.
그럼에도 액운이 자꾸만 번져갈 때는 결국 우주를 찾았다. 광활한 우주의 먼지만치도 못한 내게 벌어지는 일이 대수랴, 그렇게 생각하고는 나에게 덮쳐오는 거대한 파도에 기꺼이 흠쩍 젖어 버리는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랬고, 상봉이가 아팠을 때도 그랬다. 어렸을 때는 아빠가 일찍 죽을까 봐 맨날 울었지만, 병원에서 막상 아빠가 돌아가신다고 했을 때는 남들만큼 슬프지 않았다. 상봉이가 아픈가 안 아픈가 긴가 민가 했을 때는 염려했어도, 막상 아픈 게 맞다는 진단을 받고 나니 평생 낫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낙천적이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남들보다 포기가 빨랐던 걸지도 모른다.
남자친구 상봉이는 나보다는 삶에 욕심이 많았던 탓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의 우울증이 나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할 때, 그는 자신의 우울증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말할 때 그는 늘 '다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우울증이 나아야만 그동안의 시간도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고, 그래서인지 자꾸만 우울증이 나으면 해야 할 일, 우울증이 나으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한 아이가 자신의 그림자가 쫓아오지 못할 때까지 달리기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자신의 우울증이 나을 수 있다고 믿는 남자친구가 그 어린 아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의 의미 없는 인생을 말하게 될 상봉이가 슬펐다.
그런 그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학교를 자퇴했던 자신과 달리 비슷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먼 지인이 휴직을 끝내고 직장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제야 그는 실감한다고 했다.
'아, 나는 모든 일상이 무너져 버렸구나.'
출발지로 이어지는 밧줄을 손에 쥐고 정처없이 떠돌아도 안심하고 있었는데 막상 손을 펴 보니 먼 옛날에 끊어지고 남은 끄나풀만 쥐고 있던 것이다. 상봉이는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걸어왔던 발자국은 더듬어 찾아가기엔 이미 흐릿해진 지 오래였고,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던 것이다.
30분도 책을 보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아침마다 약 기운에 잔뜩 안개가 끼어 버리는 뇌를 탓하는 그에게 의사 선생님은 자신이 과거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하루 30분이 힘들다면 일단 10분만 공부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 10분 공부했다. 나머지 시간은 달리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더라도 하루 10분은 꼭 공부를 했다. 아침에는 눈을 뜨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람들을 피해 몇 년간 답장하지 못하고 쌓아두었던 카톡과 문자와 메일에 몇 달에 걸쳐 하나둘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이 30분으로, 1시간으로, 2시간으로 늘어났다. 다시 대학원에 입학할 준비를 했다.
상봉이가 연습한 것들은 그렇게 작은 것들이었다. 그 작은 일들이 버거워서 지난 5년을 놓아 버린 것이지만 말이다. 그에게 무겁고 힘에 부쳤던 일들이 제 무게를 찾아 가벼워지는 데에는 다시 1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사소한 일들은 씨앗이 되어 2023년 봄을 맞이하는 상봉이 안에 '이대로도 괜찮은 마음'이 피어났다. 이제는 우울증이 낫지 않아도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그 정도 마음이면 충분했던 것인지, 그해 여름 의사 선생님은 선물 같은 진단을 전했다.
"이제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봅시다. 이 말을 듣기까지 6년이 걸렸네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조용했다. 열심히 따릉이를 타는 척했지만 남자친구도 울고 나도 조용히 울고 있었다. 우리의 지난 애쓴 시간이 떠올랐다. 6년을 거쳐 넘어온 거대한 산이 등 뒤로 멀어지는 것 같았다.
상봉이의 우울증은 어제의 일이 될 수 있을까? 다시 걸음마를 시작한 상봉이가 뜀박질을 하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오면 이제는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한때는 상봉이가 우울증에 걸린 게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처럼 의아했고 얼떨떨했다. 마치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듯한 태도를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다. 옥상에서 떨어지는 화분에 맞아 죽은 행인을 두고 지지리도 없는 불운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상봉이가 우울증에 걸린 일도 그와 같이 운이 나빠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느 날과 다름없는 산책길을 걸으며, 내가 '지금 이 시각' 눈 앞에 보이는 '이 보도블록'을 밟고 지나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옥상에서 떨어지는 화분에 맞을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일상도 극히 드문 확률의 일들이 모여 흘러가고 있었구나. 그리고 알게 된 것이다. 상봉이에게 우울증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구나. 그 깨달음이 바로 내 발 밑에 있었는데 6년이 지나서야 그걸 알았다.
1%의 확률이라는 건 99일 동안 예상대로 흘러가던 일이 100일 째쯤에는 예상 밖의 길로 어긋나버리는 것. 아흔아홉 번 별 일 없던 일이라도 그 다음에는 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에서 '운'을 빼고 보니 단지 예상했던 일,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뿐이었다.
상봉이가 약을 다 끊더라도 예전과 똑같은 마음이 되더라도 우울증이 온전히 어제의 일이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침대에서 늦장을 부릴 때, 게임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다시 우울증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든 자연스럽게 의심하고 걱정하게 될 것이다. 뜀박질은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태아의 모습으로 몸을 돌돌 말고 깊은 잠을 자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이제는 점집에 찾아가 내 운을 탓하거나, 징크스 때문에 만화와 일기를 멈추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불안함이 자꾸 스며들 때는 먼 우주까지 도망가 답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무한한 우주의 끝은 알 수 없을지언정 나와 가장 가까이서 살을 맞대고 있는 존재만큼은 명확하다는 사실을 떠올릴 것이다. 그건 불운과 행운이 두렵고 무서웠던 내 인생에서 '운'을 덜어내게 하는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