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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Feb 28. 2024

내 탓 아니고 네 탓

회사 건물 화장실에서 정신과 진료 예약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접수를 받는 간호사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나에게 지금 당장 병원에 올 수는 없냐고 물었다.


“그럴 수는(흑흑) 없고요, 퇴근하고 갈(흑) 게요.”

어떠한 재난에도 기어코 출근을 하는 K-직장인의 본분을 지키며 눈물을 닦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퇴근을 한 뒤 병원으로 향했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몇 주가 지나 우울증이라는 진단과 함께 타인 민감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유약한 심장을 가진 나는 상사의 가스라이팅을 무시하지 못하고 여러 날 동안 모욕적인 언사를 곱씹었다.


지나치게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불안에 떨었으며 그러다 상사 앞에 서면 호흡이 잘 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살얼음을 딛는 마음으로 출근해서 내 이름이 불리지 않기 만을 바랐다. 지쳤고 때때로 멍해졌다. 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과 교실의 반만 한 공간 안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타인 민감성이 높은 나를 돌아버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끝자리 630원을 360원으로 잘못 입력해서 발생한 차액 270원 때문에 3일 내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멍청한 자신을 원망하고 욕을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고작 270원 때문에 그렇게까지 혼날 일이었나 싶기도 하다.

“270원이라서 다행이지, 270만 원이었어도 틀렸을 거 아냐?”라는 억측을 듣고도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었는데 너무 자책하지 말걸 그랬다.

“270만 원을 어떻게 틀려요!”소리치며 반짝이는 문어 머리에 270원을 집어던지는 상상을 한다.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힘들었던 시간을 버텼고 발령이 났다.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사가 나를 다그쳤던 만큼 나도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제가 좀 더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라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이제 자책, 자기 검열, 눈치보기 같은 짓은 그만두고 속 편하게 남 탓을 하기로 했다. ‘응~ 결재할 때 못 본 네 탓~’이라거나 ‘나 보고 어쩌라고’ 속으로 비아냥대며 나를 향하던 화살의 앞머리를 돌린다.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죄송하다고 말하던 습관도 조금씩 고쳐 나갔다. 핑계를 대는 것이 비겁해 보여 변명하지 않고 상황을 탓하지도 않았는데, 죄송하다고 말하니 정말로 내 잘못이 되어 있었다. 사과는 정말로 잘못을 했을 때만 확실히 한다.


자신의 실수를 돌아보지 않고 남 탓만 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자기반성이 절실히 필요해 보이는 오만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공은 남에게 돌리고 과는 습관처럼 자신에게 씌우는 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는 것을 그만두고 남 탓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을 살리고 나를 죽이는 선택을 하지 말자. 자신의 숨통을 조르던 손을 놓고 가슴 가득 시원한 숨을 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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