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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스톤보이 May 11. 2020

자존감과 자만심은 한 끗 차이

부러움에 대해 혐오를 느끼다 깨달은 것

성인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노력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었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본 나의 인생은 타인의 시선, 평가에 의해 끊임없이 좌지우지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내린 결정에 대해 신뢰가 전혀 없었고 이는 끝없이 추락하는 자존감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내 삶을 바꿔보고자 가장 먼저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결코 후회하지 말자는 마음을 먹었다. 내가 과거에 내린 결정은 그때 당시에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기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간의 선택이 아쉬운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되도록이면 후회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다. 사소한 태도일 수 있지만 실제로 이는 나의 떨어졌던 자존감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자세에 익숙해질 때쯤, 나에게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타인에 대한 부러움을 극도로 지양하는 것이었다.(사실 지양을 넘어 혐오에 가까웠다.) 타인을 부러워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남들과 같은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는 일종의 후회스러운 감정이 동반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바로 이러한 혐오의 대상이 나 자신이 느끼는 부러움뿐 아니라 타인이 느끼는 부러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주변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지인의 아는 사람이 부동산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돈을 번 그 사람이 부러운 눈치였고 심지어 몇몇은 우스갯소리로 그분의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는 요구(?)까지 할 정도였다.


지금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보니 당시 나는 부러운 감정을 표출하던 주변 지인들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본인들이 내리지 않았던(혹은 못했던) 결정들의 결과인 '타인의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를 부러워하는 것에 대해 나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느낀 감정 상태에 대해 스스로 소름이 돋곤 한다. 분명 그때의 나는 오버하고 있었다. 어느새 주제넘게 타인의 삶까지 간섭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느낀 이러한 감정들은 어린 시절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던 나를 향한 타인들의 행동, 시선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무서운 것 없이 커져만 가던 나의 자존감이 자만심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존감이 정말 자만심이 되어버린 걸까?

지금에서라도 잘못된 점을 알아차려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아직도 스스로가 단점 투성이 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꺼려지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어야지 타인에게 해당되어선 안될 것이다.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중심이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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