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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Mar 06. 2024

잠깐만 못생길게요

독한 화장품으로 스킨 팩을 하고 난 뒤 피부가 뒤집어지고 착색이 되었다. 직장 동료들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놀랐다. 나는 거울을 자주 보거나 점심때마다 화장을 고치는 여자가 아니다. 오히려 로션도 바르지 않은 채로 출근을 하거나 머리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집 밖을 나오는데 한 꼬집의 주저함도 없는 편이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마스크를 쓰고 나가야 할 얼굴이 되고 나서는 검버섯이 핀 것처럼 보이는 얼굴을 평소보다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오, 좀 웃긴데?’


 착색이 6개월에서 1년도 갈 수 있고 혹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던 까닭은 현대 의학의 발전을 믿었기 때문이다. 남의 간을 떼다 붙이고 허벅지 지방을 가슴에 넣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망가진 피부 하나 어쩌지 못하랴. 

그렇지만 땀을 흘리지 않아야 하니 운동도 하지 말고 술도 먹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우울이 밀려왔다. 오늘은 목요일. 아파트에 탕수육 차가 오는 날이라 고량주까지 사놓았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걱정도 마주칠 때마다 들으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얼굴을 보고 놀란 마음이야 알겠지만 '걱정을 밖으로 뱉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들이 안쓰러운 얼굴을 하면 나는 조금 민망하고 불안해졌다. 엉망이 된 얼굴로도 깔깔거리며 웃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냥 조금 못 생겨졌을 뿐이지 않은가?


 얼굴에 난리가 나기 전에는 못생김과 잘생김, 양 극단에 서지 않은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어른들은 그저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다는 이유로 예쁘다는 말을 자주 해주었다. 그중 몇몇은 

"얼굴도 예쁜데 왜 아직도 혼자 일까? 남자들은 보는 눈도 없지."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칭찬을 하고자 했던 의도는 알겠으나 ‘예쁜 여자들은 남자들이 다 채어 가고 하자 있는 여자만이 남았다.’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비혼인 여성들의 스트레오 타입이 있음을 안다. ‘비건, 환경 운동가, 페미니스트, 짧은 머리, 못 생긴 여자’ 이러한 이미지를이 대표적이겠지. 비혼 중이란 이유 만으로 성격이 까다로울 것이라거나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마주한다. 

실제로 예민하고 한 성깔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노처녀 히스테리 때문이 아니다. 그저 어렸을 때는 어물쩍한 웃음으로 넘겼던 상대의 무례를 무표정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연륜을 쌓았기 때문이다.

“OO 씨, 왜 그래, 웃어요~ 농담이잖아.”라는 말에 20대가 한참 지난 여자가 뚱한 표정을 한다면 ‘역시 나이 든 여자는 재미없어’ 혹은 ‘생리 기간인가?’라고 생각지 말고 내가 또 어떤 머저리 같은 소리를 지껄였는지 찬찬히 되돌아보자. 그러니까 자기반성이랄까? 뭐, 이런 걸 좀 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외모나 특징을 가지고 프레임을 씌워 판단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고유한 개성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멋대로 판단해 버리는 것은 폭력적인 일이다. 나 또한 별 뜻 없는 질문과 말을 하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별생각 없었다는 무심한 말로 용서가 되지 않을 나의 무지를 사과한다. 못생긴 사람에게는 못생긴 사정이 있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구태여 말할 필요 없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제 인생에 대한 걱정은 각자의 몫이니 애써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남이 걱정되어 견디지 못하겠다면 혼자서 조용히 기도나 해주시길 바라겠다. 언젠가 나 같은 떠버리가 못생겨지거나 비혼으로 살고 있는 이유를 소상히 적어 책으로 엮어 낼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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